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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 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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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8-24 조회수 :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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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반지하 주택에 살던 가족이 폭우에 탈출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이 들이 삶을 이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 폭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그 피해는 약자에게() 온전히 닥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때는 20여 년 전이었다. 2001년에 강원 영서 지역에 폭우가 쏟아졌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서울에서 뉴스로 산 너머 물구경이었던 셈인데 그때의 생각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아마도 인제였던 것으로 기억하고, 산사태로 집이 폭삭 무너졌는데 그 안에 사람이 있다는 뉴스였다. 폭우는 인간의 영역이 아니지만, 산 밑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가혹하다고 느껴졌다. 하루아침에 삶이 끝날 가능성이 강원도에서는 훨씬 높은 것 같았다.

이 생각은 이어진 2002년 태풍 루사로 더욱 굳어졌다. 강원 영동 지방에 엄 청난 비를 뿌렸고, 또 산이 무너졌고 수백 명이 사망·실종된 것을 듣자니 반복되는 피해에 어이가 없었다. 이번 폭우로 서울 도심에서의 재난 피해가 저소득, 장애인 계층에게 지극히 불평등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상기했지만, 오래전부터 지속해온 지역 간의 재난 불평등 역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지역 간의 불평등과 위계 의식은 재난에 국한하지 않는다. 과거 관습헌법이라는 논리로 좌절시켰던 오류를 딛고, 수도를 이전한다고 해도 수도권 집중 경향이 완화될지도 의문이다. 지역대학에서는, 학교든 직장이든 수도권에 가야 할 것만 같은 불안감을 안고 있는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칠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사는 강원도는 내년부터 강원특별자치도로 출범한다. 특별자치도 법안이 통과된 후 도청 앞 도로에는 지역사회단체들의 축하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렸다. 나는 강원도에 산 지 3년 째인 외지출신이지만 강원도민의 꿈 실현!’, ‘숙원 성취’, ‘행복 시대라는 현수막의 글귀를 보고서 왠지 뿌듯하고 내게도, 한림대 학생들에게도 새로운 꿈과 행복의 시대가 열릴지 모른다는 상상을 해보았다.

그것이 막연한 상상에만 그치지 않게 이미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지역의 역사를 기록하고, 시민들이 공유하며, 학생들이 배우면서 새로운 생각과 경험을 해나가는 것이다. 춘천에서는 춘천학연구소가 시민기록단, 증언록, 동지(洞誌) 등 지역 역사를 발굴하고 서술하는 사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학생들도 참여하였다.

역사를 왜 가르치고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는 어느 역사 연구자에게도 중요한 질문일텐데, 강원도의 대학에서는 인문학이 불평등과 차별에 저항하고, 지역의 다양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찾는 것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중요할 것 같다. 강원특별자치도에서도 기업 중심의 규제 완화를 실행하는 것을 넘어서 역사와 문화를 토대로 균형 발전과 지속적 평화라는 가치를 시민들과 같이 실현해 가길 기대한다.

이번 호 특집에서는 아래로부터의, 지역의, 불평등의 역사를 천착해 온 민중사 연구의 흐름을 볼 수 있다. 세 편의 논문은 2021년 역사문제연구소 정기심포지엄의 성과이자 민중사를 주제로 한 글들이다. 배항섭, 소현숙의 글은 그간의 한국근현대사 연구의 성과를 정리하면서도 앞으로의 민중사, 나아가 역사연구에 대한 묵직한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김태현은 식민지기 법령 위반의 의미를 재조명하였다. 연구소의 민중사반은 민중개념의 시대적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 가능성을 모색하며 여전히 민중사반으로 활동 중이다.

정기심포지엄을 준비하는 과정과 토론에서 민중사의 문제의식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역사연구의 위기와 미래, 연구자의 위치와 연구 대상(주체)과의 연대 등 다채로운 논의가 이어졌다. 근대와 민중과의 관계, 민중의 다양성을 발견하면서도 현재 직면한 불평등과 기후변동에 대응할 민중사 연구, “이름 없고 역사 없는사람들의 역사학을 향한 배항섭, 소현숙의 깊은 고민이 많은 연구자에게도 영감을 주리라 기대한다.

연구논문 5편 중 4편이 일제시기 논문으로 꾸려졌는데, 분야와 주제가 다양하다. 임이랑은 1910년대부터 1941년까지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졸 업생들의 진학과 진로를 분석하였다. 경성제국대학 예과와의 관련성이나 만주 학교 진학 등 시대 변화와 맞물리는 졸업생들의 행보가 흥미롭다. 김명재는 1920년대에 조선에 유물변증법이 수용과 함께 발전개념이 형성되지만, ‘모순봉건개념을 통해 정체개념이 동시에 구성된다고 보았다. 세계 보편으로써의 사적 유물론의 이해 속에서 아시아적·식민지적 현실에서 조선과 농촌 사회를 해석하고자 했던 사회주의 지식인의 인식이 주목된다.

