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연구소

간행물
  • 논문투고규정
  • 『역사문제연구』 간행규정
    『역사문제연구』 간행 규정

    제1조 (목적) 이 규정은 역사문제연구소 학술지 역사문제연구(이하 학술지)의 간행에 관한 사항을 정하는 데 목적이 있다.

    제2조 (간행 횟수와 면수) ① 학술지는 매년 4월 말과 10월 말 2회 발간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② 학술지는 매호 300~500면 내외의 분량으로 간행한다.

    제3조 (투고) ① 투고에 특별한 자격 제한은 없다. ② 학술지에는 한국 근현대사 및 인접 학문에 관한 논문, 연구노트, 서평, 자료 소개 등을 수록한다. ③ 투고원고의 분량은 논문은 200자 원고지 150매, 기타는 80매 내외를 원칙으로 한다. ④ 투고된 논문은 소정의 심사를 통과해야 학술지에 게재될 수 있다. ⑤ 원고는 수시로 투고할 수 있으나, 게재 희망 학술지의 간행 2개월 전(2월 말일, 8월 말일)까지 제출해야 한다.

    제4조 (편집위원회) ① 학술지의 편집과 논문 심사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편집위원회를 둔다. ② 편집위원회는 위원장 1명, 간사 1명, 편집위원 약간 명으로 구성한다. ③ 편집위원회는 학술지의 간행을 기획하고, 논문의 1차 심사를 담당한다. ④ 편집위원회는 2차 심사의 결과를 종합하고 최종 처리한다. ⑤ 편집위원회는 학술지의 간행규정, 투고지침, 원고작성요령 등 학술지 간행과 관련된 제반 규정을 제정・개정할 수 있다. ⑥ 편집위원장의 임기는 2년 이상으로 한다. 편집위원장은 본 연구소 정기총회에서 선임하며, 편집간사와 편집위원은 편집위원장이 선임한다.

    제5조 (심사위원회) ① 본 학술지에 게재하는 논문의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심사위원회를 구성한다. ② 심사위원회는 해당 분야의 전문 연구자 3명 이상으로 구성한다. ③ 심사위원회는 논문에 대한 2차 심사를 맡으며 심사위원 2/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학술지에 게재할 수 있다.

    제6조 (논문 심사 원칙) ① 학술지에 게재하는 논문은 2차에 걸친 심사에서 통과된 논문에 한해 게재한다. ② 1차 심사: 편집위원회에서 투고된 논문의 주제・내용・형식・분량의 적합성을 검토한 후 2차 심사에 회부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논문별 심사위원을 선정한다. ③ 2차 심사: ㉠ 논문 1편당 편집위원과 편집위원회에서 위촉한 해당 분야의 전문연구자를 포함하여 3명에게 심사를 의뢰한다. ㉡ 심사위원은 의뢰된 논문의 내용 및 수준에 대해 정해진 심사서 양식에 따라 게재(A), 수정 후 게재(B), 수정 후 재심사(C), 게재 불가(D)의 4등급으로 판정한 심사결과를 편집위원회에 제출한다. ㉢ 편집위원회에서 심사결과를 종합하여 다음과 같이 4가지로 판정한다. (A,A,A) (A,A,B): 게재 (A,A,C) (A,B,B) (A,B,C) (B,B,B) (B,B,C): 수정 후 게재 (A,A,D) (A,B,D) (A,C,C) (A,C,D) (B,B,D) (B,C,C) (C,C,C): 수정 후 재심사 (A,D,D) (B,C,D) (B,D,D) (C,C,D) (C,D,D) (D,D,D): 게재불가 ㉣ 심사위원은 수정 후 게재(B)와 수정 후 재심사(C)로 판정한 경우 수정해야 할 사항을 명시해야 하며, 게재 불가(D)로 판정한 경우 그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 심사결과를 종합한 결과 수정 후 재심사(C)로 판정된 경우 재심사는 1회에 한하며, 다음 호 이후 진행한다. 단, (A,A,D), (A,B,D)의 경우 투고자가 반론서를 제출하면 편집위원회에서 논의하여 “본호” 재심사를 허용할 수 있다. 재심사 결과는 심사위원 전원에게 수정 후 게재(B) 이상의 판정을 받아야 게재할 수 있다. ④ 투고논문을 본 연구소에서 주관하는 연구발표회에서 발표한 경우, 이를 1차 심사로 간주한다.

