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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평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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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7-12-17 조회수 : 7,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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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형 평전1
  
  ― 중국․일본에서 펼친 독립운동


강덕상 지음 / 김광열 옮김
신국판|본문 576쪽|23,000원|ISBN 978-89-7696-803-6 03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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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운형 평전’을 쓰게 된 동기 중 하나는, 왜 이렇게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규제하는 측이 그의 동향 하나하나에 강하게 주목했는가, 그리고 왜 이렇게 해방정국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에 대해 연구가 빈약하고 그 역사적 평가가 낮은가 하는 데 있었다. 이 책의 의도는 이 인물의 생애를 실증적으로 복원하고, 한국 독립운동사와 관련해서 재조명하는 데 있다.              ―강덕상,〈저자 서문〉중에서


20세기 조선 독립운동사의 모든 과정을 함께한 거인, 여운형

한국 역사상 가장 혼란한 시기였던 해방정국 당시, 남북합작과 좌우합작을 주장하던 몽양 여운형은 그 때문에 비운의 죽음을 당하고, 역사에서 말살당한 인물이었다. 일본 국립대학 최초의 외국인 정교수가 되었던 재일교포 역사학자 강덕상 교수는 여운형이라는 당대의 걸출한 인물에 대한 기록이자 당시의 조선 독립운동사를 아우르는〈여운형 평전〉시리즈(전3권)를 발표했다.
〈여운형 평전〉시리즈 중 󰡔여운형 평전 1권― 중국, 일본에서 펼친 독립운동󰡕은 크게 시기별로 나누어 초반, 중반, 후반으로 구분된다. 초반부는 개화기의 계몽운동과 의병전쟁 속에서 여운형이 성장해간 과정을 설명했다. 중반부에서는 3.1독립운동에서 여운형이 한 역할에 주목했으며, 상해 임시정부의 핵심 인물이었던 여운형과 중국의 혁명지도자 손문이 맺은 관계에 대해서도 논했다. 후반부는 3.1운동 이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일본 정부의 여운형 회유공작에 대해 상세히 밝혔다. 일본이 정치계와 종교계 등 다방면의 루트를 총동원한 회유공작은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일본 정계가 사분오열한 끝에 제42회 제국의회에서 하라 다카시 내각이 실각하게 된 과정의 전말을 논증했다.

이후 출간될〈여운형 평전〉시리즈에 관해

역사비평사에서 내년 하반기 출간 예정인 󰡔여운형 평전 2권󰡕은 ‘상해 임시정부편’이라 할 수 있는 내용으로, 지금까지 역사학계에서 소홀했던 임시정부에 관련된 여운형, 이동휘의 역할에 대해 재조명하고 있다. 아직 일본에서도 미출간된 마지막 3권은 저자가 ‘중국혁명의 벗으로서’라는 가제로 구상 중이다. 이승만에 대한 전설, 김일성에 대한 신화를 깨는 데 일조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조선 독립운동사에서 가장 중요했던, 그러나 역사에서 말살당한 비운의 민족지도자

기라성 같은 독립운동가 군상들 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일등성은 바로 여운형이었다. 그는 험난했던 식민지 시기에 중국의 손문, 소련의 레닌, 베트남의 호치민을 비롯하여 일본의 하라 다카시, 우가키 가즈시게 등의 주변 여러 나라 지도자들과 교류하고 서로 솔직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상해 임시정부 요인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인물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올바르게 내려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독립운동사 분야에서 여운형을 살펴본 선행 연구는 거의 없다. 일본 사학계에서도 여운형에 관한 연구다운 연구가 거의 없으며, 북한에서도 개별 연구를 거의 볼 수 없다. 남한은 2005년에 들어와서야 겨우 그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했다.

여운형에 관한 다른 저작들의 문제점

한국에서 오늘날까지 여운형에 관한 저작은 이만규의 󰡔여운형 선생 투쟁사󰡕(1946), 여운홍의 󰡔몽양 여운형󰡕(1967), 한민성의 󰡔추적 여운형󰡕(1982), 이기형의 󰡔몽양 여운형󰡕(1984), 정병준의 󰡔몽양 여운형 평전󰡕(1995), 여연구의 󰡔나의 아버지 여운형󰡕(2001) 등이 있다. 또 자료집으로 󰡔여운형 전집󰡕 전3권(1997)이 있다. 이들 중에서 일부의 저작은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해방 전후 혼란기의 역사를 체험한 사람들의 증언을 자료화해서 분석하고 실증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또 다른 저작들은 특정 시기에 서술이 치중되어 있거나, 여운형의 동지나 가족으로서 알 수 있는 사실들의 단편을 부가했다는 특색 외에는 자전적 형태를 탈피하지 못한 한계를 지녔다.

〈여운형 평전〉시리즈의 필요성과 의의

일본제국이 식민지 지배를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수집한 정보들은 군사・외교를 비롯한 당시 제국의 능력을 총동원한 것으로, 이를 독해하고 분석하면 식민지 지배의 실상이 드러난다. 그 정보들 중에서 양과 질에서 단연 뛰어난 분야는 민족운동 관계 자료였는데, 그 방대한 자료 중에서 등장하는 빈도가 가장 높은 이름이자 1940년대 해방 때까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유일한 이름이 바로 여운형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여운형의 민족자존과 평화공존이라는 사상과 그에 기반한 활동은 해방 이후 건국준비위원회, 조선인민공화국 등이 성립하는 상황에서 한꺼번에 폭발하듯 드러난다.
현역에서 은퇴한 역사가로서 만년의 숙제로 택한 것이 어째서 이런 방대한 분량의 인물사 연구서였는지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왜 이렇게 독립운동을 탄압하고 규제하는 측이 그(여운형)의 동향 하나하나에 강하게 주목했는가, 그리고 왜 이렇게 해방정국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에 대해 연구가 빈약하고 그 역사적 평가가 낮은 것인가” 이 평전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일차적으로는 한 인물의 생애를 실증적으로 복원하고, 이차적으로는 그 삶을 한국 독립운동사와 관련하여 새로운 각도에서 재조명하는 데 있다. 한 인물을 평가할 때는 특정 시기만이 아닌 그 사람의 인생 전체를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충실한 사료 조사와 분석을 바탕으로 여운형이 살았던 시대와 그의 행동 간에 관련성을 입증해낸 이 작업은 일반적인 인물 평전이라기보다는 일제 식민지기를 관통하는 독립운동사 연구서의 역할도 함의하고 있다

