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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통신] 공공역사와 임펙트 게임의 만남 (김태현,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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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6-30 조회수 : 3,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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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역사와 임펙트 게임의 만남

 

김태현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 공동대표)

 

1. 공공역사와 임펙트 게임의 만남

 

최근 공공역사에 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다. 기존의 역사 대중화에서 공공역사로의 변화는 여러 의의가 있다. 대중이 누구인지에 대한 소모적 논쟁의 불필요성, 참여 영역의 확대, 역사지식 전파에서 사회적 기여로의 전환 등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계몽주의적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던 역사대중화의 맹점을 극복할 수 있는 개념이다.

 

그런데 공공역사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불분명하다. 따라서 공공역사의 논의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경험의 공유에서 출발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다양한 공공의 역사가 협치적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각 연구자의 활동을 공유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동기가 정의한 공공역사의 영역을 축약해 본다면 학술장 이외의 프로젝트, 대중강연, 현장참여, 박물관, 미디어 등이다. 필자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경험을 한 분야는 미디어와 콘텐츠 제작 협업이다. 그중 한국사 게임인 페치카제작과정에 참여한 경험을 본고에서 공유하고자 한다. 다만 게임 출시는 7월 초 이후이기 때문에, ‘페치카의 주요 내용과 사용자 반응 등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협업 과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자라나는 씨앗(이하 맺음) 프로젝트에서 제작한 페치카는 연해주 독립운동을 다룬 최초의 스토리보드 게임으로 최재형을 모티브로 하며, 문광부의 지원을 받았다. 여기까지 보면, 지배와 저항, 애국 서사로 게임이 제작될 것으로 보였다. 때문에 큰 기대 없이 한두 번 자문하고 끝낼 생각이었다.

 

그런데 맺음이 내세운 건 그 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삶이 현재 사회에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지 그러면서도 역사적 사실과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임을 개발하고 싶다고 했다. 요컨대 임펙트 게임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맺음의 대표인 김효택에 따르면 임펙트 게임은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다루는 것을 목표로 한다. 게임의 본질은 재미에 있지만 사회적 효과를 꾸준히 주는 영화와 드라마처럼 게임도 나아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마켓 3.0은 더 이상 경쟁의 시대가 아니며, 게임 속에서도 공유가치를 쓸 수 있다고 했다.

 

이미 해외에서는 임펙트 게임으로 성공한 사례가 꽤 있다. 대표적으로 인도의 어린이 성매매 문제를 다룬 미싱, 전쟁피해자의 관점에서 전쟁의 참상을 알린 디스 오브 워 마인, 노르웨이 여성에게 나치가 가한 폭력을 고발한 마이 차일드 레브스보른, 대만의 40년 정치 역사를 비판하는 반교등이 있다. 그중 반교는 영화로 제작되는 등, 임펙트 게임의 미디어 믹싱 가능성을 보여줬다. 또한 하버드 옌칭 연구소는 반교와 후속작인 환원이 대만 현대사 묘사가 학술 연구에도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도서관 소장 자료로 채택했다.

 

환원의 경우는 시진핑 주석 비하 메시지 문제로, 중국인의 반발이 심해져 스팀에서 판매가 중단되는 일을 겪기도 했다. 이처럼 임펙트 게임의 영역은 게임의 재미와 상업성만을 추구하는 오락게임 시장과는 다른 결이 있다. 사회에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임펙트 게임이 상업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임펙트 투자는 기업의 재무제표 이외의 사회적 가치를 포괄하여 기업의 가치를 매기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따라서 이 개념에 기반한 임펙트 게임은 당연히 상업적 성공을 고려한다. 임펙트 게임의 상업적 성공은 다음과 같은 전망 속에 있다. 사회의 다양화, 시민사회의 성장, 사회적 요구의 다양화, 사회적 메시지에 대한 수요 등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사회적 기여가 상업성과 비례한다는 것이다.