    제7조 (심사결과 통보) ① 논문 심사에 관한 구체적 사항은 대외비로 한다. ② 심사위원회는 논문 제출자에게 논문 게재의 가부(可否)를 통고한다. ③ 게재가 결정된 논문 제출자는 심사위원회의 보완 요구가 있을 경우 이를 존중해야한다.

    제8조 (심사료) ① 심사위원에게는 소정의 심사료를 지급한다.

    제9조 본 규정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은 관례에 따른다.

    부칙: 이 규정은 1996년 10월 7일 제정, 2015년 12월 1일 개정하여 시행한다.

    제정일: 1996년 10월 7일
    제1차 개정: 2006년 9월 5일
    제2차 개정: 2007년 2월 1일
    제3차 개정: 2014년 9월 1일
    제4차 개정: 2015년 9월 1일
    제5차 개정: 2015년 12월 1일
    『역사문제연구』 연구윤리규정
    『역사문제연구』 연구윤리 규정

    제1장 총 칙

    제1조(목적) 이 규정은 『역사문제연구』와 관련하여 연구를 수행하는 자의 연구윤리를 확립하고, 연구부정행위를 사전에 예방하며, 연구부정행위 발생시 공정하고 체계적으로 진실을 검증하고 처리하는 데 필요한 원칙과 기준을 규정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제2조(연구부정행위의 범위) 연구부정행위(이하 ‘부정행위’라 칭함)는 연구 결과 발표에서 다음 각 호의 행위를 말한다.

    ① 존재하지 않는 데이터 또는 연구 결과 등을 허위로 만들어내는 행위
    ② 사료 및 각종 데이터를 임의로 변형, 삭제함으로써 연구 내용 또는 결과를 왜곡하는 행위
    ③ 고의적으로, 또는 의도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타인의 창의적인 아이디어, 논리, 고유 용어, 데이터, 연구 체계, 연구 과정, 연구 내용 등을 정당한 승인 또는 인용 없이 도용하는 행위
    ④ 연구 내용 또는 결과에 대하여 기여한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논문 저자 자격을 부여하지 않거나, 기여하지 않은 자에게 감사의 표시 또는 예우 등을 이유로 논문 저자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
    ⑤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다른 학술지 또는 저서에 실린 논문의 내용을 그대로 혹은 약간의 문구 손질만 한 뒤 투고하는 행위
    ⑥ 본인 또는 타인의 부정행위 혐의에 대한 조사를 고의로 방해하는 행위
    ⑦ 학계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난 행위
    ⑧ 기타 연구윤리위원회의 자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정행위

    제3조(심의 및 조사의 대상) 『역사문제연구』에 이미 게재되었거나 게재할 목적으로 투고된 논문 중 부정행위로 의심받을 만한 의혹이 제기된 논문을 대상으로 한다.

    제4조(다른 규정과의 관계) 연구윤리 확립 및 연구진실성 검증과 관련하여 다른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규정에 의한다.

    제2장 연구윤리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

    제5조(연구윤리위원회 설치 및 조사위원의 구성) 이 운영규정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연구윤리위원회를 설치하여 운영한다.

    ① 연구윤리위원회는 역사문제연구소의 소장, 부소장, 연구실장, 운영위원회에서 선임한 위원 7인 이상으로 구성한다.
    ② 연구윤리위원회의 위원장은 역사문제연구소의 소장이 맡는다.
    ④ 연구윤리위원의 임기는 1년으로 하고 연임할 수 있다.
    ④ 부정행위와 관련하여 심의, 조사해야 할 사안이 발생할 경우, 연구윤리위원회는 학술적 전문성을 가진 조사위원들을 위촉할 수 있다.
    ⑤ 조사위원은 혐의가 있는 논문, 저서, 발표문 등의 내용에 정통하다고 인정되는 연구자로 하며, 연구윤리위원회는 조사위원의 구체적인 신원을 비밀로 할 수 있다.

    제6조(위원장)
    ① 위원장은 위원회를 대표하고 회의를 주재한다.
    ② 위원장이 부득이한 사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때에는 위원장이 미리 지명한 위원이 그 직무를 대행한다.