이 책의 구성


한국어판을 내면서 / 서문

1장 | 구한말, 위기의 시대상
1. 집안 분위기와 어린 시절 / 2. 학생시절-서양문화와의 만남

2장 | 망국 그리고 계몽가의 길
1. 조선통감부 설치와 의병전쟁 / 2. 기독교 입신과 계몽운동 / 3. 교육자로서의 실천
4. 105인 사건과 조합교회 활동 / 5. 망명을 선택하다

3장 | 중국혁명에 대한 공명과 3.1운동의 태동
1. 남경에서 상해로 / 2. 상해 신아동제회의 활동 / 3. 손문과의 만남, 신한청년당의 결성
4.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하다 / 5. 시베리아에서 알게 된 3·1운동

4장 | 상해 임시정부의 혼란 속에서
1. 블라디보스토크와 한성, 두 정부의 성립 / 2. 상해 임시정부의 성립 / 3. 일제의 탄압
4. 세 임시정부의 상해 통합

5장 | 3·1운동과 5·4운동의 연대를 지향하며
1. 3·1운동에서 5·4운동으로 / 2. 상해에서 한·중 연대의 발전 / 3. 손문과 조선독립운동

6장 |‘문화통치’와 여운형 회유공작
1. 하세가와 총독에서 사이토 총독으로 / 2. 조합교회의 여운형 유치공작 / 3. 공작의 창구, 척식국
4. 방일을 둘러싼 임시정부의 대립

7장 | 일제의 수도에서 외친 독립
1. 고가 척식국장관과의 회담 / 2. 다나카 육군대상 등 정부요인과의 회견
3. 미즈노 렌타로의 ‘문화정치론’을 논박하다 / 4. 제국호텔에서 행한 독립 연설
5. 요시노 사쿠조와 회견하다

8장 | 회유공작 실패로 인한 일본 정계의 혼란
1. 일본 정부 내의 대립과 서울방문 중지 / 2. 하라 내각의 의회대책 / 3. 제42회 제국의회에서 벌어진 논전

역자 후기·주(註)·연보
■ 지은이_강덕상(姜德相)
1932년 한국 경상남도에서 태어났다. 와세다(早稻田)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메이지(明治)대학 대학원 문학연구과에서 동양사를 전공하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히토쓰바시(一橋)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시가현립(滋賀縣立)대학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中公新書),『조선 독립운동의 군상(朝鮮獨立運動の群像)』(靑木書店),『조선인학도출진(朝鮮人學徒出陣)』(岩波書店),『현대사자료』(조선 1~6, みすず書房),『조선 독립운동의 혈사(朝鮮獨立運動の血史)』(譯, 平凡社 東洋文庫),『여운형 평전 1, 2(呂運亨 評傳 1, 2)』(新幹社)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이번에 출간되는『여운형 평전 』1권을 비롯하여『학살의 기억, 관동대지진』이 번역, 소개되었다.

■ 옮긴이
․ 김광열 : 도쿄외국어(東京外國語)대학 일본어학과를 졸업하고 히토쓰바시대학에서 동양사회사 전공으로 사회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광운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재일 한인사회의 형성과정과 한인 강제동원피해 문제, 일본의 전후처리 등에 대해 연구해왔다. 저서로는『패전 전후 일본의 마이너리티와 냉전』,『근현대 한일관계와 재일동포』(공저) 등이 있다.


■ 몽양 여운형(夢陽 呂運亨, 1886.5.25~1947.7.19)
경기도 양평에서 명망 있는 양반가문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 동안에는 교육자이자 종교인, 민족운동가로 활동하다가 국내외에서 항일독립운동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신한청년당을 결성했다. 파리강화회의에 조선 대표단을 파견함으로써 2.6독립선언과 3.1운동의 불씨를 지폈으며, 상해 임시정부 수립의 산파역을 맡는 등 항일독립운동가로서 왕성한 해외활동을 펼쳤다. 일제 말기에는 조선으로 건너와 비합법 비밀결사단체인 조선건국동맹을 만들어 국내 독립운동을 주도했으며, 해방 직후에는 조선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했다. 정부 수립 과정에서 미국과 소련의 외세에서 벗어나 이데올로기에 의한 민족 분단을 막고 한반도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이루기 위해 좌우합작 남북연합의 기치를 내걸고 진보적 민주주의자로서 주목할 만한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947년 7월 서울 혜화동 로터리에서 괴한의 피격을 받아 62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남북연석회의가 채 1년도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2005년 3월 1일에 와서야 비로소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여운형 평전 2 - 상해 임시정부 (강덕상 지음 / 근간 예정)
일본의 식민지 지배하에, 중국 상해를 거점으로 독립 운동을 전개해가는 여운형.『여운형 평전』2권에서는 1919년 3·1 운동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상해 임시정부에서 펼쳐진 그의 역할과 행동을 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