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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스크랩] 국가정보의 사익의 보호 - H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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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07-09 조회수 :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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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01 09:10 역문연 광장

출처: http://kistoryblog.tistory.com/entry/국가정보의-사익의-보호-H生 [역사문제연구소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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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김구, 하지 미군 사령관. 1945년 11월 29일.
 

 

 

‘국가정보의 사익의 보호’

 

 

(H生,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정보분석 전문가로서 CIA 창설부터 가담했던 애봇 스미스(Abbot Smith)는, CIA 국가평정실(Office of National Estimate) 실장을 그만두면서 이렇게 탄식한 적이 있다.

 

 

 

  “우리는 소련에 대한 어떤 이미지를 미리 만들어 두었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일어나든 간에 이 이미지에 꼭 맞아떨어져야 했다. 그렇게 끼워 맞췄다. 정보를 평가하는 사람으로서 이보다 더 말도 안되는 죄를 저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문외한들이 볼 적에는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정보전문가들은 이런 류의 실책을 거의 모든 국가의 정보기관들이 흔히 저지르는 ‘일상적인 일’ 쯤으로 간주하는 모양이다. 상대적으로 ‘기능적’ 측면이 강조되는 정보의 수집이나 1차 분석(기술적 판단) 과정에서 보다는, 정보의 2차적 분석(정책적 판단) 혹은 정보의 활용 과정에서 주로 이런 실수(정말 실수니?)가 발생한다. 수집된 첩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명령계통의 최상부층이 결정한다. 즉, 기술적으로 수집되고 또 전문가집단에 의해 분석된 정보에 대한 정책적 판단은 최종적으로는 통치권자에게 부여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가공이 완료되어 통치권자의 책상 위에 올라가는 최종적인 정보보고는 최종 소비자, 즉 ‘가카’의 기호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이를 최고권력자의 ‘정보욕구(desired intelligence)’를 감안한 “수요자 중심의 정보가공”이라 부르는 것이다. 점심메뉴를 올리라는 채식주의자 대통령께 고기부페 메뉴를 내밀 베짱좋은 조리사가 있겠는가? (아내는 그럴 수 있다. 아니 그래도 된다.)

 

 

 

  “통치자가 듣고싶어 하는 것만” 말하려는 정보기관의 유혹은 좀처럼 뿌리치기 힘들다. 객관적인 남북한의 군사지표를 무시한채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를 외쳤던 이승만 국방참모들의 정보왜곡은 분명 통치권자 이승만의 강력한 통일 욕구 때문에 빚어진 슬픈 코미디일 것이다. 한국전쟁 발발을 앞둔 남한과 미국의 ‘정보실패’ 때문에 우리의 초대 국모 프란체스카 여사께서는 “쫄쫄 굶은채 사과 몇알로 버티며” 대전까지 새벽을 도와 줄행랑을 쳐야만 했다. 머리를 굴려야 하는 정보기관의 분석가들이 “지혜보다는 용기를 내세우는” (베트남전에 대한 CIA의 정보분석의 아둔함을 지적할 때 곧잘 인용되는 CIA 정보분석가 해럴드 포드의 자아비판이다), 일종의 직무유기로 인해 소중한 생명들이 희생되곤 하는 법이다. 베트남의 현실을 외면한채 ‘용기와 신념’만을 내세웠던 CIA의 잘못된 정보분석으로 인해 수만명의 미국청년들이 “타인의 전쟁”에서 전사했다. 그것도 좋은 소리도 못듣고. 어디 미국청년들만 희생당했을까?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무기를 폐기하겠다고 전쟁에 나선 아들 부시 대통령의 등을 떠민 것도 CIA의 거짓 보고서였다. CIA와 아들 부시의 이 사기극을 이라크 현장에서 확인한 ‘이라크 무기사찰 단장’은 “정보가 정말로 도움이 되는 것은 전쟁을 피하도록 할때”라며, 이 수요자 맞춤형 정보왜곡이 얼마나 커다란 재앙을 가져올 수 있는지 재차 경고했다. 그랬다. 그것은 국가안보에도 또 윤리적으로도 해서는 안되는 일이었다. 물론 전쟁으로 묵직한 현찰을 챙긴 군산복합체 대주주들에게는 유익했겠지만 말이다.

 

 

 