    제7조(연구윤리위원회의 기능) 연구윤리위원회는 다음의 사항을 심의, 의결한다.
    ① 연구윤리 관련 제도 수립 및 운영에 관한 사항
    ② 연구부정행위 제보 접수 및 조사, 판정 및 징계에 관한 사항
    ③ 제보자 보호 및 제소된 자의 명예회복 조치와 관련된 사항
    ④ 기타 위원장이 부의한 사항

    제8조(연구윤리위원회 회의)
    ① 위원장은 연구윤리위원회 회의를 소집하고 그 의장이 된다.
    ② 회의는 조사위원들의 서면 보고서를 토대로 심의하여 결과를 판정한다.
    ③ 판정 결과는 재적위원 과반수 이상의 출석과 출석위원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④ 연구윤리위원회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관계자를 출석하게 하여 의견을 청취할 수 있다.
    ⑤ 연구윤리위원 가운데 해당 안건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위원은 그 안건의 조사, 심의, 의결에 참여할 수 없다.

    제9조(제소자와 제소된 자의 권리 보호)
    ① 제소자의 신원은 제소자 보호 차원에서 직간접적으로 노출시켜서는 안 된다. 다만 필요한 경우에는 예외로 할 수 있다.
    ② 부정행위 여부에 대한 검증이 완료될 때까지 제소된 자의 명예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하여야 하며, 제소된 자가 무혐의로 판명되었을 경우 그의 명예회복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제10조(이의제기 및 소명 기회와 비밀 보장)
    ① 연구윤리위원회는 제소자와 제소된 자에게 의견 진술, 이의 제기 및 변론 권리와 기회를 동등하게 보장해야 한다.
    ② 연구윤리위원은 판정이 내려질 때까지 제소된 자의 신원을 외부에 공개해서는 안 된다.

    제11조(결과보고서 작성) 연구윤리위원회는 조사 및 심의 후 이의 제기 또는 변론 내용을 토대로 결과보고서를 작성한다. 여기에 포함되어야 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제소 내용
    ② 조사 대상 연구부정행위 의혹 및 관련 연구 과제
    ③ 심사 절차 및 연구부정행위 의혹의 사실 여부
    ④ 심사 결정의 근거와 관련 증거 및 증인
    ⑤ 조사 결과에 따른 제소자와 제소된 자의 이의 제기 또는 변론 내용과 그에 대한 처리 결과

    제12조(판정 및 징계)
    ① 연구윤리위원회는 조사 및 심의 후 이의 제기 또는 변론 내용을 토대로 조사 내용 및 결과를 확정하고 이를 제소자와 제소된 자에게 통보한다.
    ② 연구부정행위가 확인된 저자 및 논문에 대해서는 연구윤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연구부정행위자에게 판정 내용을 서면으로 통고하는 동시에 다음과 같은 제재를 가한다.

    1) 『역사문제연구』 게재 취소, 온라인상에서 제공하는 『역사문제연구』 데이터베이스에서 해당 논문 삭제
    2) 향후 5년간 『역사문제연구』 투고 금지
    3) 역사문제연구 홈페이지, 역사문제연구소 홈페이지 및 연구부정행위 판정 후 처음 발간되는 『역사문제연구』에 판정 내용 공시
    4) 연구부정행위자의 소속 기관과 학술진흥재단에 해당 사실 통보

    제13조(재심의) 제소된 자 또는 제소자는 위원회의 결정에 불복이 있을 경우 결정을 통지받은 날로부터 30일 이내에 위원회에 이유를 서면으로 제출하여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다.

    제14조(기록의 보관 및 공개)
    ① 조사 및 심의와 관련된 기록은 조사 종료 후 5년간 보관해야 한다.
    ② 결과보고서는 판정 후 공개할 수 있으나 신원 관련 정보에 대해서는 공개 대상에서 제외할 수 있다.

    제15조(연구윤리규정 개정) 이 규정의 개정은 역사문제연구소 내규 개정 절차에 준한다.

    제16조(예외사항) 이 규정에 명시되지 않은 사항은 연구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른다.


    부칙
    이 규정은 2008년 5월 31일부터 시행한다.


    제정일 2008년 5월 31일
    『역사문제연구』 원고작성요령close
    『역사문제연구』 원고 작성 요령

    1. 제목, 목차, 필자명
    1) 논문 첫 페이지에 나오는 제목, 목차 등은 『역사문제연구』 최근호에 따른다.
    2) 장, 절, 항은 1, 1), (1)의 체제로 한다. 단 목차에는 장, 절까지만 표시한다.
    3) 필자가 2명 이상인 경우 연구공헌도에 따라 제1필자와 공동필자를 구분하여 명시하고, 연구에 참여한 모든 저자의 이름과 소속을 밝힌다.