이명학의 논문에서는 식민지기 주택 문제를 다루었다. 조선총독부가 국 유림을 정리하고 보안림을 개방하여 택지를 조성하고, 재개발을 하는 과정이 구체적으로 그려졌다. 주택 공급이 확대되어 자가 소유자가 늘어날 때 철거민도 동시에 늘어나는 모습은 현대와도 거의 동일하게 겹친다. 하종문은 오키나와의 오키다이토섬에 있었던 일본군 위안소의 실태를 규명하였다. 당시 주둔군의 진중일지를 분석하였는데, 위안소가 철저하게 군의 통제하에 있었고, ‘위안부는 민간인과 달리 노예상태이면서 군대의 요원으로 간주되었다고 강조하였다. 이와 같은 위안소와 위안부의 실체에 접근하는 연구가 더 진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노영기의 연구에서는 군()의 명령, 인사자료, 부대일지와 보고서 등의 자료로 한국군 창설 과정을 분석하고, 4·3사건 및 여순사건 전후 군의 권한과 역할이 강해졌음을 구체적으로 밝혔다. 군의 활동과 성격은 한국현대사를 해명하는데 중요한 쟁점인 만큼 더 많은 자료 공개와 심화한 연구가 필요하겠다.

저작비평회와 서평에서는 현대사의 굵직한 저작을 만날 수 있다. 정진아의 한국 경제의 설계자들을 두고서는 가장 밀접한 주제들을 연구하는 박태균, 오진석, 홍정완이 중요한 쟁점들을 다수 제기하였다. 1950년대를 바라보는 토론자들의 견해 차이도 생동한다. 홍석률은 허은의 냉전과 새마을이 대유격전을 매개로 만주, 한국, 베트남, 반공새마을로 동아시아 냉전의 연쇄를 잘 보여주었다고 호평하는 가운데 연구 쟁점, 새마을운동이나 관련 연구·개념과의 관계에 관한 아쉬움도 남겼다. 두 저작이 현대사 연구의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하였고, 이후 후속 연구의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독자들의 일독을 권한다.

현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는 8월 말로 임기를 마치고 9월부터 새 편집위가 꾸려진다. 학술지 편집위원의 활동은 자발적인 의지와 봉사하는 마음에 기댄다 『역사문제연구』의 편집위원 중 이름만 걸어 놓은분은 없었다. 더 나은 학술지를 만들고 싶다는데 뜻을 같이 하여 기획과 특집, 심사위원 선정, 서평 및 저작비평회, 집담회 등 모든 구성을 함께 논의하였다. 차기 편집위원회의 활동에도 많은 격려와 질정을 바라며 여러분들이 필자, 심사자, 서평자, 토론자, 사회자, 그리고 독자로 역사문제연구와 더욱 활발히 만나기를 기대한다.

20228

김아람

 

목차

 

특집 새로운 민중사제안으로부터 10, 성과와 과제

배항섭 | ‘새로운 민중사이후 민중사 연구의 진전을 위하여 - 19세기 말~20세기 초를 중심으로 -

소현숙 | 마이너리티 역사, 민중사의 새로운 혁신인가 해체인가?

김태현 | 식민지시기 산림이용권을 둘러싼 갈등과 그 성격

 

저작비평회

1950년대 한국 경제정책의 사상적 맥락과 역동

저작: 정진아, 『한국 경제의 설계자들-국가 주도 산업화 정책과 경제개발계획의 탄생』(역사비평사, 2022)

사회: 한봉석

토론: 박태균, 오진석, 홍정완

 

연구논문

임이랑 | 일제시기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학생의 진학과 진로

김명재 | 1920년대 중·후반 식민지 조선의 사적 유물론전개 과정에서 발전(發展)’정체(停滯)’의 관계성 - ‘발전모순’·‘봉건개념을 중심으로 -

이명학 | 1920년대 후반~1930년대 중반 조선총독부의 주택 공급 조성과 자가 확대의 이면 - 경성 지역을 중심으로 -

하종문 | 오키다이토섬의 일본군 위안소

노영기 | 군 자료를 통해 본 한국군의 창설과 변화 - 국방경비대·육군을 중심으로 -

 

서평

홍석률 | 밑으로부터의 냉전, 유격전과 대유격전 : 허은, 『냉전과 새마을: 동아시아 냉전의 연쇄와 분단국가체제』 (창비,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