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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동통신]우리의 민주주의에 여성의 자리는 있는가-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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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1-04-04 조회수 : 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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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민주주의에 여성의 자리는 있는가-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

 

 

2020년은 다사다난 했지만 특별히 한 가지 사건을 꼽자면,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성폭력 사건일 것이다. 이 사건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평소 인권시장을 표방하며 미투운동을 지지하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해왔던 그였다. 오랫동안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1993년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사건, 2000년 일본군 성노예제 여성국제법정, 2002년 제주 우지사 성폭력 사건 등에 참여하여 대한민국 여성운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던 그다. 비단 여성운동만이 아니라 무수한 인권운동의 현장에 있었고 인권대중화의 선두에 있었다. 그런 그가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었다.

 

세상사는 한치 앞을 알 수 없고 세상엔 믿을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는 다를 거라고 믿었다. 그렇기에 믿을 수 없었다. 이 사건을 접하며 충격과 실망, 분노와 슬픔을 넘나들며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이는 박 전시장에 대한 것만이 아니었다. 함께 인권운동을 하는 동지들과 선배들, 그리고 나에 대한 것이었다. 사람 보고 운동하는 것 아니라지만 사람에 대한 희망 없이 어떻게 운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혼란과 요동은 나만 겪은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가해 사실을 부정하거나, 피해자를 비난하거나, 피해사실을 유출하는 등 온갖 2차 가해가 발생했다. 피해자가 말한 것처럼 이런 믿음, 이런 혼란, 이런 소동이 그 분이 갖는 위력이었을 것이다.

 

사건이 발생하고 언론이 온갖 기사를 쏟아낼 때, 한 언론사의 전화를 받았다. 기자는 지자체장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 다시 발생한 원인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글쎄요...” 특정한 사람의 문제라면 해법은 영영 찾지 못 할 것이다. 시스템의 문제라면 보다 성평등한 시스템을 마련했다고 자랑했던 서울시에서 왜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지 답해야 한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고자 모인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공동행동은 반복되는 위력 성폭력을 여성이 경험하는 성적 침해의 문제를 넘어, 여성노동자가 남성과 동등한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일터에서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침해당하는 여성 노동권의 문제로 확장하였고, 우리가 어렵게 일궈왔던 민주주의에 성평등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현재의 보궐선거가 이뤄지는 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그 진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된다. 민주당은 성폭력 사건을 부정하기 바빴고 여론이 악화되자 면피성 사과를 했다. 국민의 힘은 성폭력 사건을 정쟁을 위한 도구로 이용할 뿐이다. 어디에도 이번 선거를 하게 된 원인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대안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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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담한 시국을 지나며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여성의 자리는 어디인가? 우리의 민주주의에 여성의 자리는 있는가? 이런 질문을 던지니 불현 듯 지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때의 한 슬로건과 포스터가 떠올랐다. 민주당에서 내세운 17개 광역단체장 후보는 전부 남성이었고 심지어 슬로건은 원팀이었다. 원팀에 여성의 자리는 없었다. 그렇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610 항쟁을 거치며 쟁취한 민주주의에, 시민이 직접 대통령을 탄핵하고 세운 민주정부에, 여성들은 배신당했다. 프랑스대혁명을 여성들은 배반당한 혁명이라고 부른다. 수많은 여성들이 혁명에 동참했지만 혁명이 끝난 뒤 여성들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갈 것을 강요받았다. 18세기 프랑스와 여성노동자에게 일이란 그분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일 수밖에 없는 21세기 한국은 과연 얼마나 다를까. 2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지만 기시감이 드는 건 왜일까.

 

 

민주당이 자랑스럽게 내세운 광역단체장 후보자 포스터가 이상해 보이지 않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위력 성폭력의 발생은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결과가 아니었을까.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부르며, 직장 내 성폭력을 구제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공공기관 내 성평등한 문화를 구축하겠다고 공언하였지만, 시도지사를 위시하여 그들과 함께한 남성 핵심 집단에게 성평등은 허공의 메아리가 아니었을까. 심지어 큰 일을 한다는 명분으로 끈끈한 남성연대를 기반 삼아 기존의 성차별 관행을 활용하고 성폭력을 보상으로 삼았던 것이 아니었을까. 불행한 일들이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21년에도 변화의 기미는 잘 보이지 않는다.

 

진실을 부정하고 온갖 이유를 들어 가해자를 이해하고 옹호하더라도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 남성에게 기울어진 민주주의를 바로 잡지 않는다면 위력에 의한 성폭력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 성폭력은 일탈이 아니라 관행이며 기울어진 운동장은 이 같은 관행을 용인한다. 불행한 일들이 반복되었음에도 변화는 아득해 보인다. 그러나 균열은 이미 시작되었고 꾸역꾸역 균열을 내려는 사람들이 보다 많아진다면 빠른 미래에 변화는 도래할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