  민주주의의 선진국이며, 그런 점에서 국가권력에 대한 시민의 감시와 통제가 그 어떤 나라보다 우위에 있다고 알려져 있는 미국에서조차, 최고통지자의 정보욕구와 이에 부응하려는 정보기관의 과잉충성이 빚은 ‘정보실패’의 사례는 무수히 많아 전집으로 엮어도 될 판이라고 한다. 우리의 경우 역시 전집으로 묶어 정보기관 스스로 발간한 바가 있긴 하다.(국정원 과거사위원회 편, <<과거와 대화, 미래의 성찰>>) 지구가 반공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는 최고지도자들의 아둔한 ‘정보욕구’가 찍어놓은 우울한 발자취다. 정부에 대한 비판자들은 이념적으로 의심스러우며, 결국 이들이 북한과 연계되어 있을 것이라는 단순도식. 이 도식은 한반도가 이념적으로 또 좌표상으로 분리되었던 1945년 8월 15일부터 성립되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이 범했던 무수한 실패사례들의 가장 큰 원흉은 바로 최고통치권자가 갖고 있던 이 잘못된 도식때문이었다. 자신이나 자신의 정책에 대한 반대자들은 모두 이적행위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를 증명할 증거를 찾아오라는 최고권력자들의 잘못된 ‘정보욕구’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이어야 할 정보활동을 일종의 ‘창작행위’로 전락시켰다. 이 훌륭한 전통을 ‘창건’까지는 아니더라도 훌륭히 ‘중건’한 인물은 확인해 볼 수 있다. 바로 주한미군정청을 지휘했던 하지 장군이다. 사실 이런 것은 일종의 직업병이기도 한데,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항상 내가 다루는 사료들, 즉 과거에서 찾아보려는 시도는 흥미롭긴 하지만 때때로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오늘 혹은 내일 당장 신문을 들여다보면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일들을 왜 굳이 외국어나 인쇄상태가 불량한 사료들을 뒤져서 읽어야하나’와 같은 그런 서글픔 같은 것들인데, 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공부를 관두든지 이민을 가든지 원. . .

 

 

 

 

 

 

 

  해방과 함께 남한에 들어선 주한미군정은 자신의 전임자와 후임자를 매개하는 적절한 역할을 수행했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은 줄이는 방식을 통해, 미군점령당국은 사소한 불평불만세력조차 ‘용공, 반체제’로 옭아맬 수 있는 아주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어냈다. 특히 훗날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양’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사표가 되었다. 최고통치자의 명확하고도 단순한 ‘정보요구사항’, 거대한 한국인 정보원망의 구축, 완벽한 통신 도감청체제를 통한 사생활 엿보기, 적대적인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마타도어 유포, 우호적인 언론매체를 통한 기밀정보들의 선택적 공개 등등. 정보기관의 정치개입이 만연했던 우리 현대사의 어느 시점에 대입하더라도 하등 어색하지 않을 ‘공작’들은 일찍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 바 있었다.

 

 

 

  조선총독부를 대신한 주한미군정청의 매뉴얼이나 관보에 등장하지 않는 이 비밀조직은,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고 있던 정보기관 바로 미군 CIC와 G-2였다. 주한미군 점령사령관 하지가 자신의 분신에 해당하는 정보참모부(G-2)를 통해서 얻고자 했던 정보는 자신의 권력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에 관해서였다. 교전행위 막바지 국면에서 그것은 일본군과 잔류 일본인들이 중심이었지만, 무게중심이 금새 한국인들 그것도 조선공산당이라는 특정한 정치세력으로 이동했다. 최고사령관의 이러한 정보욕구에 맞춰 자신들의 창끝을 좌익을 향해서만 열어놓은채 활동했던 정보기관의 활동이 축적되면서, 정보기관의 활동결과물을 영양분으로 삼았던 점령권력의 이념적 동맥경화는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그것은 일종의 망상증과도 같았다. 세상의 모든 것이 공산주의자들과 그들의 음모로 가득 차 보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이러한 망상가들이 발각해냈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는 때때로 “흥행의 가치도 없는 인형극” 보다 못한 경우가 허다했다. 1946년 7월 말, 부산의 한 바닷가 군수창고 근처를 산책하다 미군경비병과 미군의 사정에 대해 일상적인 대화를 주고받던 두 명의 청년은 간첩으로 오인받아 열흘을 넘게 CIC에서 수사를 받은 다음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CIC의 수사결론은 “단순히 영어를 배우려던 젊은이들”이었다. 어렵게 마련한 일제사진기를 처음으로 테스트하던 한 장년의 남자는 불행히도 앵글에 들어왔던 미군부대 때문에 간첩혐의로 CIC에 체포되기도 했고, 미군부대의 쓰레기통을 뒤져 쓸만한 폐품과 함께 딸려온 미군 문서를 소지하고 있던 아낙들, 가락이 흥에 겨워 ‘적기가’를 부르다 CIC로 끌려간 김포비행장 식당청소부들  모두 공산당, 북한, 소련과의 관계를 추궁당했다. “혜산진간첩학교”를 졸업하고 남한으로 정보수집 목적으로 파견되었던 한 청년은 체포당시 왼쪽 팔뚝에 손톱모양의 문신을 한 상태였는데, 그것이 혜산진간첩학교 학생들의 유행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CIC의 특수요원(Special Agent)는 “난민캠프에 잠입하여 예방주사 접종시 왼쪽 팔뚝을 유심히 관찰”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38선과 멀지 않던 강릉에서는 한 청년회 축구팀이 몽땅 미정보기관에 연행되기도 했는데, 그들이 연행된 이유는 유니폼 상의에 그려진 ‘쇠스랑과 망치’(구소련기의 상징문양) 때문이었다. 그래도 미군 CIC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양호했다. 이들은 과잉수사에 대한 내부 감찰이나 감독 그리고 매뉴얼이라도 존재했으니까. 한데 시민사회의 영역에서는 최악의 변종들이 발생하고 있었다. 직간접적으로 CIC나 경찰 혹은 헌병대의 정보원망에 포섭되어 있던 우익청년들이나 사설 단체들이 ‘정보기관원임’을 암시하거나 혹은 노골적으로 자임하면서부터 사태는 훨씬 심각해졌다. 물론 경찰과 미군당국의 “노골적인 묵인”이 부추긴 결과였다. 우익단체에 기부금을 내지 않는 것도 좌익으로 간주하여 납치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좌익이 뿌린 삐라나 포스터에 관심을 보이기만 해도 사설 무력단체들의 ‘주먹’을 초래할 위험이 있었다.