공공역사 역시 역사와 관련한 논쟁, 기념, 전시, 콘텐츠에 걸친 영역에서 무엇을 전달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한다. 역사 지식 전파를 넘어서 사회의 아젠다에 대한 역사적 시각을 공공의 영역에서 재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슷하면서 다른 두 개념을 기반으로 한 협업 과정을 아래에서 공유하고자 한다.

 

2. 협업 모델

 

만인만색연구자 네트워크와 맺음의 MOU는 물질적 교환보다는 비물질적 교환에 초점을 맞추었다. 만인만색은 기획 단계 점검서부터 역사적 검증, 홍보 등을 제공하고, 맺음은 페치카 관련 사용자 정보, 음원, 디자인 등을 제공한다. 이로써 맺음은 게임의 완성도를 높이고, 만인만색은 페치카를 분석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 받는 형태이다.

 

수익 배분 등을 설정하지 않은 이유는 연구자가 상업적 이해관계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함이었다. 위와 같은 길항관계 속에서 협업이라면, 연구자와 개발자 간의 적절한 긴장 관계 속에서 콘텐츠의 완성도를 높이고, 연구자는 그 콘텐츠 분석을 통해 공공역사를 더 풍부하게 만들며, 사회적 메시지를 공유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유용하다.

 

또한 협업과정에서 공공역사의 기준으로 정확성, 개연성, 사회적 기여가 축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과 같은 콘텐츠 제작 참여에 가장 어려운 지점은 정확성이다. 정병욱이 공공역사에서 연구자의 정확성을 강조했지만, ‘정확성의 강조는 콘텐츠의 유연성을 확연히 떨어뜨리는 난점이 있다. 따라서 필자는 정확성과 더불어 개연성사회적 기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페치카는 실존인물과 가상의 인물이 섞여 있다. 가상 인물은 이 시대에 이러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개연성을 기반으로 설정되었다. , 역사적 사실과 흐름을 왜곡하지 않는 선에서 가상인물이 등장한다. 예를 들어 조선인 노비 출신으로, 연해주로 넘어가 러시아인의 양자가 된 인물’. ‘조선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포수, 당시 조선인 연해주 이주 상황을 본다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는 인물이다. 요컨대 역사에 나오지는 않지만, 존재할 수 있는 개연성을 담보하고 있다. 또한 가상인물과 실존인물의 구분은 게임 엔딩 후 공개되기 때문에, 이용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한다. 또한 각 사건과 인물 정보에 관한 사전 시스템을 제공하며, 이는 책으로도 출판된다.

 

그럼에도 개연성의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우선 연구자의 주관성에 따라 개연성의 기준은 달라지며, ‘현재주의사회적 기여와도 부딪힌다. 예를 들어 맺음에서 레닌을 모티브로 한 소련공산당원 성별 문제에 대한 자문요청이 왔다. 소련공산당 정치국은 1990년 갈리나 블라디미로브나 세묘노바가 입성하기 전까지 모두 남성이었다. 그러므로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한다면 소련공산당 정치국원은 당연히 남성으로 설정해야 했다. 그런데 고전 리메이크 과정에서 남녀의 성을 바꾸거나, 여성 캐릭터를 주체적으로 변화시키는 등 최근 정치적 올바름(PC)’에 대한 문제의식, 페미니즘의 성장 등을 고려했을 때, 소련 공산당 정치국원을 여성 캐릭터로 설정하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이 있었다. 이에 대한 의견을 근현대 연구자에게 설문조사 한다면 어떠한 결과가 나올까. 필자의 개인 의견은 여성으로 설정하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왜곡이라는 지점이 마음에 걸렸다.

