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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 내리던 날, 인왕과 백악의 사이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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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4-09-03 조회수 : 7,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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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경기상고를 나와 우리는 다시 북쪽으로 걸었다. 다음 목적지는 자하문. 자하문터널로 직진하기 전에 오른쪽으로 꺾어 경사진 길을 올라갔다. 도중에 부동산중개업소에 들어가 자하문 가는 방향을 물었다. 벽산빌리지를 지나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자하문이 나온단다. 벽산빌리지. 빌리지 구역 내부엔 외지차량이 상당수 있었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가랑비가 내리고 날은 어두운데 붉은 빌라가 차곡차곡 마치 가을비에 젖은 붉은 단풍잎처럼 쌓여 있었다. 우리는 시방 촉촉한 늦가을을 걷고 있는 중이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니 최규식 동상이 거대한 불상처럼 서 있었다. 동상은 거인이었다. 사직공원에서 보았던 이이와 사임당이 아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그렇게 거인이었다. 알 수 없는 공포감에 눈길을 돌렸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처럼, 그렇게, 이유는 모르겠다. 박정희 시대의 억압된 공포가 몸집을 부풀려 눈 앞에 서 있는 듯. 고개를 왼편으로 돌리니 자하문이 거기 서 있었다. 자하문에 와서 계단을 타고 문루에 올랐다. 자하문과 문루는 다르다. 인조반정을 기념해 영조대에 만들어진 자하문 문루, 하지만 막상 문루에 오르니 문루의 역사적 현존보다는 문루에서 내려다보는 경관에 온통 도취되었다. 그 중에서도 저 아래 벽산빌리지의 붉은 동네가 눈에 확 들어왔다. 유럽 여행 갔을 적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공원에 올라 보았던 피렌체의 붉은 시가지 전경이 벽산빌리지에 오버랩되었다.

30.
자하문 문루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자하문을 당당히 통과하였다. 자하문 밖에 나가니 주변 정경이 대번에 시골로 바뀌어 있었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자하문 안과 자하문 밖이 이처럼 다를 수가 있는 것인지. 어쩌면 우리가 오늘 인왕과 백악 사이에서 북촌의 분위기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감각이 예민해져 있는 상태에서 이런 느낌을 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오늘 답사는 성공이다. 답사했던 시간만큼이라도 우리의 역사 감각을 키웠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니까.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중간에 점심시간 1시간을 제하면 사직공원에서 자하문까지 4시간 이상 투입한 셈이다. 우리는 오후 4시까지는 답사를 마쳐야 하는 상황이었고, 여기서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섰다. 미리 준비했던 코스를 보면 자하문 다음으로 석파정, 석파랑, 무계정사 정도까지는 볼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자하문을 통과한 감동을 답사일정의 마지막 감동으로 간직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하였다. 지금 우리의 눈 앞에는 환기미술관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었다. 그래, 저 이정표를 오늘 우리의 마지막 이정표로 삼자. 환기미술관 기념품가게에 들어가 테이블에 앉아 음료를 주문하였다. 이런저런 답사 이야기에. 즐거운 정리 시간이었다.

31.
한적한 가을날이 오면 오늘 걸었던 길을 다시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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