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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통신]‘싸강’, 정상 영업 중입니다? - 한봉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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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4-28 조회수 : 3,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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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강’, 정상 영업 중입니다?

 

한봉석(2020.4.4)

 

흡사 첫사랑과 같았다. 이유도, 맥락도, 상식도 없이 일이 벌어지더니, 그것이 곧 삶이 되었다. “싸강”, 즉 사이버강의 이야기이다.

20201학기, 코로나 19 사태와 더불어 전국적인 사이버강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대학교 단위에서 그것은 아주 짧은 혼란이 있었지만,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곧 일상이 되어버렸다

 

개강 한달 후, 영상 녹화 몇분에 버벅이던 수많은 교강사들 중에는 유튜버를 시도하는 이도 있고, 블루 스크린을 설치해서 수업의 영상미를 높이려는 이도 생겨났다. (ZOOM), 웹엑스(Webex) 등등 실시간 강의를 책임지는 온갖 종류의 도구들이 인지되었고, 학교별 혹은 개인별 취향에 따라 커피 메이커처럼 취사선택되기 시작했다

 

누구 말마따나 코로나 19가 시간을 당겨버렸다.

 

그러나 한달 뒤, 초등학교 개강 등을 앞두고 밖은 시끄럽지만, 대학은 의외로 평온하다

몇몇 강사들은 새로운 강의법 고안을 시도 중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실시간 데이터를 통해 전환되면서 발생하는 수업의 다소간의 질적 저하는 감수하기로 했다. 학생들 역시 등록금 할인을 요구하긴 하지만, 그 태도는 실로 온화하기 그지없다

너무 온화해서 넷플릭스 몇년치 회원권을 주면 그 화가 누그러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 생각해보니, 그러면 정말 화가 누그러질지도 모른다. -

 

강사들은 화를 낼 처지가 아니다. 코로나 19가 세계를 앞당겼다고 하지만, 몇몇 학교의 준비 상태를 보면, 그 시간은 고작 1-2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모 학교의 경우, 이번 사태 이전에 이미 사이버 강의에 필요한 서버, 프로그램, 보조기구(마이크, 헤드셋)등을 이미 완비했었다

 

그리고 교강사들에게 슬슬 사이버강의를 시도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안내문을 돌린 터였다. 수업 차수도 사이버 강의를 핑계로 슬쩍 줄어든 상태였다

저자거리에서 우연히 배신한 애인을 볼 확률보다, 학교를 다시 볼 확률이 더 적은 시간강사들의 경우는 우선 전화번호를 찾을 수 없어서 항의를 하기도 힘들다

시간강사 재벌이 한달 3학점에 60-70만원을 받는 세계이다. 한 학기 200-300만원에 화를 내는 것은 정말이지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코로나 19의 피해와 비슷하게 사이버 강의는 학계의 가장 약한 고리에 피해가 컸다. 인문학, 그 속에서도 초임강사들에게 이 사태는 더 가혹했다

박사학위가 없으면 강의를 맡을 수도 없고, 정부의 지원도 받을 수 없었던(지난 해 막, 조금 돈을 주는 시늉을 했다.) 갓 강의를 맡은 강사들에게 사이버강의는 단두대로 작용하기도 했다

젊은 나이도 아니고, 이미 융통성이 굳기 시작한 늙은 박사들에게 첫 강의 싸강은 가혹했다

 

무엇보다 인문학적 특성이 사이버 강의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었다. 아주 고고한 성찰이 아닌 바에야, 인문학 강의란 곧 한편의 연극이다

주어진 대본은 있지만, 관객과 호흡하며, 흐름의 강약을 읽어가며, 그때 그때 노를 바꿔 저을 줄 알아야 한다. 사전 녹화 영상 강의는 그것이 없었다

때문에 많은 교강사들이 실시간강의로 넘어갔다. 하지만 다소간의 시행착오 끝에 드러난 것은 결국 대학원 정도의 수업

20여명 내외의 수업을 넘어서면, 여러 가지 문제로 실시간 강의도 제 기능을 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다는 점이었다.

 

학생입장에서는 등록금과 수업의 질도 문제였지만, 일상적으로는 불특정 다수에게 자신 및 자신의 공간이 노출되는 것이 가장 문제시되었다

교강사에게 내 얼굴이 노출되는 것은 쟁점이 아니다. 장애 학생에 대한 배려는 시작부터 전혀 없었다

실제로 상당수 장애 학생들이 휴학을 하거나, 혹은 고려 중에 있다는 기사들이 언론에 노출되기도 했다. 이 부분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장애 학생에 대한 지원은 언제나 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들은 현재로서는 전부가 - 아주 사소하게는 자막을 넣을 인건비조차 개별 강사들의 자선에 의지하는 형편이다.

 

이런 저런 사태를 겪으며 결국 교강사들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영상 한편을 하루 종일 제작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리고 기술상 정서상 문제로 많은 교강사들이 잠시나마 학생의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실시간 강의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기술적 문제로 학생의 눈과 입은 막혀 있다. 다만 저 공간 너머에 학생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학생은 곧 물자체’ ?

 

그러나 본질은 수업환경의 변화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이 수업환경의 변화에 적응한 우리가 불러올 나비효과에 그 본질이 있다

대학은 언제나 인건비 절감을 추구하고 있다. 공동체를 꾸리는 인간들에게 너무나도 중요한 인권을 몇 명의 강사가 동영상으로 제작해서

철마다 비타민 주사 맞듯이 재탕하는 것을 허용했을 때 이미 이 사태는 예견되었다

 

그들과 우리의 거리가 얼마나 있겠는가? 역사학 분야의 경우, 제도적으로 국사편찬위원회의 한국사검정 시험이 있다

거기에 시간적 물적 한계를 뛰어넘는 이용하기 편리한 사이버 강의가 전면적으로 등장했다

그 인건비 절감과 이용자의 편의성이 질적 고민을 뛰어넘을 때, 그때 비로소 사이버한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것이 학술적으로는 코로나 19가 불러온 진정한 사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