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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랍게> 시네토크 후기 (박문칠, <보드랍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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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09-22 조회수 : 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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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랍게> 시네토크 후기 (박문칠)

 

일본군 성노예 피해 당사자인 김순악 선생님의 삶을 다룬 영화 <보드랍게>를 만들 당시부터 여러 고민이 많았다위안부를 다룬 작품들이 장르를 불문하고 많이 나오다보니, 내 영화는 어떤 새로운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또한 워낙 민감한 문제이다 보니, 피해 당사자들을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 이들의 고통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윤리적이고 미학적인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여러 고민 끝에 지금의 영화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영화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이야기하기 어렵지만 이제까지의 위안부재현과는 다른 길을 가려고 노력했다. 특히 잘 다뤄지지 않았던 해방 이후의 삶에 대해 다루려고 노력했다. 최근 한국사회의 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미투 운동과의 접목도 시도했다. 이런 시도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읽힐지 궁금하기도 하고, 내심 걱정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상영 뿐 아니라 전문가 분들과의 씨네토크를 준비한다고 했을 때, 내심 반가웠다. 일반관객들의 반응은 접할 기회가 있는 편이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연구하고 발언해온 분들의 의견을 듣는 건 그만큼 드물고 값진 경험이다. 오랫동안 위안부’, 기지촌, 여성사와 미디어 재현의 문제를 연구해온 분들의 응답이기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역시나 토론자나 여러 청중들의 질문과 코멘트들은 날카로웠다. 오랫동안 홀로 씨름을 해왔던 문제부터, 미처 생각지 못한 문제들까지, 여러모로 본 작품과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특히 청중 질문 중, 이미 돌아가신 피해 당사자의 출연 동의는 어떻게 얻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미 돌아가신 분의 의사를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 그분이 꺼려했던 이야기를 재현하는 것이 윤리적인가? 이렇게 어려운 질문들에 대해 직접 찾아뵙고 여쭤볼 수는 없었지만, 사실 작품을 만들면서 김순악 선생님과 계속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당신이 인생의 여러 변곡점에서 느꼈던 감정은 무엇일까? 또한, 삶에서 진심으로 원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사후에 어떻게 기억되기를 원하실까? 결국, 다큐멘터리스트는 고인의 뜻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해석하는 수밖에 없다는 결론 아닌 결론을 얻었다.

 

살아생전 김순악 선생님은 증언 자리의 성격에 맞게 발언의 수위조절을 해오셨다. 유곽 생활과 같이 전형적인 피해자상에서 벗어난 이야기는 생략하셨다.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여 그러셨을 수도 있고, 본인 스스로 숨기고 싶었을 수도 있다. 반면 어느 정도의 신뢰와 안전이 보장된 관계에서는 평소 성격대로 거침없이 솔직한 이야기들을 털어놓으셨다. 생각해보면, 그분이 살아생전에 발언의 수위를 조절을 했다는 것은 청중을 고려하고 있었다는 말일 게다. 살아생전의 청중은 그렇게 호의적이지만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사회가 그분의 거침없고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운동이 한 단계 성숙하기 위해서는 시민들과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분의 삶을 온전히 기억하기 위해서는 특정 시기 특정 경험을 생략할 수는 없지 않을까?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당사자의 뜻도 보다 폭넓은 인정과 공감에 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럽게 해석해본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런 질문과 논의를 이어나가고 싶다. 그 여정의 시작에서 귀한 자리를 만들어준 역사문제연구소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