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한독관계사 심포지엄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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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12-16 조회수 : 2,268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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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한독관계사 심포지엄 후기
이정민(성균관대학교 강사)
해방 이후 한국의 역사에서 비중 있는 역할을 차지한 외국으로 우리는 보통 미국과 일본을 생각한다. 그런데 독일 역시 이에 못지않게 한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1960~1970년대 많은 젊은이들이 광부와 간호사라는 이름으로 독일에 갔고, 독일 기독교는 유신시대 한국 민주화운동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기도 했다. 독일은 프랑스와 함께 유럽을 대표하는 국가로 한국 안에 이미지화 되었다. 특히 1989년 베를린장벽 붕괴에서 시작된 독일 통일은 한반도 통일을 위한 일종의 비교사례로 주목받고 연구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반면 한국현대사에서 독일은 그다지 주목받는 대상이 되지 못했고, 한미관계와 한일관계에 비해 한독관계에 대한 연구는 깊이 있게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분단, 전쟁, 냉전으로 이어진 한국현대사에서 독일은 남다른 중요성을 지닌다. 냉전이라는 시대상황 속에서 서독과 남한, 동독과 북한의 협력관계를 연구하는 작업은 한반도에서 국제적 냉전체제가 어떻게 작동되었는지 규명하는데 토대를 마련해준다. 게다가 서독과 동독이 겪은 분단국가 경험 및 통일과정이 실제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반면교사로 작용할 수도 있다.
역사문제연구소 한독비교사포럼은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한독비교사를 위한 연구모임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2004년 역사문제연구소와 독일 포츠담현대사연구센터(ZZF)가 「분단의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북한과 동독의 역사를 비교하는 학술회의를 개최한 것이 그 출발점이었다. 첫 단계에서 한독비교사 연구는 분단, 전쟁, 냉전에 초점을 맞추어졌다. 2015년 개최된 「동아시아 속의 분단 한국, 유럽 속의 분단 독일」학술회의에서는 한반도와 독일 분단문제를 보다 심층적이면서도 다면적으로 다루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2018년부터 역사문제연구소 한독비교사포럼이 튀빙엔대학교 한국학연구소와 공동개최하고 있는 한독관계사 심포지엄은 지금까지 이루진 한독비교사 연구를 보다 심화시킨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비교연구 차원을 넘어서 한국과 독일이 역사 속에서 어떠한 관계를 맺어왔는지 살펴봄으로써 한국과 독일의 역사상을 새로운 관점에서 살펴보고, 세계사적 관점과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transnational history) 관점을 통해 연구의 깊이를 더하고자 하였다. 특히 이번에 열린 제2회 한독관계사 심포지엄은 위의 작업을 위해 “이미지(Image), 전이와 수용(Transfer), 얽힘(Entanglement)”이라는 세 가지 범주로 한독관계사를 조망하였다.
<세션 1 : 이미지>에서는 한국과 독일이 서로의 역사를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보았는지 살펴보았다. 이정민은 「언론보도를 통해 본 서독의 한반도 분단문제 인식 : 동백림사건, 푸에블로호사건을 중심으로」에서 동백림사건(1967)과 푸에블로호사건(1968)을 통해 냉전 속 한반도에서 정치적·군사적 긴장이 최고조로 치닫던 시기 서독이 한반도 분단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살펴보았다. 한국은 같은 분단국가인 서독과 동질감을 강조하는 한편 반공투쟁을 위해 서독이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동백림사건 해외관련자 강제연행을 눈감아줄 것이라 생각한 반면, 서독은 공동의 반공투쟁을 위해서는 박정희 정권이 민주주의와 인권에 보다 신경을 써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김미지는 「19~20세기 한국에서 유통된 국민성 담론과 독일 인식」을 통해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시기에 한국이 독일 문화와 문학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보여주었다. 