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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민중사학 간담회 방청 후기 (장용경,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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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10-09 조회수 :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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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신학×민중사학 간담회 방청 후기

 

 

장용경(역사문제연구소 연구위원)

 

1. 지난 718일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 주최로 연구소 5층 관지헌에서 역사×민중-‘민중신학의 과거와 현재라는 간담회가 열렸다

역사문제연구소 민중사반에서는 민중과 관련한 주제에 대해 외부 인사를 초청하여 이야기를 듣고, 연대 방향을 모색하거나 자기를 성찰하는 계기로 삼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는 있었지만 이야기할 계기도 없었고 방법도 몰랐던 민중신학 쪽을 초청하여 이야기를 듣기로 한 것이다.

이 자리에서 제3시대 그리스도연구소의 정용택 연구실장(이하 직함 생략)이 민중신학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고, 사회를 맡은 민중사반 허수 선생님(이하 존칭 생략)은 민중신학의 이야기에 상응하는 민중사학 쪽의 이야기를 유도하면서 간담회를 진행하였다

, 정용택은 1970년대 안병무서남동 선생님으로부터 본인 세대인 포스트 3세대 민중신학에 이르기까지의 민중신학에서의 지배구조’, ‘주요모순’, ‘비판의 입지점’, ‘민중에 대한 담론’, ‘저항담론의 형식’, ‘수행자의 위치등 사항의 시기별 변동 내역을 발표하고, 여기에 허수는 민중신학의 각 세대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 민중사학 쪽의 이야기를 안배하여, 민중신학과 민중사학의 유사점과 차이점이 스스로 드러나도록 하였던 것이다.

한편, 간담회 중간 중간 현장 참여자의 질문도 이어졌는데, 가령 민중신학 담론에서의 여성의 위치, 1980년대 제2세대 민중신학의 담론과 실천에서 교회 내외부의 연계 문제, 1970년대 여러 집합 개념 중에서 민중이라는 단어가 차지하는 위상 및 의미, 3세대 민중개념에서 왜 소수자가 주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는가 등이었다. 

 

2. 한편, 당시 서로가 처음 만나는 자리라는 생각이 안들 정도로 너무 깊고 내밀한 이야기와 문제제기가 이루어져서 나왔던 논의를 모두 정리하지 못하고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던 점은 아쉽다. ‘민중이라는 단어를 같이 사용하고 있다는 친근함 때문인지, 다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의 조심스러움과 배려 없이 바로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한참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야기의 맥락이나 개념의 함의가 달라 곧잘 결과는 예상을 빗나가기 일쑤였다.

어쩌면 사건의 신학과학의 역사학사이에는 실로 큰 강이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잠재하던 화산맥이 터져 새로운 사건이 일어날 것을 예기하고 사고하려는 신학과, 좋고 나쁘건 간에 존재했던 것들을 존중하고 사고하려는 사학 사이에는 실로 천지의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상황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당시는 코로나19가 만연하여 현장 참여인원을 15명으로 한정하여 간격을 두고 간담회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현장에서는 모두가 마스크를 끼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야기는 뭉개지고, 준비했던 녹음도 불명확하여 간담회는 말 그대로 재생 불가능하게 되었다. 지금 이 글은 여러 사람의 기억을 더듬고 메모를 종합하여 작성하고 있다.

 

3. 민중신학과 민중사학의 두 번째 만남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명확히 말할 수 없지만, 다음 만남은 민중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신학과 사학에 대한 차이에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마치 이국에서 고국 사람을 만났을 때의 반가움처럼 처음엔 민중에 대한 동일한 관심 때문에 서로에 대해 맹목적인 측면이 있었지만, 이제는 냉정히 같이 결합할 수 있는 측면을 탐색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측면은, 간담회에서 잠시 스쳐지나간 이야기인데, 신학 쪽에서는 사회의 물질성을 어떻게 사고할 것인지, 사학 쪽에서는 역사에서 인과를 넘는 초월적 계기를 어떻게 포착할 것인지에 대한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