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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통권 121호/ 2017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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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12-04 조회수 : 9,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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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말선초, 연속성의 관점에서 본 왕조교체

세계인식과 국제관계

 

2017년 겨울호의 특집은 지난 호에 이어서 여말선초 시기의 변화와 연속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이번호에서는 당시 동아시아 국제정세의 흐름 속에서 몽골(), 명과의 외교관계를 지속하는 가운데, 고려와 조선이 어떻게 왕조의 위상을 설정하고 통치의 기반을 수립했는지 살펴보면서 조선 건국을 전후한 시기의 연속성과 단절성을 분석하고자 했다. 이러한 시도는 조선의 건국을 새로운 사회와 체제의 탄생으로 바라보는 기존의 연구와 다른 시각을 제시하는 것으로서, 향후 학계의 생산적인 논쟁을 이끌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15세기 천하질서하에서 고려와 조선의 국가 정체성」(최종석)은 원 복속기를 기점으로 고려와 조선의 자기정체성 인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원 복속 이전의 고려는 중국 왕조와 대외 방면에 한해 군신 의례를 매개로 결합하였을 뿐, 국내적으로는 독자성이 뚜렷했다. 그러다 원 복속기를 분수령으로 하여 국가(국왕)의 자기정체성 설정 방식이 혁명적으로 변화하였다. 원 복속 하에서 고려는 국내적으로도 신하+군주위상과 제후국 체제를 받아들였다. 자신이 보통의 오랑캐와 달리 중화 문명(문화)을 추구·구현하였고 원의 천자를 정점으로 한 천하 질서 내에서 제후()라는 본분을 다하고 있다는 식으로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정당화하였다. 이는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를 경과하면서 더욱 내향적·자기 신념적 면모를 강화해 나갔다.

「성지(聖旨)를 통해 본 여말선초의 정치·외교환경」(이명미)은 황제의 말씀, 즉 성지(聖旨)가 고려 혹은 조선의 정치에서 작용하는 양상을 통해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외교 환경이 갖는 연속적인 측면을 살펴본 것이다. 중국 황제가 고려의 내정 문제를 언급하고, 그 성지가 고려 정치에서 실제로 작용한 것은 원 복속기에 처음 발생한 현상이다. 이 현상은 명과의 관계에서는 변화를 보여, 명 황제권은 고려 혹은 조선의 내정 문제에 직접적으로 작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려 말 조선 건국 세력은 스스로의 필요에 따라 명 황제권을 소환했고, 명 홍무제의 성지는 해석의 과정을 거쳐 폐가입진(廢假立眞)’이라는 조선 건국의 명분을 제공했다.

「몽골제국의 붕괴와 고려-명의 유산 상속분쟁」(정동훈)은 고려가 명나라와 공존하던 25년 동안 어떤 식으로 관계를 설정하였는지 검토하고 있다. 몽골제국은 이전 시기의 송·금에 비해 중국의 크기를 키우고 위상을 높여놓았고, 명은 이를 고스란히 계승하고자 하였다. 고려는 의례적 차원에서 과거 몽골제국에 보였던 공순한 자세는 그대로 취했지만, 영토나 인구 등 실질적 사안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자신의 이권을 챙기고자 하였다. 1388, 명의 철령위 개설과 이에 반발한 고려의 요동 공격 시도는 그 갈등이 폭발한 장면이었다. 결국 양국은 의례적 차원에서는 양자의 상하관계를 엄격히 밝히고, 실질적 차원에서는 관할 영역과 인구를 분명히 가르는 방식으로 유산 상속 분쟁을 마무리지었다. 이렇게 마련된 양국 관계의 기본 틀은 이후 조선-명 관계에서도 대체로 준수되었다.

「고려·조선의 국제관계에서 역서가 가지는 의미와 그 변화」(서은혜)는 역서의 반사 양태를 통해 원-명과 고려-조선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했다. 조선의 역서 편찬에서 보이는 가장 큰 특징은 조선이 천자국의 시간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관념하에 중국에서 반사한 역서와 완전히 동일한 역서를 편찬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그 전제는 중국으로부터의 정기적인 역서 반사 시행이었다. 정기적인 역서 반사는 몽골 복속기에 처음으로 시행되었다. 여말선초 시기에 명은 고려국왕을 책봉하고 정기적으로 역서를 반사하고자 했으나 양국관계의 악화로 인해 현실화되지 못했다. 영락제 즉위 후 매년 역서를 반사해주는 것을 제도로 삼았다. 이에 조선은 천자국의 시간질서를 따라야 한다는 관념을 역서 편찬에서 실천할 수 있게 되었다.

