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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에서 바라본 천년강국 고구려, 그리고 남과 북 - 오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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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4-10-01 조회수 : 13,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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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임 연구원 오제연씨가 지난 9월 11-12일, 여러 어른들과 금강산에 다녀온 감상을 밝혔습니다.


   “북과 남의 모든 참가자들은 기념행사를 통하여 세상에 소리높이 자랑할만한 동
   방의 천년강국 고구려가 우리 민족의 당당한 주권국가였으며 인류문화발전에 크
   게 기여한 문명국이였다는 데 대해 공동으로 확인하였다. 북과 남의 역사학자들
   은 민족의 역사는 누가 왜곡한다고 하여 달라지는 것이 아니며, 누가 부정한다고
   하여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일치하게 강조하였으며, 고구려사는 실재한
   우리 민족의 역사이고 앞으로도 영원한 우리의 것이라는 것을 다시금 확증하였
   다.”

위의 글은 지난 9월 11일과 12일 양일 동안 북측 금강산에서 열린 ‘고구려 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기념, 남북공동사진전시회 및 학술대회’에서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이 합의한 ‘공동발표문’의 일부이다.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의한 고구려사 왜곡이 문제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은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힘을 모아 함께 대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번 전시회와 학술대회는 지난 2004년 2월 발족한 ‘남북역사학자협의회’의 주관으로 북측 금강산에서 진행되었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서도 야외에서 진행된 11일 ‘학술대회’에는 남측에서 역사학자 70여명 등 약 200명이 참석하였고, 북측에서도 60여명의 인사들이 참석하였다. ‘개회사’와 ‘축사’에 이어 남과 북의 역사학자 6명이 고구려사와 관련된 기조발제와 보충토론을 진행하였고, 끝으로 위에서 언급한 ‘공동발표문’을 채택한 것이다.

이번 학술대회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고구려사와 관련하여 북측이 보인 이중적 태도이다. 현재 북측은 고구려를 ‘천년강국’으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천년’이란 삼국사기에 나오는 고구려의 건국연대를 나름의 논리에 기반하여 기원전 3세기까지 올린 결과, 고구려가 1000년이라는 유구한 세월 동안 유지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또한 ‘강국’이란 고구려가 스스로 건원칭제를 한 독자적 황제국가였으며, 광대한 영토와 군사력, 그리고 무엇보다 민족적 자주성이 강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말이다. 결국 천년강국 고구려의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현재 북측이 추구하는 ‘강성대국’의 이미지와 연결되는 면이 있다.

하지만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북측 학자 어느 누구도 역사왜곡과 관련하여 ‘중국’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았다. 물론 북측의 학자들도 외교의례형식에 지나지 않은 ‘책봉’, ‘조공’ 관계를 가지고 고구려를 ‘지방정권’, ‘속국’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가하였지만, 도대체 ‘누구’의 지방정권이고 속국이라는 것인지, ‘누가’ 이런 역사왜곡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심지어 ‘공동발표문’에서도 북측의 요구로 인해 ‘중국’이라는 말이 빠졌다. 중국과의 관계를 고려한 북측의 사정이 있을 것으로 이해는 되지만, 스스로를 청년강국 고구려의 이미지와 연결시키고자 하는 북측의 의도는 그만큼 퇴색될 수밖에 없었다.

학술대회가 끝난 후 11일 저녁에는 ‘금강산호텔’에서 만찬이 있었다. 그런데 만찬장에서 만난 일부 북측 인사들은 시작부터 ‘보안법’이나 ‘탈북자’ 문제 등 민감한 사안들을 이야기의 주제로 꺼내기 시작했다. 물론 만찬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좋은 편이었지만, 북측 인사들의 정치적이고 공세적인 태도가 남측 사람들에게 부담스러운 것만은 사실이었다. 남측도 마찬가지겠지만, 북측 인사들도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남측 사람들을 유연하게 만나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옆에서 바라본 북측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은 남측의 사람들과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다. 처음엔 무섭게 보였던 북측 군인들이나 어색하게 보였던 인민복 차림의 북측 주민들의 모습도 서서히 익숙해져 갔다. 특히 만찬장에서 만난 여성 ‘접대원 동무’의 경우, 처음에는 같이 사진 찍자는 제의를 한사코 거절하더니, 막상 어렵게 찍은 사진에 자신이 눈을 감고 나오자, 적극적으로 사진을 다시 찍자고 하기도 했다. 서로 좀 더 자주 만나고 마음을 연다면 지금 남과 북 사이에 놓인 벽은 얼마든지 넘을 수 있어 보였다.

12일에는 역시 금강산호텔에서 ‘남북역사학자 간담회’가 열렸다. 마치 영국 의회에서 여야가 서로 마주보고 앉듯이,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은 서로 마주 앉아 역사와 관련된 상호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주로 남과 북의 고구려사 연구 현황과 유적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러한 가운데 남측 학자들은 북측에 있는 고구려 유적에 대한 답사가 가능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실제로 남북 역사학자들의 교류에서 가장 시급한 것 중에 하나는, 양측에 산재해 있는 유적들에 대한 답사가 될 것이다.

특히 젊은 연구자나 학생들의 상호 답사 교류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이날 간담회에서 아쉬웠던 점은 남측에 비해 북측에서 젊은 연구자들의 참여가 적었다는 사실이었다. 다행히도 남북역사학자협의회에서는 앞으로도 1년에 2차례씩 지속적인 학술교류를 해나간다고 한다. 여러 가지 정치적 문제로 인해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는 이 때에, 남북 역사학자들의 지속적인 교류가, 남과 북의 역사학 발전은 물론, 남북의 평화공존과 통일에 일조하는 작은 발걸음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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