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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 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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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05-03 조회수 : 753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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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식민지 조선 사회>

이정선 | 총력전체제 하 일본의 인구정책과 식민지 조선인

백선례 | 1940년대 초 조선총독부 후생국의 신설과 폐지

구병준 | 전시체제기 조선인 생명표 작성과 소아보험 제도 실시

윤현상 | 전시체제기 교육확충정책과 일본인 교원의 조선 이입

 

연구논문

허 수 | 20세기 한국에서 사용된 민중의 의미 - 주요 신문 기사를 중심으로 -

모리타 토모에 | 식민지 조선의 관광산업 형성 - 1930년대 경성관광협회의 조직과 활동

이봉규 | 1960년대 노사관계 담론의 양상과 노사협조

 

서평

황지성 | 백치라 불린 사람들, 그 끝나지 않은 역사 : 콜로니에서 지역사회 케어시설까지, 우생학에서 정상화 이론까지

: 사이먼 재럿, 최이현 옮김, 정은희 감수, 『백치라 불린 사람들 -지능과 관념··문화·인종 담론이 미친 지적 장애의 역사』 (생각이음, 2022)

 

집담회

젠더사 교육과 현실

패널: 김아람, 김은경, 소현숙, 이정선, 임이랑, 장원아, 정계향, 조은정, 한봉석

 

 

<책머리에>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은 피해자에게 강박적으로 강조되는 치유와 화해의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영화는 피해자의 충분한 이해를 동반하지 않은 일방적인 사과와 치유가 어떻게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지 잘 보여준다. 한국의 많은 과거사 문제, 그중에서도 일제 식민지 지배로 인한 피해 문제 역시 비슷한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일본은 표면적으로는 내선일체와 일선동조를 표방했지만, 실질적으로는 다양한 방식으로 조선인을 차별하고자 했다. 따라서 그 차별의 내용은 언제나 중층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악명 높은 치안유지법도 식민지 조선에서는 더 무겁게 적용되거나, 혹은 법에 기록되어 있지 않은 다양한 조치들이 조선인들을 위한다는 명목 하에 졸속적으로 처리되곤 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종종 은폐되었기 때문에, 피해자인 조선인들이 자신들의 피해를 알기 위해서는 훗날 역사화의 과정을 기다려야만 했다.

일본의 가해가 역사적으로 해결될 기회는 있었다. 전후 일본의 전쟁 책임을 물었던 도쿄재판과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 그리고 한일회담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해방 이후 샌프란시스코 평화회담에서 배제되었던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역사적 과오에 대한 적절한 사과와 배상을 받지 못했다. 국제사회는 이 문제가 두 나라 사이에 해결할 문제라고 결정하였다. 그러나 주지하다시피 한일회담 과정 역시 순탄하지 않았다. 양국 간 구상서 논쟁부터 시작해서, 기나긴 논박이 오고 갔던 결과물은 정권의 필요에 따라 많은 반대 속에 체결되었고, 개인의 청구권 문제 등 여러 논쟁거리를 남겨두었다.

1980년대 한때, 일본 사회는 과거사 문제를 잠재울 근린제국 조항이라 는 내용을 교과서 편찬에 반영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일본 교과서를 작성할 때, 이웃 제국에게 상처를 줄 수 있는 내용은 반영하지 않겠다는 선언이 었다. 일본군 위안부문제도 한때 자민당이 자리를 비운 사이, 약간의 진전을 도모하는 듯도 했다. 그러나 결국 그 후의 역사적 전개는 양국 간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근본적 인식의 차이가 있음을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이 긴 과정을 논하는 것은 무척이나 섬세한 작업이며, 그 누구도 양국 간의 모든 문제를 단칼에 해결하지는 못한다. 양국의 역사학자들은 사료가 공개되길 기다리거나, 혹은 상호 간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거나, 혹은 피해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등, 부족하나마 징검다리를 이어가고자 했다. 일본 내에서 과거사를 반성하는 목소리는 줄어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아예 이러한 인식 자체가 부재한 것은 아니었다. 즉 겉으로는 이 느린 과정이 답보상태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내용적으로 양국 간의 논의가 조금씩 진전을 이어오고 있었던 셈이다. 또한 이러한 과정은 시간의 낭비가 아닌 피해자의 발화를 기록하고, 역사화하는 과정을 통해 역사적 치유과정을 동반하는 시간으로 활용되었다. 1990년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과거사 문제 처리에서 드러났듯이, 지나치게 당대에 근접한 역사 적 문제들은 현실적 여건으로 인해, 바로 명쾌한 해결책을 도모하긴 어려운 법이다. 이 경우 과거사를 대하는 방법은 전환기적 정의라는 방식을 통해 우선 가해의 내용을 명확히 하고, 피해자의 발화와 치유를 도모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소 논란이 될 수 있는 추가적인 해법은 시간의 흐름을 기다린다. 이러한 해법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겠지만, 식민지의 피해를 이중 삼중으로 겪은 전 세계의 공동체가 어렵게 도달한 한 지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학자들과 시민사회는 이러한 여러 국제 사회의 경험을 한일 간의 역사적 해법에 느리지만 의미 있게 반영해오고 있었다.