 

 

근대 신화와 우상의 탄생

거북선이 잠수함이 된 까닭은?

 

근대 우상과 신화의 탄생을 주제로 하는 기획연재는 이번호를 시작으로 앞으로 매호 1~2편씩 연재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번호 거북선-잠수함론을 시작으로 허황한 소문이 역사적 사실로 둔갑하는 과정을 추적하면서 우상과 신화 탄생의 배경과 그 실체, 그리고 그 뒤에 감춰진 한국 근대의 속살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억의 독점은 과장과 왜곡을 낳는다. 특히 민족이야기라는 거대서사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이를 주도하는 권력과 지식인들은 민족혹은 국가의식의 창출을 위해 구미에 맞도록역사를 활용한다. 거북선이 잠수함이라는 신화는 3·1운동 직후 한국의 민족주의가 한국인들의 문화적 역량을 입증해 보이려는 과정에서 창출되었다. 최초의 시작은 철갑선이라고 해야 할 것을 철갑잠항정이라고 몇 글자 더해 번역한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매체와 매체를 건너 전하면서, 오역은 확신에 찬 민족주의적 감성과 결합했다. 학술적 검증은 물론이고 상식적인 의문조차 거치지 않은 채, 거북선-잠수함론은 의심할 수 없는 역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제 잠수함 거북선의 역사가 생생하게 날조되었다. 자연스럽게 이순신은 위대한 과학 영웅으로 재조명되었고, 발명 천재 이순신의 일화들이 스스럼없이 만들어졌다. 거북선-잠수함의 신화는 해방 이후에도 바로 사라지지 않고 반세기 이상 한국인들의 민족주의적 감성을 자극하며 떠돌아 다녔다. 이는 민족주의적 역사가 어떻게 가공되고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며 확산되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차례 

 

책머리에 항산항심(恒産恒心) / 박태균

특집: 조선 건국 다시보기, 연속성의 관점에서 본 왕조 교체 세계인식과 국제관계

13~15세기 천하질서하에서 고려와 조선의 국가 정체성 / 최종석

성지(聖旨)를 통해 본 여말선초의 정치·외교 환경 / 이명미

몽골제국의 붕괴와 고려-명의 유산 상속분쟁 / 정동훈

고려·조선의 국제관계에서 역서가 가지는 의미와 그 변화 / 서은혜

시론 사드(THAAD)와 한국 보수주의의 중국인식 / 김희교

대담 한국전쟁과 동아시아 냉전 체제 / 션즈화·정근식

특별기고 10년 전의 기억, 새로움을 위한 제언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5·18 조사 활동과 평가 / 노영기

기획연재: 근대 우상과 신화의 탄생

발명왕 이순신과 잠수함이 된 거북선민족주의 신화의 형성과 확산 / 이기훈

반론 왜 백성의 고통에 눈을 감는가광해군 시대를 둘러싼 사실과 프레임 / 오항녕

역비논단 군함도, 산업유산과 지옥관광 사이에서 / 한정선

박정희 시대 빙과열전(氷菓熱戰) / 이은희

인조의 대중국 외교에 대한 비판적 고찰 / 조일수

스탈린 외교를 바라보는 한 시각, 1927~1953 / 노경덕

서평 군인 박정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박태균

―『Park Chung Hee and Modern Korea: The Roots of Militarism, 1866~1945』(Carter J. Eckert, Harvard University Press, 2016)

일제하 개신교와 독일 가톨릭 선교 / 이용일

―『Koloniale Zivilgemeinschaft. Alltag und Lebensweise der Christen in Korea(1894-1954)』(You Jae Lee, Frankfurt a.M.: Campus Verlag, 2017)

반지성주의와 지식인의 한계 / 박진빈

―『미국의 반지성주의』(리처드 호프스태터 지음, 유강은 옮김, 교유서가, 2017)

역사교육에서 시민교육의 길 찾기 / 김한종

―『역사는 왜 가르쳐야 하는가민주시민을 키우는 새로운 역사교육(키쓰 바튼·린다 렙스틱 지음, 김진아 옮김, 역사비평사,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