한국은 독일을 최고수준의 문명국, 온갖 분열을 이겨낸 통일국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일어선 불굴의 국민으로 바라보았는데, 이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한민족이 추구했던 이상적 가치와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 비르깃 가이펠(Birgit Geipel)은 「Hwang Sok–yong’s The Ancient Gerden: The Fall of the Berlin Wall as Vicarious Political Experience」에서 황석영의 『오래된 정원』을 통해 한국인들이 베를린장벽 붕괴사건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보여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한윤희는 베를린장벽 붕괴를 바라보며 1987년 6월항쟁이 6·29선언과 대선을 거치면서 실망스러운 결과로 귀결되었던 것을 떠올리며, 민중운동 세대의 이상을 완전히 성취하지 못한 실패를 수용하게 된다. 한국인들에게 베를린장벽 붕괴는 일종의 ‘간접적 정치경험’으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세션 2 : 전이와 수용>에서는 한국과 독일의 상호이해 및 수용과정을 탐구한다. 신주백은 「히틀러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 : 『나의 투쟁』에 대한 출판과 반응을 중심으로」를 통해 시대에 따라 한국사회의 히틀러 수용이 어떠한 변화과정을 보이는지 보여준다. 히틀러는 식민지 조선인사회에서 애국자, 고난을 극복한 영웅으로 받아들여진 반면, 해방 이후에는 전체주의 독재자로 받아들여졌고 『나의 투쟁』은 반(反)독재의 반면교사 교재로 쓰이게 된다. 권선형은 「최근 독일의 한국문학 수용 경향 : 2000년대에 출간된 다섯 작품을 중심으로」에서 『새』(오정희),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마당을 나온 암탉』(황선미), 『7년의 밤』(정유정), 『채식주의자』(한강)을 중심으로 독일에서 한국에 대한 2010년대 이미지와 이해를 탐구한다. 이 작품들은 가족과 관계, 삶과 죽음, 정치 등 보편적 주제를 통해 독일 독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들이 한국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기여했다. 미하엘 푸어(Michael Fuhr)는 「Asian Invasion? K–Pop as Cosmopolitan Youth Culture in Germany」를 통해 K–Pop을 중심으로 독일의 한류열풍을 조망한다. 서양 클래식음악이 한국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것처럼 K–Pop은 독일 청년들에게 여러 측면에서 문화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독일 내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형성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세션 3 : 얽힘>에서는 한국과 독일이 역사 속에서 얽히는 경험을 통해 어떻게 상호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막스 알텐호펜(Max Altenhofen)은 「West German Technical Assistance to South Korea: Focusing on two School Projects」에서 1960년대 서독이 대한(對韓)기술원조의 일환으로 설립한 기술학교들을 살펴본다. 인천과 나주의 기술학교를 설립·운영하며 한국인 교사들과 독일인 기술자들은 적지 않은 갈등을 보였는데, 이를 통해 한국과 독일의 의사소통 방식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김귀옥은 「한국과 독일을 넘나드는 디아스포라와 한국 민주화운동 : 유럽민협을 중심으로」에서 1987~1992년 활동한 재유럽민족민주운동협의회(유럽민협)에서 활동한 디아스포라들에 주목한다. 이들은 남 또는 북을 선택해야 한다는 분단과 냉전을 거부하며 민주화와 통일, 평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남한과 북한, 독일과 유럽을 연결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이번 심포지엄은 한독관계사 연구의 기초를 놓기 위한 일환으로 기획되었고, 역사문제연구소 한독비교사포럼은 튀빙엔대학교 한국학연구소와 함께 2023년 “한독관계 140주년 기념 연구집” 발간을 목표로 한독관계사 연구를 심화시켜 나갈 예정이다. 이를 위해서 제3~4차 한독관계사 심포지엄이 2020년과 2021년 각각 독일과 한국에서 계속될 것이다. 한독관계사 연구는 1883년에서 1945년까지, 1945년에서 1989년까지, 1989년에서 현재까지의 시기로 구분되어 연구가 진행되며, 이번 심포지엄 주제인 “이미지, 전이와 수용, 얽힘”이 각 시기 연구의 큰 주제로 설정된다. 이 연구에는 역사문제연구소 내에서 한독관계사 연구에 관심 있는 연구자라면 누구나 함께 참여할 수 있다. 한독관계사 연구는 한국과 독일의 근대성 형성 및 변형의 상호작용을 밝혀내는 한편, 미국·일본 중심에서 탈피하여 한국 근현대사상 형성의 다양성을 보여주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한 독일의 근현대사 역시 유럽중심으로만 설명해왔던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는 데에도 공헌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