최근 정부는 한일 양국 간의 의견 차이에도 불구하고, 일제시기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해법을 시민사회, 그리고 여러 공동체들의 동의 없이 마음대로 해결하고 돌아왔다. 그런 연후, 한국정부는 갑자기 한일 양국 간의 장밋빛 미래가 도래했음을 선포했다. 결과적으로 위에서 서술했던 오랜 역사적 교류와 치유의 과정은 또다시 정치에 의해 크게 훼손되었다.

금번 『역사문제연구』 50호에 수록된 논문들은 마침 이러한 시기에 적절한 특집으로 구성되었다. 이번 호 특집은 <아시아태평양전쟁과 식민지 조선 사회>로서, 202211월 역사문제연구소 정기심포지엄 중 일부 결과를 옮긴 것이다. 본 특집은 직접 강제동원을 다룬 것은 아니지만, 총동원 체제 하 조선인이 물자로 간주되고, 차별되었던 정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정선은 두 개의 원사료를 통해, 1940년대 전후 일본인의 인구 구상을 살펴보았다. 이 글은 일본의 인구정책이 일본인을 정상으로 간주하고 그 재생산을 도모하되, 조선인은 일본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물자와 같이 취급하였던 일본의 시선을 잘 보여준다. 일본인의 조선반도 이주를 위해 조선인의 뉴기니아 이주 제안 등, 흥미로운 대목이 많다.

백선례는 조선총독부의 후생국 설치와 폐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그는 결국 일본의 후생정책이 복리후생보다 노무동원에 그 목적이 있었음을 강조하였다. 구병준은 1930년대 후반 조선인의 사망률을 반영하고 있는 생명표를 둘러싼 조선총독부 체신국과 의학계 간의 논쟁을 소개하였다. 소아보험 실시를 앞두고 벌어졌던 이 논쟁은, 일본이 결국 조선인의 정확한 재생산, 그리고 유아사망률 등 기본적 요소들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윤현상은 전시체제기 황민화 교육을 담당할 일본인 교원의 조선 초빙을 다뤘다. 이 글은 올바른 황민화 교육을 수행할 주체로 조선인 교원을 믿지 못했던 조선총독부가 내지교원을 초빙하는 과정에서 재정난에 시달리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차별의 중층성은 일반 논문으로 수록된 모리타 토모에의 글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는 1933년 경성관광협회의 출범을 통해 식민지 관광에 드러난 새로운 산업집단의 의미를 역사화하고자 했다. 그는 1930년대 조선의 관광 트렌드가 일본 본국에서 유입된 것이되, 협회의 개발 과정은 새롭게, 민족, 젠더, 계급 관점에서 차별적으로 재구성되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이번 호 일반 논문은 역사학계에서는 생소한 방법론을 통해 의미 추적을 시도한 허수의 글과, ‘왜 전태일은 분신할 수밖에 없었나?’1960년대 노사관계론에서부터 추적하고자 했던 이봉규의 글이 수록되었다. 허수의 글은 텍스트 마이닝이라는 새로운 방법론을 적용해 20세기 내 민중 담론의 시기적 변화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봉규의 글은 냉전 하 서구 근대화론의 유입 이후 국내 학자들, 그리고 김윤환, 박현채의 논의를 꼼꼼히 추적하여, 그 역사적 양태를 다루고자 하였다. 그의 글은 1960년대 근대화론의 한국적 전유가 노사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번 호에는 귀한 서평이 있다. 장애 분야에 출간된 『백치라 불린 사람들 - 지능과 관념··문화·인종 담론이 미친 지적 장애의 역사』(샤이먼 재럿, 최이연 옮김, 정은희 감수, 생각이음, 2022)에 대해 이 분야의 뜨거운 신예 연구자인 황지성 선생님의 서평을 수록한 것이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 연구자 및 활동가의 입장에서 이 글을 어떻게 읽어내릴 것인가를 흥미롭게 작성해주셨다.

마지막으로 이번 호에는 오랜만에 연구자들의 집담회가 수록되었다. 금번 집담회는 본 잡지가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있던 주제인 대학 내 젠더사 교육과 현실을 다루었다. 각 대학에서 젠더사를 직접 다루거나, 혹은 수업 시간 속에 그러한 문제 인식을 녹여낸 연구자 아홉 분을 모시고 대화를 진행 하였다. 다소 거친 느낌이지만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지금 현재 교실 내 젠더사의 동향을 어림잡아볼 수 있는 결과물이 나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역사문제연구』 50호는 마감 과정에서 국내 외는 물론 편집부에서도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다. 이번 호에 다루지 못했던 많은 논쟁들이 다시금 여러분을 찾아갈 수 있도록 노력하도록 할 것이다.

20233

한봉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