    2. 본문
    한글 집필을 원칙으로 하며, 필요한 경우에는 한자를 괄호 안에 병기한다. 단, 외국인 인명 등에 한해 한자만을 표기할 수 있다.

    3. 인용문
    1) 한문이나 외국어문 등은 원문의 제시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와 번역이 곤란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한국어로 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인용문의 출전은 각주로 표시한다.
    3) 전략・중략・후략 등의 말줄임 표시는 ‘(…)’으로 표기한다.

    4. 각주
    1) 註는 脚註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2) 각주에는 인용 문헌의 서지정보를 최대한 구체적으로 밝힌다.
    3) 하나의 각주에 여러 문헌을 인용할 경우 각 문헌 중간에 ‘;’을 넣어 구분한다.
    4) 한자를 노출할 수 있으며, 다음과 같은 표시원칙을 지킨다. (※ ∨는 띄어쓰기 표시임.)

    가. 동양어로 된 논저의 경우
    ① 논문
    ■ 필자명, 논문제목, 게재지명, 권수, 호수, 발행처, 발표연도, 쪽수 순으로 표기한다.
    ■ 논문은 「」, 게재지는 『』 안에 표기한다.
    ■ 게재지의 ‘권’・‘호’・‘집’ 등은 숫자만 표기한다.
    ■ 쪽수・면수 등은 모두 ‘쪽’으로 표기한다.
    ■ 신문・잡지에 실린 기사의 경우에는 기사명, 신문(잡지)명, 발행연월일 순으로 표기한다. 단, 필자가 있는 기사나 문건을 인용할 때는 필자명, 기사명, 신문(잡지명), 발행연월일 순으로 표기한다.
    ■ 편저 내의 논문일 경우 논문명과 서적명 사이에 편저자에 관한 사항을 표기한다.
    예) 학술지: 홍길동,∨「의적의 활동과 의미」,∨『한국연구』∨3,∨한국원,∨2006,∨97~99쪽.
    학위논문: 김철수, 「조선후기 의적에 관한 연구」, 인민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14쪽.
    단행본: 김토일,∨「소리의 개념」,∨『소리의 역사』,∨소리출판사,∨2006,∨97쪽.
    편저: 서기헌,∨「대중과 민족」,∨임수유∨엮음,∨『대중과 민족의 사이』,∨대민출판사,∨2005,∨122쪽.
    신문・잡지: 「東鮮漁業 現況」,∨『東鮮日報』∨1950.∨6.∨30.
    김석문,∨「금석문에 대하여」,∨『季刊金石』∨27,∨금석문화사,∨1956, 22쪽.

    ② 저서
    ■ 저자명, 서명, 발행지, 발행처, 발표 연대, 쪽수 순으로 표기한다. 단, 발행지가 한국 내 일 경우 발행지 표기는 생략할 수 있다.
    ■ 서명은 『』 안에 표기한다.
    ■ 번역본의 경우, 번역된 현재의 서지사항을 표기한다. 단, 필자의 필요에 따라 원전의 서지사항을 밝혀 줄 수 있다.
    예) 저서: 최재희,∨『우리 민족의 갈 길』,∨大成出版社,∨1946,∨77 ~82쪽.
    번역서: 하비 J. 케이,∨양효식 옮김,∨『영국의 마르크스주의역사가들』,∨역사비평사,∨1988,∨205~210쪽.(Harvey J. Kaye, The British Marxist Historians, Cambridge: Polity Press, 1984.)

    ③ 반복되는 인용
    ■ 앞에서 인용한 문헌은 그 반복을 피하여 ‘앞의 글’, ‘앞의 책’ 등으로 표시한다.
    ■ 바로 앞의 각주에 이어 반복되는 인용은 ‘앞의 글’, ‘앞의 책’ 대신 ‘위의 글’, ‘위의 책’이라고 표시한다.
    ■ 동일 필자・저자의 문헌이 복수로 여러 차례 인용될 경우, 논저의 제목을 표기하여 구분한다. 단, 학술지 내 논문일 경우 게재지는 생략하며, 학위논문일 경우 앞의 논문이라고 표기한다.
    예) 김토일,∨앞의 글,∨앞의 책, 78쪽.
    최재희,∨앞의 책,∨92쪽.
    서기헌,∨위의 글,∨88쪽.
    홍길동,∨「의적의 활동과 의미」,∨앞의 책, 110쪽.
    김철수,∨앞의 논문,∨25쪽.