 

 

 

  아직 완전히 단정짓기는 어렵지만, 해방공간의 이런 수많은 해프닝들은 남한지역 주민들의 행위 하나하나가 크렘린의 ‘한반도 적화야욕’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최고통치자의 ‘정보욕구’와 그에 충실하려는 ‘정보기관’의 과잉충성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최고사령관께서는 남한사회 전반에 촘촘히 엮여져 있던 정보원망(informant net)과 정보기관원들의 활동의 중요한 원칙으로 다음과 같은 지시를 내렸다. 일종의 거대한 무인감시체제와 같은 것이었다.

 

 

 

   핵심적인 중요성을 갖는 첩보 요소의 경우 일반적으로는 흡족한 형태로 보고되고 있다. 부가적인 요소들과 중요성이 좀 덜 확실한 경우 보고는 신통치 않다. 어떤 사항은 보고하고 또 어떤 사항은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지에 대해 현재 정해진 규칙은 없다. 종종 첩보가 담고 있는 진정한 가치는 군단본부에 도착할 때까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이렇게 도착된 첩보는 이미 확보하고 있는 기존의 정보와 결합될 때에 그 가치가 결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군요원으로 있는 사람은 바람직한 첩보의 범주에 포함되는 모든 아이템들에 대해서 자신의 개인적인 가치평가와 상관없이 보고해야만 한다.

 

 

 

  정보의 최종소비자인 최고통치자의 책상에 이르러 그 가치를 인정받기까지, 모든 첩보는 잠재적인 중요성을 갖게 된다. 빈틈없이 관찰되고 빠짐없이 보고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보기관이란 “모든 곳에 존재”해야 하고, “전지전능”할 것이 요구된다. 이것은 주한미군정청이 물러간지 10여년 만에 창설된 ‘중앙정보부’에 대한 주한미대사관측의 평가이기도 했다. 김종필의 말처럼 “당신들(미국)로부터 많이 배웠”던 것이 큰 도움을 주었던 것은 분명했다.

 

 

 

    정보기관은 무엇보다 방대한 데이터를 보관하고 있는 일종의 데이터 창고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정부기관 가운데 가장 비밀스러운 기관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기관이 도대체 어떤 정보를 어떻게 수집했고, 또 어디에 사용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국가안보’를 위해 유용하게 잘 활용할 것이라는 짐작 외에는. 국가안보가 곧 정권안보 혹은 “각하의 안위”로 직결되던 권위주의 시절을 거치면서 우리는 정보기관이 ‘사익의 보호’를 위해 활용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목격한 바 있다. 미군정 시절이래로 정보기관의 기밀들이 정치적 반대파를 무력화시키는 데에 아주 효과적임이 증명된 바 있으니. 만약 손에 넣을 수만 있다면, 기밀데이터를 이렇게 사용하려는 유혹을 누가 쉽게 떨칠 수 있으랴? 프랑스의 정보부가 1971년 닉슨쇼크 한달 전에 달러의 평가절하 정보를 입수하여 자신들이 향후 10여년 간 쓰고도 남을 엄청난 자금을 국제외환 시장에서 벌어들이기도 했다. 최근에는 Echelon(영미의 신호정보감청시스템)을 활용해서 미국과 동맹국들이 자국 기업들의 이윤창출행위를 돕는다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유권자들의 세금으로 국가와 안보만을 위해 복무해야 하는 이런 기관들이 ‘소수의 사익 보호’를 위해 자신들의 기밀정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일까? 이는 법적인 문제이기도 하지만 윤리적 논란거리이기도 하다. 여전히 남북 혹은 안보관련 분야라는 점에서 진부하기는 하지만, 이제 우리도 이 ‘국가기밀’이 과연 사익을 위해 이용되었는지, 아니면 진정으로 국가안보를 위한 것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케이스를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 어느덧 호기심이나 재미보다는 국가의 안위와 사회의 안정을 염려해야 하는 나이(?)에 접어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흥미진진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일테다. ‘보안’에 있어서는 세계 1등이라고 자부하는 우리의 정보기관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이 ‘기밀정보의 공개’ 사례는, 아마 우리 생애에 두 번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일테니까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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