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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통신]시민K들 (박은영,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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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6-30 조회수 :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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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K

 

박은영(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K1

방역당국은 필수적이지 않은 모임은 자제하라는데, K1은 오늘도 대여섯 명이 모여 사는 연구실에 나와 앉아있다. 연구실에 나가는 건 필수적인가

집에서도 읽기와 쓰기는 가능하다는 문장은 틀렸다. 적어도 K1에게는. 읽기와 쓰기가 가능한 장소는 사람마다 그야말로 케바케(case by case)’라는 건 상식이다. 그러므로 나는 연구실에서 써야 잘 써진다K1의 명제에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 아니다. 사실 어디서건 글은 써지지 않는다. 글이 써지도록 하는 건 단 하나, 빛보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마감밖에 없다. 그러므로 다시, K1의 연구실행은 다시 필수의 지위에서 쫓겨난다.

 

하지만 왜 굳이 이 시국에 연구실에 나가는지 다시 묻는다면 K1은 여전히 할 말이 많다. 우선은 집과 학교 외엔 오가지 않는 동료들의 동선에 대한 굳건한 신뢰가 있어서일 것이다. 그 외에는, 혼자 밥 먹기 싫어서, 혹은 이 헛짓을 자기만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서, 아이스 라떼를 챙겨가기 위해

오늘 지도교수를 만난다던 A의 이야기가 궁금해서, 공부 말고 딴짓하고 싶은데 집에서 딴짓하면 밤에 침대에 누워 자신을 더 많이 구박할 테니까……

이유를 대라면 이렇게 무궁하게 나오는 게 또 이유란 거 아니겠나.

 

사회적 거리두기 기간이 끝났을 때, 함께 만나 즐기러 간 젊은이들이 왜 클럽이나 노래방에 갔는지, K1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

얼마나 자연스러운 인생들의 반응인가. 오히려 거리두기를 하나 안하나 행동반경이 전혀 변하지 않은 자신에게 이유를 물었다. 의지적인 신중함과 공부 때문이었을까? 써야 할 글의 목차도 2주째 안 떠오르는 판에 속 시원한 답이 나올 리 없었다. 글로 돌아가기 위해 가까스로 찾은 답은 겨우 모카 프라푸치노뿐이었다.

 

하지만 K1이 굳이 공들여 이유를 찾지 않는 행선지도 있었다. K의 통장을 채워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 그는 그곳에 갈 때 가장 많은 사람과 부딪히지만 죄책감도 망설임도 없다. 당연한 일이라고 K1은 생각한다. 동시에 손세정제가 보일 때마다 손을 소독하고 체온계가 보일 때마다 체온을 재면서도 굳이 연구실에 가는 건 자신의 반항심 때문이라고, 혼잣말을 해본다. 삶은 통장에 꽂히는 돈과 바이러스 수용체로만 환원되지 않는다는 최소한의 표시라고. “, 버스에서 내릴 때 손 소독을 했었나?”

 

 

K2

만성질환자나 장애인들에게 그렇듯이, 뇌병변 장애인 K2에게도 확진자에 대한 낙인이 상시적으로 자행되고 예비 확진자에 대한 규율이 강화되는 이 상황은 낯설지 않다. K2에게 낙인과 규율은 골목 어귀에 앉아 매일 아이들을 나무라는 동네 할아버지 같은 존재다. 익숙하면서도 끝내 불편해 항상 도망칠 준비를 하지만, 매번 어느새 그 앞에 서있게 되는 그런 존재.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K2가 말귀를 알아들을 때부터, 의사선생님은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해.”라고 인자하게 말하곤 했다.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할 일이 많아져 재활운동은 뒷전으로 밀어둔 K2를 보며, 부모는 너 계속 운동 안하면 나중에 늙어서 아파라며 걱정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K2에게 가장 무서운 협박은 아플 거라거나 지금보다 기능이 저하될 거라는 사실은 아니었다. ‘내가 아프면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고, 그에게 지금보다 더 민폐를 끼치게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과 자신의 나태가 그 가능성을 현실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만큼 K2를 효과적으로 압박하는 건 없다.

