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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통신]100여 년 전 한국의 감염병 상황을 돌아보기 - 백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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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4-28 조회수 : 3,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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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 한국의 감염병 상황을 돌아보기

백선례(2020.3.19)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난리인 2020, 지금으로부터 약 100여 년 전에도 전 세계는, 동아시아는, 그리고 한국은 감염병으로 떠들썩했다

1918년에는 스페인 독감으로 유명한 인플루엔자가 유행하여 전 세계적으로 최소 2,000만 명 이상이 사망하였다

스페인 독감의 유행은 한국도 다르지 않아 당시의 통계치를 따르면 한국에서도 755만 이상의 환자에 14만 명의 사망자를 기록하였다

다음 해인 1919년과 1920년에는 동아시아 지역의 콜레라 유행으로 한국은 두 해 연속으로 많은 콜레라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1919년 환자 16,991, 사망자 11,084/ 1920년 환자 24,229명 사망자 11,570

또한 1920년에는 동아시아 지역의 두창 유행으로 인해 한국 역시 봄에 많은 두창 환자와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1920년 환자 11,500, 사망자 3,600

1918년 가을과 겨울, 1919년 늦은 여름과 가을, 그리고 1920년 봄, 여름. 3년 내내 한국은 감염병에 시달렸던 것이다

각종 감염병 유행은 1910년대 헌병경찰 위주로 구축되었던 조선총독부 방역체계의 한계 및 실패를 고스란히 드러내었다.

 

앞서 소개한 각각의 감염병 유행에 관한 연구 성과는 적지 않게 축적되어 왔으며, 나 역시 미숙하지만 한 두 편의 논문을 보탰다.

이러한 논문을 쓸 때에는 당시의 상황을 주로 역사적 기록에 의존하여 세밀하게 고증하는 것에 치중하였는데, 실제로 여러 의논이 분분한 감염병 유행의 한복판에 있게 된 요즘, 100여 년 전의 감염병 발생 및 그 방역 대책에 대해,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먼저 방역대책을 시행하는 측, 100여 년 전에는 조선총독부 경무국으로 대표되는 방역당국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지금까지는 그들의 방역 활동이 경찰 위주로 진행되어 강제적이고 강압적인 측면이 부각되어 왔고 나의 연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평가는 다소 야박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당시 경찰들이 맡은 업무는 광범위하였다

감염병이 발생하면 경찰들은 평소에 하는 업무에 더해 검병적 호구조사를 하여 숨겨진 환자를 찾아내고, 우물의 수질을 검사하며, 음식점 및 과일상들의 청결상태를 점검해야했다. 소독일 혹은 청결일을 정해 이를 감시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었다

경찰이 위생업무를 담당하였기 때문에 기본적인 위생 교육을 받긴 하지만 이들이 위생 및 감염병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방역 업무의 실무를 담당하였으며, 의사와 같은 전문가들은 이들을 지도하며 감독하는 정도였다

물론 이렇게 방역 전문가가 아닌 경찰들이 방역 업무의 대부분을 담당한 것은 식민지 시기 의료인들의 수가 전반적으로 매우 부족하였기 때문에 그 부족함을 메꾸는 것은 경찰의 몫으로 돌아갔다.

 

예나 지금이나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지배자가 이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 민중들의 원성이 높아지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때문에 총독부로서도 감염병 유행은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또한 감염병이 유행하면 식민지 조선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 역시 위험했다

그러니 조선총독부의 입장에서는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나름의 최선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정된 자원이라는 점이다.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방역 업무를 시행하다보면 방역 대상의 우선순위가 정해지며, 그럴 경우 식민지 조선에서 우선순위는 일본인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방역대책의 대상이 되는 측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

 당시 조선인들이 실체나 치료법이 명확하지 않았던 감염병을 천벌이나 귀신의 짓으로 여겼던 것은 충분히 이해가능하다

인식의 바깥에 있는 존재에 대한 설명을 하늘의 뜻 외에 무엇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렇기에 그들은 그동안의 방식으로 무당에게 의지하거나, 혹은 지금까지 이용해왔던 한약과 한의에 기대어 감염병을 치료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일본인 지배자들은 조선인들이 시행해왔던 방식들을 부정하였으며, 대개는 불친절하게 제대로 된 설명도 없이 새로운 방식을 적용하려 하였다

미지의 존재였던 감염병에 대한 정확한 정보와 설명이 제시되지 않았던 것이다. 과다한 업무에 찌든 경찰들, 게다가 말이 서로 통하지 않는 일본인 경찰과 조선인들-물론 통역이 아주 없지 않았겠지만- 사이에 서로에 대한 불신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많은 일본인 경찰들이 조선인들을 못미덥게 생각하며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자신이 맡은 업무를 집행하였으며, 조선인들은 대체로는 잘 이해되지 않고, 게다가 간혹 무례하게 까지 행동하는 일본인 경찰의 지시를 무작정 따를 수만은 없었다.

 

그러나 방역당국과 방역 대상의 관계에서 간과할 수 없는 지점은 감염병 유행은 삶과 죽음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이기 일방적인 강요와 저항만으로 설명되지 않은 공간을 만들어내며, 방역 과정에서 방역 당국과 방역 대상이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감염병 이후를 생각해 본다. 콜레라는 영국을 비롯한 서구 지역의 상하수도 시설 구축 및 위생시스템을 이끌어냈으며, 두창은 인간에게 백신의 가능성을 가장 먼저 보여준 병이었다

1918년 독감은 21세기 새로운 감염병이 등장할 때마다 중요한 선례로서 끊임없이 호출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코로나 이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코로나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길 것인가? 대체로 팬데믹은 인간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겨왔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 뒤에 남겨질 것들이 앞서의 감염병 유행이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전보다 나아가는 것이기를, 긍정적인 방향이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