1950년대 연구반 소개 / 김수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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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07-30 조회수 : 2,483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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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7월 2일. 4.19이후 복간된 서울신문이 그간의 잘못된 행태를 바로잡는다는 취지를 밝힌 복간사이다. 서울신문사는 4.19 와중에 방화되었었다.
반공독재체제, 두 차례의 개헌, 전쟁과 잿더미, 부흥과 재건, 한미동맹, 한미갈등, 기지촌과 자유부인, 삼백산업, 하녀와 오발탄, 자유당, 민주당, 진보당, 혁신계와 무소속, 선거,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개발, 기술, 제3세계, 태풍 사라, 농협, 원조 분유와 배탈
안녕하세요. 이 모든 것을 얘기하는 연구반, 역사문제연구소 50년대 연구반을 소개합니다.
저는 2015년 여름, 50년대를 함께 공부할 연구자, 공간이 없나 두리번거리다 먹잇감들을 발견했습니다. 혹은 먹잇감을 노리던 연구자들에게 제가 포획되었습니다. 무더운 여름 첫 모임은 각자의 관심사를 얘기했습니다. 서두에 늘어놓은 단어들을 좀 더 추상화 시킨 정치, 경제, 군사, 한미관계, 사상, 통제, 전유, 경유, 근대화가 그것이었죠. 거친 언어여도 좋았습니다. 6070년대와 비교할 때, 연구자가 점점 적어지는 것으로 (개인적으로) 추정되는 50년대 연구자들이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 들떴으니까요. 연구반의 세미나 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처음엔 연구사를 검토했습니다. 3번 만에 끝났던가요? 역시 역사연구자라면 자료를 봐야되지 않겠습니까.
그 자료가 연구반의 늪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잡지, 정부 간행물, 의회 회의록, 신문. 많고 많은 자료 중에 모든 참가자들의 서로 다른 연구영역을 충족시킬 수 있는 게 뭘까.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지금까지 50년대 연구에서 활용되지 않았던 자료는 뭘까. 그 때의 우리는 '아무도 못 본 자료! 우리가 처음 볼 거야' 라는 생각에 부풀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서울신문이라는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은.
서울신문의 전신은 대한매일신보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을 바뀌었지만 前史를 꼭 빼닮은 서울신문은 50년대 정부여당의 시각을 옹호·답습·강조하는 이승만-자유당 나팔수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렇기에 50년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 여타신문들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죠. 다만 네X버 라이X러리의 광풍 속에서 디지털활자가 되지 못한 서울신문은 좀처럼 읽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매일매일 4면 이상 발행되었던 신문을 혼자 읽어나간다는 것은 이 각박한 세상, 수많은 알바와 프로젝트, 실적의 압박에 둘러쌓인 우리에겐 도전!!!하기 힘든 일일겁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면? 더 쉽고 즐거운 여행이 되겠죠.
하지만 막상 연 판도라의 상자는 일단 그 소장처가 매우 한정되어 있어 열람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미지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서울신문 본사에서도 국립중앙도서관에서도 심지어 국사편찬위원회에서도!!! 서울신문을 이미지로 서비스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이 소박한 50년대반원들은 처음부터 원문 검색은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그저 사진 파일이 필요했습니다.
수많은 기술적 논의와 결정, 번복, 재결정, 재번복, 슬픔과 원망이 샘솟을 즈음 반가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강조☞)역사문제연구소(☜강조)에서 신문 촬영 비용을 일부 지원해준다는 결정이었습니다. 반원 분의 협조를 얻어 우리는 1954년부터 1956년까지의 서울신문을 몽땅 촬영했습니다. (참고로 이 파일은 〓연구소 회원〓에 한하여, 연구소 내의 지정 컴퓨터에서 열람이 가능합니다) 그 이후의 신문은 반원들의 피땀을 모아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2015년부터 지금까지 50년대 연구반이 함께한 서울신문은 1954년 1월 1일자부터 1960년 12월 31일자까지입니다. 저희반은 서울신문이 보여주는 50년대를 명확히하기 위해 사설 전재·발췌를 세미나 발제의 기본으로 잡았습니다. 그리고 각 반원의 관심 영역에 관한 기사를 보충하는 방식으로 신문 내용을 공유했습니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에서 보기 힘든 정부여당의 이야기, 경제 및 한미관계에 관한 깊이 있는 기사, 자유부인으로 대표되는 4면에 담긴 수많은 사건사고들, 농촌과 도시의 사람 사는 얘기를 담은 3면까지. 50년대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 것만은 분명합니다.
다만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은 물론 반장인 저의 성정, 반원들의 일심동체 등으로 인해 저희는 신문을 함께 읽기만 했습니다. 7년 어치의 신문을 읽는 동안 많은 반원들이 나가고, 또 새로운 반원들이 들어왔습니다만, 읽은 신문을 가지고 무엇을 해볼지에 대해선 많은 얘기를 나누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올해가 가기 전 ‘서울신문을 통해 본 1950년대’라는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진행하려 합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서울신문과 여타 신문과의 비교, 사건에 대한 서울신문의 논조 변화 추적, 인물-정당에 대한 서울신문의 태도 변화와 같은 소주제들로 꾸려질 발표회는 찬바람이 불기 전 연구소에 열립니다.(정확한 날짜는 미정입니다.) 1950년대 정치, 경제, 군사, 사상, 외교에 관한 별다를 것 없지만 서울신문을 통해 본 새로운 얘기에 관심가져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