 

최대한 민폐를 끼치지 않는 것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의 유용한 일꾼이 되거나 그걸 못하겠으면 최소한 귀감이라도 되는 것. 평생 K2가 자신의 장애에 대해 들은 각종 담론들을 다 추려본다면 아마도 그의 가장 큰 책임은 사회의 귀감이 되는 것일 것이었다. 그나마 귀감은 귀신에게서나 찾아라라고 소리치고 돌아설 수 있지만, ‘민폐가 되지 말라는 말에는 할 말이 없다. 애초에 세상에서 제일 자존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 돌봄 받는 일인데, 사람들은 그 일을 혐오하기까지 하여 민폐가 되느니 존엄사를 하겠다는 말을 교양인의 증거라도 되는 양 서로 맞장구치고 있었다. K2로서도 지금보다 더 민폐를 끼치는존재가 되는 건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은 상황이다. 2020, ‘민폐의 대명사가 되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 수많은 시민들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K2와 그가 아는 장애인이나 만성질환자들은 수많은 영양제 목록 중 하나쯤은 고의로 누락하고, 가끔 여유가 있는 주말에도 운동을 미루고 안 좋은 자세로 드라마를 완주하며, 채식하라는 의사의 엄명을 듣고 온 날에는 햄버거나 스테이크를 먹는다. 물론 반항은 오래 가지 못한다. 잔소리꾼은 사실 그들의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으므로. 그걸 알면서도 굳이 그 짓을 한 번쯤은 꼭 하는 것은, 그들이 100% 환자만은 아님을 확인하고 그들은 의사의 지시를 받은 것이 아니라 의사의 서비스를 받은 것이라고 입증하려는 하나의 의례 같은 것인지도 모르다.

 

K2가 다녀만 오면 불안에 떨며 체온을 몇 번씩 확인하는 장소가 있다. 종합병원 내에 있는 재활병원이다. 웃기게 들리겠지만, K2는 놀다가 확진된 사람과 재활병원에 가는 자신 중 누가 더 경솔한지 비교했다. 그게 무슨 이상한 말이냐고? 사실 장애인들에게 재활병원은 뭔지는 모르겠으나 안 다니는 것보다는 낫겠지라는, “믿음으로평생 오가는 그런 곳이다. 치료를 받나 안 받나 체감하는 몸 상태는 거기서 거기란 얘기다. 그러니 치료를 받을지 안 받을지 선택권은 대개 의사가 아닌 환에게 있다.

 

물론 질병관리본부에서도 밝혔듯이 만성질환 관리는 매우 중요하며, 만성질한자와 장애인이 일상적으로 보건의료 서비스를 받는 것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왜 하필 이 시국에 매일 이곳저곳을 오가야 하는 상황에도, 바이러스에 취약한 이들만 몰려있는 대형병원에서 굳이 치료를 받겠다고 했을까? 비율상 젊은 층들이 많을 장소에서 놀았던, 과도한 스트레스에 상시적으로 노출되어있는 10-20대들과 자신 중에 누가 더 무모했는지, 혹은 무엇이 필수이고 무엇이 아닌지, K2는 도무지 명확한 답을 할 수 없었다.

 

시민K

K2가 점점 더 성실하게 운동과 영양제를 챙기듯, 반년 만에 사람들은 성실한 방역의 수행자들로 변신했다. ‘전쟁이 터져도 예배는 드려야 한다던종교인들의 목소리도 잦아들고, 한국인들이 목을 매던 교육도 바이러스 앞에 다 부차적이 되어버렸다. 방역만이 왕좌를 차지하는 데 성공했고, 이제 강력한 방역사회를 건설할 모범적인 시민들을 주조하고 있다.

 

시민들 가장 효과적으로 규율화하는 수단은 이번에도 민폐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죄책감을 일으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며, 모두를 복종시킬 수 있는 절대반지다. 하지만 이는 모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조건이기도 하다. ‘인간은 서로에게 민폐를 끼쳐야 생존 가능하다는 문장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라는 추상적 명제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이지만, 이 만큼 사람들이 격렬하게 저항하는 문장도 없다. 그렇게 밀접접촉을 통한 보살핌이 필요치 않은 K들은 노약자들을 배려해오늘도 더욱 강력한방역사회를 만드는 데 동참한다. 스스로 알아서 모범적으로. 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시민K들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