    나. 서양어로 된 논저의 경우
    ① 논문
    ■ 필자명, 논문제목, 잡지명, 권수, 호수, 발행처, 출판연도, 쪽수 순으로 표기한다.
    ■ 논문명은 “ ”에 넣고, 잡지명은 이탤릭체로 표기한다.
    ■ 게재지의 ‘권’, ‘호’는 ‘Vol.’, ‘No.’을 사용하여 표기한다.
    ■ 쪽수・면수 등은 ‘p.’와 ‘pp.’으로 표기한다.
    ■ 편저작 내의 논문일 경우 편저자에 관한 사항을 (ed.)으로 표기하고, 서명은 이탤릭체로 표기한다.
    예) 학술지: Hobsbawm, E. J., “From Social History to the History of Society”, Daedalus, Vol. 100, No. 1, 1971, pp.33~43.
    편저: Bruce Cumimgs, “The Corporate State in North Korea”, Hagen Koo (ed.), State and Society in contemporary Korea, Itaca: Cornell University Press, 1993, p. 19.

    ② 저서
    ■ 저자명, 서명, 발행지, 발행처, 발표 연대, 쪽수 순으로 표기한다.
    ■ 서명은 이탤릭체로 표기한다.
    ■ 쪽수・면수 등은 ‘p.’와 ‘pp.’으로 표기한다.
    예) 저서: Bruce Cumimgs, The Origins Of the Korean War, Vol. 1: Liberation and Emergence of separate regimes, 1945~1947, Princeton: Princeton Press, 1981, pp. 198~202.

    ③ 반복되는 인용
    ■ 바로 앞의 각주에 인용된 논저일 경우 ‘Ibid.’로 표기한다.
    ■ 바로 앞의 각주에 인용된 논저가 아니지만, 앞서 각주에서 인용된 경우 ‘op. cit.’, ‘앞의 책’, ‘앞의 글’ 등을 사용하지 않고, 해당 논저의 제목을 간략히 표기한다.
    예) Hobsbawm, E. J., “From Social History to the History of Society”, pp. 22~24.
    Bruce Cumimgs, “The Corporate State in North Korea”, p. 210.

    5. 표・그림
    표와 그림에는 다음과 같이 번호, 제목, 출전 등을 단다.
    <표1> 1930~40년대 경성지역의 토막 증가 추이
    출전: 京城帝國大學衛生調査部 편, 『土幕民の生活・衛生』, 1942, 62쪽.
    비고: 조사 기준일은 매년 10월 1일.

    6. 참고문헌, 초록, 주제어, 영문 필자명
    1) 원고 말미에 참고문헌을 단행본․논문 두 가지로 나누고 저자명 가나다순으로 정렬하여 첨부한다. 표기원칙은 위의 각주 항목 서지사항 표기 원칙과 동일하다.
    2) 원고 말미에 원고지 4~5매 분량의 영문초록을 첨부한다.
    3) 원고 말미에 5~9개의 국문 주제어 및 영문 키워드를 첨부한다.
    4) 원고의 영문 제목과 필자의 영문 성명을 표기한다.



    제정일: 2006년 9월 5일
    제1차 개정: 2007년 2월 1일
    제2차 개정: 2014년 9월 1일
    제3차 개정: 2015년 9월 1일
    『역사문제연구』 투고규정close
    역사문제연구 투고규정

    역사문제연구소에서 간행하는 학술지 역사문제연구(이하 학술지)는 한국 근현대사 및 인접 학문에 관한 논문, 연구노트, 주제비평, 서평, 자료 소개 등을 게재하고 있습니다. 학술지에 투고를 원하는 분은 다음 지침을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1. 역사문제연구에 투고하는 모든 원고는 역사문제연구 편집위 메일(kistoryedit@gmail.com)로 송부하여야 합니다.

    2. 연구비 지원을 받는 논문(연구비 지원 사사표기 논문)은 20만 원의 게재료를 부과하며, 연구비 지원을 받지 않는 논문의 경우는 게재료가 없습니다. 단, 편집위원회의 기획에 의해 청탁받은 논문의 경우는 연구비 지원을 받았더라도 게재료를 납부할 필요가 없습니다.

    3. 학술지에 투고된 논문은 A 게재 가, B 수정 후 게재, C 수정 후 재심사, D 게재 불가의 4등급으로 심사합니다.

    4. B, C의 심사결과에 해당할 경우, 투고자는 심사위원회의 수정 또는 보완 요구를 존중해야 합니다.

    5. 논문 외의 원고는 편집위원회와의 협의를 거쳐 투고할 수 있습니다.

