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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교과서와 상고사 갈등, 같고도 다른 전선 - 김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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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07-09 조회수 : 7,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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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 교과서와 상고사 갈등같고도 다른 전선

 

 

김성보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가 계속 몸살을 앓고 있다박근혜 정부가 퇴장하면서 국정 역사교과서가 뒤따라 순장의 예식을 치르자학자교사시민들은 이제 비로소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권력의 개입에서 자유로워지리라 믿었다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하자마자 가야사를 더욱 더 연구해야 한다고 지시하지 않나평소 상고사 연구에 관심이 많다는 도종환 의원을 문화체육부 장관 후보로 지명하자역사학자들은 당황스러웠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지난 10여 년간 한국의 기성 역사학계교육계는 두 개의 전선에서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아왔다하나의 전선은 뉴라이트 계열이 주도한 것으로교육현장에서 민주적통일지향적 역사교육을 축출하고 대한민국 건국부국의 길을 찬미하는 극우적 역사교육으로 이를 대체하려는 역사전쟁이다이 역사전쟁에서 뉴라이트 계열이 원했던 전선은 애국 대 종북의 프레임 아래 보수 대 진보의 대립구도를 설정하는 것이었다.

 

 

이 구도 아래 뉴라이트 계열은 처음에는 검인정 교과서체제를 인정하는 전제 위에서 그들의 구미에 맞는 교과서를 제작보급하는 온건한 방식을 추진했다그러나 이 방법이 여의치 않자 조급해진 나머지 그들은 박근혜 정부의 힘에 기대어 국정 교과서를 만드는 무리수를 범했다이 무리수로 인해 대립구도는 보수 대 진보가 아니라 학문과 교육의 자율성 대 국가주의적 일방통행이 충돌하는 방식으로 설정되었고그로 인해 박근혜 정부의 불통 이미지만 더 부각되었다역사교과서 문제는 권력의 붕괴를 촉진하는 데 영향을 미쳤고 결국 권력이 무너지자 운명을 함께 했다역사가 항상 진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미 독재에 신물이 나서 최소한 정치에서는 민주주의를 원하는 시민들에게 유신체제하에서나 있을 수 있던 국정 역사교과서를 밀어부친 것은 오산이었다그들도 이제는 자신의 오류를 깨달았으리라.

 

 

뉴라이트 계열이 주도한 전선은 그 주체목표방법이 뚜렷이 노출되어 있었고 그들이 동원할 연구집필 역량도 너무나 취약하여 그 대응이 어렵지 않았다무엇보다도 그들의 역사관은 일반대중의 도덕감정과 동떨어진 식민지 근대화론독재찬미론으로 무장되어있어 대중적 설득력이 약했고그러한 한 역사전쟁의 성패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이에 비해 상고사 인식을 둘러싼 전선은 간단하지 않은 양상을 보여 대조된다.

 

 

상고사의 전선은 평소에 잘 눈에 띄지 않는다그 주체목표방법 모두 불투명하다위대한 상고사를 꿈꾸는 사람들은 한국의 학계와 교육계의 주류에서 배제되어있으며그 주변에서 단지 개인만족에 머물거나 어쩌다 집단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정도였다그러던 상고사 문제가 표면에 부상한 것은그 역사인식이 어느새 국회와 교육부의 일부 인사들 및 언론에 확산되어 힘을 얻게 되고그 힘을 바탕으로 기성 역사학계의 학문 활동에 제동을 거는 데까지 이르게 되면서였다여야를 막론하고 상고사에 푹 빠진 의원들이 국회에 학자들을 불러놓고 모욕을 주는 장면을 보고서야 비로소 이 문제가 참으로 심각한 문제임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 문제가 쉽게 사글어들지 않을 것임은 상고사를 주도하는 사람들의 역사관이 일반 대중의 역사감정과 깊이 연관되고 공명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끊임없이 강대국에 의해 시달리고 업신여겨온 민족사로 인해의외로 많은 이들이 비록 머나먼 고대에서나마 위대하고 찬란한 역사가 있었기를 바라며이를 발견하고 위안을 삼는다.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고대사학계는 상고사 연구자들의 학문을 사이비 역사학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아예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학문의 권위를 분명히 하고 이 권위에 대해서는 재야 학자들이건 정치인이건 관여하지 말라는 배타적 자세이다학문의 권위와 자율성권력 개입의 차단을 주장하는 방법은 국정 역사교과서의 전선에서 사용한 프레임인데과연 그 방법이 상고사 문제에서도 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이 방법은 기성 역사학계와 역사교육의 틀 안에 상고사 인식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데는 유용하다문제는 상고사 그룹이 추구하는 목표가 기성 역사학계와 역사 교육에 진입하는 데 맞추어져있는 것이 아니라일반 대중을 상대로 그들의 인식을 보급하는 데 주안점이 두어져있다는 점이다기성 역사학계가 권위를 내세우며 학문의 엄격성을 강조하고 자신들만의 학문 언어로 발언하면 할수록어떠한 권위도 싫어하는 현 한국의 대중들은 더더욱 상고사 그룹의 명쾌한 왜곡과 달콤한 환상에 빠져들 수 가능성이 있다. ‘사이비라는 용어는 정통이 있을 때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다그러나 탈권위의 시대에 과연 무엇이 정통이고 무엇이 사이비일까그런 권위의 담쌓기로는 상고사의 전선에서 그들을 이길 수 없다.

 

 

이 전선에서는 호흡을 길게 할 수밖에 없다이 전선의 주전장은 학계나 교과서가 아니라 역사 대중화의 공간이다그 공간에서 보다 더 대중적으로보다 더 설득력있게 고대사를 바라보는 안목을 제시할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상고사 그룹의 무모한 역사환상은 사글어들 터이다그 주전장에서 패배한다면 권력이 민족감정을 이용해 대중을 선동하는 파시즘화의 길을 막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