 

역사적 사실과 여성의 주체성 부각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타협지점은 여성으로 설정하되 당시 소련공산당 정치국원에 남성은 없었다라는 사실을 명시하는 것이었다. 결국 개연성역사학적 기준게임적 허용의 길항관계 속에 있다. 결국 협업의 경험과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을 통해 허용의 기준을 구성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게임은 논문이 아니기 때문에 충분한 역사학적 해석 및 역사적 사실을 전달할 수는 없다. 따라서 당대 연해주 독립운동사는 만인만색 역사공작단 팟캐스트 방송으로 보완했다. 게임 이후 역사적 사실이 궁금한 이용자들은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 추가로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다.

 

다음으로는 사회적 기여이다. 게임이 출시 이전 이기 때문에 사회적 기여를 평가할 수가 없다. 따라서 페치카의 지향을 소개하고자 한다. ‘페치카의 사회적 기여는 독립운동을 기리는 방법이다. 역사연구영역에서 지배와 저항의 이분법, ‘국수주의적 역사관은 주류를 빼앗긴지 오래이다. 하지만 대중의 역사에서는 이분법적 역사관은 여전히 주류이다. 따라서 페치카지배와 저항’, ‘반일주의’, ‘국수주의로 흐르기 십상인 독립운동서사를 게임 속에서 바꿔보겠다는 것이다. 소위 엣지있는 독립운동 게임을 만들고자 했다. 역사적 맥락은 변하지 않지만, 스토리의 전개에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주인공의 위치와 역할이 결정된다. 이것은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이라는 체험을 제공한다. 본인이 주인공이 되는 게임의 가장 큰 장점은 당대의 연해주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체험하고, 직접 문제해결을 하며 스토리를 이어간다. 이로써 자연스러운 체험으로 이용자에게 여운과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3. 가능성

 

게임과 역사학의 결합은 새로운 장이 될 수 있다. 현재 페치카뿐만 아니라 위안부를 소재로한 겜브릿지의 웬즈데이도 조만간 출시된다. ‘웬즈데이는 정의기억연대와 협업을 통해 만들어 졌으며, ‘페치카하고는 다르게 대체역사를 추구한다. 두 게임의 출시 이후 비교 연구를 해보면 앞으로의 역사콘텐츠 협업에 시사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질적이고 경합하는 역사 사이의 중재자를 공공역사가로 한정하면 도리어 수동적이며 소모적 논쟁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전문가의 참여가 곧 문제해결을 의미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재자·비평가를 넘어서 생산자로서의 활동까지 염두해 둘 필요가 있다. 물론 모든 연구자가 참여해야한다는 당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간접적으로 참여한다 할지라도, 실상을 알아야 제대로 된 비평을 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가 경험한 역사 대중화’, ‘공공역사를 공유하고 점검할 필요가 있다.

 

또한 위와 같은 협업은 사업구상 혹은 역사를 소비재로 파악한다는 비판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미 역사는 소비재가 되었으며, 공공영역에서 역사가 활약하기 위해서는 면밀한 사업구상이 필요하다. 다만 이를 연구자가 온전히 할 수 없기 때문에 타 영역과의 협업은 필수이다. 이때 상업성과 공공성의 길항 관계와 접합부분에 대한 기준은 앞으로 경험이 더욱 쌓여야할 것이다.

 

팟캐스트, 유튜브 등 미디어 활동, 여러 영역과 협업을 하면서 응원도 많이 받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냉소와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런거 까지 연구자가 해야하는가’, ‘학위논문 준비는 안 하는가라는 물음 아니면 뒤에서 들려오는 비난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모든 연구자가 위와 같은 활동을 할 당위성도 없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다. 도리어 공공역사적인 위의 활동들에 대한 비평과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한다. ‘연구자가 이걸 해야하는가라는 물음은 논의 진전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공공역사의 확장은 역사연구의 진전에 비례한다. 연구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콘텐츠의 미치는 영향력과 사회적 기여는 늘어날 것이다. 따라서 양자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될 수 있는 시너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기존 게임업체와 인디 개발자들은 정기적으로 소셜임펙트게임 관련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 필자도 참여하고 싶었으나, 최근 코로나로 모임이 당분간 연기되어 참여하지 못해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공유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