    6. 모든 원고는 완성된 원고 전문(全文)을 투고해야 합니다.

    7. 논문에는 영문초록, 영문주제어, 참고문헌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8. 학술지에 게재된 원고의 저작권은 역사문제연구소에 있다. 단, 게재된 원고의 필자가 본인의 원고를 사용할 경우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이를 승인한다.

    제정일: 2006년 9월 5일
    제1차 개정: 2007년 2월 1일
    제2차 개정: 2014년 9월 1일
    제3차 개정: 2017년 4월 1일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close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

    편집위원장
    오제연(성균관대 교수)

    편집위원
    류시현(광주교육대 교수)
    박종린(한남대 교수)
    박준형(서울시립대 교수)
    송은영(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전문연구원)
    이용기(한국교원대 교수)
    이정선(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HK연구교수)
    임이랑(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장미현(역사문제연구소 연구실장)
    장신(역사문제연구소 상임연구위원)
    정준영(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허영란(울산대 교수)
    후지이 다케시(성균관대학교 사학과 BK연구교수)

    해외편집위원
    이남희(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교수)
    제인 킴(University of California, Los Angeles 박사)
  • 『역사문제연구』 간행물

    『역사문제연구』는 연 2회 발행되며
    한국근현대사의 새로운 연구를 독려합니다

  • 제34호 (2015년 하반기)

    페이지 정보

    작성일2017-06-26 조회수 : 19

    본문

    책머리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떠도는 유행어 중에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단어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헬조선(Hell朝鮮)은 2010년에 등장한 대한민국의 인터넷 신조어이다. 헬(Hell: 지옥)+조선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특정 커뮤니티의 극소수의 네티즌들이 사용했으나 언론이 쓰면서 더 알려지게 되었다. 비슷한 개념을 가진 다른 용어로 ‘지옥불반도’라는 단어도 사용된다.”

    어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한반도가 젊은이들에게 ‘지옥’이 되었을까? 그동안 보수적인 어른들은 이를 무능하고 게으른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국가 탓, 부모 탓으로 돌리는 불평불만 정도로 치부해왔다. 그런데 최근 이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나왔다. 즉 좌파 역사학자들이 쓴 역사교과서를 가지고 좌파 역사교사들이 한국사, 특히 한국현대사에 대해 역사적 사실과 본질을 왜곡하고 편협한 역사의식을 가르쳤기 때문에, 학생들이 우리나라는 “참 못난 나라다”, “중진국으로 영원히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패배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바로 대안도 제시되었다. ‘90%가 좌파’인 역사학자들에게 교과서를 맡길 수 없으며, ‘긍정적 역사관’에 입각해 정부가 직접 ‘올바른’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명쾌한 해답과 대안 제시이긴 한데 금세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중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국정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논리의 모순은 논외로 하더라도, 원래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들이 근대화, 산업화, 선진화 논리에 기반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좌파’로 몰아붙였던 극우적 성향의 네티즌이었다는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게 단지 패배주의 때문에 유행하게 되었을까? 오히려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담아낸 젊은이들의 유쾌한 ‘조롱’이 아닐까? 근본적인 의문은 따로 있다. 학생들에게 ‘부정적 역사관’, ‘패배주의’를 심어준 것으로 낙인찍힌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올바르지 못한’ 역사를 배웠을까? 그들 대부분은 1974년 유신체제 때부터 만들어졌던 국정 역사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공부했다.

    이는 앞으로 국가가 소위 ‘긍정적 역사관’에 입각해 역사를 미화하는 국정교과서를 만든다 할지라도, 그리고 생각보다 오랫동안 세련된 방식으로 학생들의 머릿속에 국가가 독점한 역사관을 주입한다하더라도,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효과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단지 책을 통한 지식의 전달과 습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명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책을 넘어 현실 문제와 끊임없는 긴장감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진정으로 젊은이들을 걱정한다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젊은이들의 ‘패배주의’와 ‘불평불만’을 바로잡겠다는 헛된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헬조선’이라는 조롱 속에 담긴 그들의 절망과 분노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성찰을 배제한 역사 미화라는 ‘정신승리’ 수준의 ‘진통제’는 잠시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절망과 분노의 근본 원인이 치유되지 않는 한 과거 국정 역사교과서가 그랬듯이 오히려 ‘내성’만 키워줄 뿐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역사문제연구 34호가 간행되었다. 이번호에는 두 가지 주제의 ‘특집’ 논문들이 실렸다. 첫 번째 특집 주제는 ‘한일협정 전후 재일조선인 사회의 변화’이다. 2015년은 해방 70주년, 한일협정 체결 50주년, 베트남전쟁 전투병파병 50주년을 동시에 맞이한 해였다. 역사학은 ‘시간’을 다루는 학문인만큼,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주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다. 특히 근현대사는 연구대상과의 시간적 거리가 짧은 만큼 10년 단위의 주기마다 연구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기존 연구를 결산하고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관성적으로 비슷한 연구를 반복하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에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에서는 ‘주년’을 기념하면서도 동시에 연구사적인 의의를 최대한 살리고자, ‘한일협정 체결 50주년’과 관련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했던 ‘재일조선인’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기로 했다. 우선 조경희의 「한일협정 이후 재일 조선인의 국적과 분단정치」는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재일조선인의 ‘협정영주’허가 신청과 국적 변경에 대해, 한일정부의 개입과정과 재일조선인 사회의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이 논문에 따르면, 한일협정을 통한 ‘협정영주’자격의 신설은 한국적 재일조선인의 법적지위를 진전시켰지만, 재일조선인사회에 첨예한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재일조선인들에게 국적은 인권이나 민족자결권의 근거보다는 분단체제 하 경쟁의 도구이자 어느 한 체제로의 소속 증명의 도구 역할을 했다. 다음으로 박광현의 「김달수의 자전적 글쓰기의 정치-‘귀국사업’과 ‘한일회담’을 사이에 두고」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재일조선인 소설가, 역사가, 저널리스트 김달수의 삶과 작품을 분석하여, 그의 자전적 글쓰기가 북한 ‘귀국사업’과 한일협정 체결을 거치면서 어떻게 연속되고 변화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이 논문에 따르면, 그의 자전적 글쓰기는 ‘필연적 희생’이라는 재일조선인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형식을 취했으며 30년 가까이 변함없이 1950년대까지의 청년시대에 제한된 자기 이야기만을 다뤘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이후 그의 글쓰기에서 조국과의 갈등은 점차 내면화, 소극화되기 시작했고 결국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역사문제연구 34호의 두 번째 특집 주제는 ‘1960~70년대 자본과 소비’이다. 이 특집에는 역사문제연구소 ‘6070세미나반’의 하계워크샵에서 발표된 두 편의 논문을 담았다. 이 워크샵은 1960~70년대를 자본주의 한국 사회의 형성기로 보고, 이 시기 자본주의의 핵심요소인 ‘자본’과 ‘소비’ 동향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었다. 먼저 이은희의 「박정희 시대 콜라전쟁」은 내핍을 강조하던 1960년대 한국 사회에 어떻게 소비문화의 대명사인 ‘코카콜라’가 들어와 일상품으로 자리매김했는지 분석하였다. 이 논문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가 코카콜라의 국내진출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음료 같은 내수업종에서도 다국적기업과 손잡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정부의 소비억제정책은 균열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이정은의 「자본시장 육성과 기업공개-1967~1973년 전경련의 추진과 기업의 시행을 중심으로」는 증권시장의 성장기반이 닦인 1967년부터 1973년 동안 대자본과 이를 대변하는 전경련이 왜 기업공개를 통한 자본시장 육성을 추진했고, 이것이 당시 정부 정책과 어떤 연관이 있었으며, 실제로 어떤 양상을 보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아직 한국 대자본의 대부분은 기업공개에 대해 회피적이었지만, 정부가 내자동원 방안으로 기업공개 카드를 검토하자 전경련을 중심으로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68년을 기점으로 기업공개와 주식상장을 하는 회사 수가 점차 증가했고, 증권시장 본래의 기능인 장기자본 조달, 나아가 전경련이 의도한 ‘기업자금 조달원의 다각화’도 점차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최근 역사문제연구가 가장 많은 공을 들여 준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저작비평회’이다. 이번 34호의 경우 다뤄야 할 주요 저작이 많아 모두 두 편의 저작에 대한 비평회를 각각 실시하였다. 첫 번째 저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최초의 박사학위논문(일본어)을 15년 만에 번역하여 책으로 간행한 윤명숙의 『조선인 군위안부 일본군위안소제도』(이학사, 2015)이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학술영역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국제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록 15년 전의 연구이지만 그 연구사적 의의는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판단되어 이 책을 저작비평회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시현, 김헌주, 한혜인 세 분이 논평자로 나서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저작비평회의 두 번째 저작은 역시 박사학위논문을 최근 책으로 출간한 유경순의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기록』1,2(봄날의박씨, 2015)이다. 이 책은 필자가 다년간 수행한 1980년대 학출노동자에 대한 구술면담을 바탕으로, 아직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못한 1980년대 노동운동사에 대한 역사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김원, 황병주, 장미현 세 분의 논평자가 저작에 대한 꼼꼼한 비평을 해줬다. 필자와 논평자는 물론 저작비평회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일반 연구논문으로는 여러 편이 투고되었지만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5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나카바야시 히로카즈의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과 동화주의-식민지민에 대한 제국민의식 창출의 시도」, 오미일의 「일제강점기 원산의 일본인 사회와 지역 단체」, 양정필의 「근대 개성상인의 사환제(使喚制)와 그 변화」, 김진혁의 「재북(在北)의사의 식민지·해방 기억과 정체성 형성(1945~1950) 평양의학대학, 함흥의과대학, 청진의과대학 자서전을 중심으로」, 김선호의 「조선인민군 군인의 형성과 근대적 규율-인민군의 교육·내무생활·기율규정을 중심으로」등이다. 지면 관계상 구체적인 내용소개는 생략하겠고, 관련주제의 연구에서 연구사적 의의가 충분히 인정되어 게재되었다는 점만 밝힌다. 그밖에 이번호에서는 저작비평회 이외의 ‘서평’을 넣지 않는 대신, 최근 한국사회를 강타한 메르스사태를 다룬 ‘주제비평’을 시도하였다. 정민재의 「전염병, 안전, 국가-전염병 방역의 역사와 메르스 사태」는 전염병이 한국의 근대국가와 사회의 역사에 끼친 영향을 시계열적으로 정리하면서, 이러한 역사적 기반 위에서 메르스사태 당시 정부의 초기 대응 미숙 문제를 분석하였다. 끝으로 34호 맨 마지막에는 지난 역사문제연구 33호에 실렸던 4인의 집담회 「젊은 역사학자들 『제국의 위안부』를 말하다」에 대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의 반론 「젊은 역사학자들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를 실었다. 33호에 실렸던 집담회 글과 34호에 실린 반론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이번에도 역사문제연구가 풍성하게 간행될 수 있었다.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이번호부터는 편집위원장 바뀌고 편집위원이 몇 분 더 충원되었다. 그동안 고생하셨던 전임 편집위원장과 앞으로 계속 수고해주실 모든 편집위원께도 감사드린다. 그러나 『역사문제연구』 34호를 간행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역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때문이다. 이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부디 이번 논란이 단순히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할 것인가 ‘검인정’으로 할 것인가 ‘자유발행제’로 할 것인가의 차원을 넘어, 학생들이 자기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데 ‘힘’이 되는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념과 색깔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고자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는 이번 34호의 표지를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와 거부의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혹시 보기에 불편함이 있으시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눠주시길 바란다.






    --------------------------------------------------------------------------------






    목    차



    책머리에



    특집 1. 한일협정 전후 재일조선인 사회의 변화

    조경희, 한일협정 이후 재일조선인 ‘국적’과 분단정치

    박광현, 김달수의 자전적 글쓰기의 정치: ‘귀국사업’과 ‘한일회담’을 사이에 두고

     

    특집2. 1960~70년대 자본과 소비

    이은희, 박정희 시대 콜라전쟁

    이정은, 증권시장의 작동과 주식대중화

     

    저작비평회 1. 위안부 제도와 위안부 연구, 그 현황과 과제를 묻는다

    윤명숙, 『조선인 군위안부와 위안소제도』, 이학사, 2015

     

    저작비평회 2. ‘학출’의 삶을 통해 1980년대를 역사화하다

    유경순,『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1, 2, 봄날의 박씨, 2015

     


    일반논문

    나카바야시 히로카즈, 데라우치·하세가와 총독기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과 동화주의

    오미일, 일제강점기 재조일본인 사회와 지역 단체: 개항장 도시 원산지역을 중심으로

    양정필, 근대 개성상인의 사환제와 그 변화

    김진혁, 재북(在北)의사의 식민지·해방 기억과 정체성 형성(1945~1950)

    김선호, 조선인민군 전사의 탄생: 인민군의 교육훈련, 내무생활, 기율 규정을 중심으로

     

    주제비평

    정민재, 전염병, 안전, 국가 전염병 방역의 역사와 메르스 사태

     

    반론

    박유하, 젊은 학자들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