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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들

Y형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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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4-06-11 조회수 : 10,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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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지내시는지요? 날이 많이 더워졌습니다. 가끔씩 밖에 뵙지 못하다 보니, 늘 할 말은 많으나 두서없는 인사만 나누다가 헤어지곤 합니다.

  요즘 형의 책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만, “역사학은 학문일 수 있는가?”하는 형의 물음이 제 안에서 아프게 울립니다. 아직 어린 나이지만 ‘역사연구자’라는 이름에서 자유로와질 기회는 이제 오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라 더욱 그렇습니다. 잠시 책을 덮고 작년의 일을 떠올려 봤습니다. 벌써 후속 심포지움이 있었으니 이제는 때늦은 이야기가 되었습니다만, 작년 5월 연대에서 열렸던 파시즘 심포지움에서 느낀 것을 조금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아마 국문학자이자 비평가인 K선생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파시즘과 젠더정치'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내용은 요컨대 일제말기 파시즘적 상황 하에서 발화된 각종 정치적 언설들을 성정치학적으로 분석한 것이었습니다. 파격적인 내용 전개와 발랄한 수사가 돋보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만 저의 눈을 머무르게 한 것은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형도 아시겠지만 이즈음에는 역사학계 '바깥'에서 새로운 방식으로 식민지기 '역사'를 분석한 글들을 꽤 볼 수 있습니다. 이루 예를 들 필요도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글들을 보면 하나 재미있는 점이 눈에 띄는데 다름 아니라 형의 글이 꼭 인용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에서 앞의 K선생의 글을 예로 들자면 저는 하나의 흥미로운 인용의 심리학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개 역사학계 '바깥'에서 이루어진 식민지기 연구에 대한 흔한 비판은 이른바 실증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한국사논문'의 틀에 익숙한 눈으로 보면 서두에서 여러 이론들을 좌충우돌 설명하고 나서 '증거'로 대강 잡지기사 몇 개, 신문기사 몇 개를 인용한 글은 정말 실증이 '부족'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런 글에서 형의 이야기는 ‘실증이 부족한’ 그 글의 논지를 뒷받침해 주는 '한국사학계의 목소리'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이런 것입니다. Y=국사학과 박사, 한국사강사. 따라서 Y의 글=한국사논문. 그러므로 한국사논문에 나온 얘기=사실(史實)에 근거한 것. 이제 내 글에서 부족한 실증은 Y의 글을 보라. 특히 K선생의 글에서는 고리타분한 한국사학계에서 이런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까 굳이 실증 안해도 내 주장이 맞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투,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만, 자기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형의 글을 ‘동원’함으로써 대신했다는 느낌이 매우 강합니다. 이게 누구를 폄하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이런 방식의 인용이 횡횡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실상은 어떠한가요? 재독하며 또 느끼는 바이지만 형의 글들은 전혀 전통적인 의미에서 한국사논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형의 글들은 여러가지 이론서들, 그리고 이른바 '실증성'이 부족한 역사학계 '바깥'의 연구성과들을 인용하여 역사학계의 자기비판을 촉구하는 말하자면 '계몽논설'이라고 해야 옳지 않을까?(물론 형의 의도가 ‘계몽’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 그런 효과가 있었다는 이야기지요.) 이런걸 전통적인 학문분류에 따르면 어떻게 부를 수 있을까요?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겠지만 일단 과감하게(무식하게?) 명명해 보자면 일종의 지식사회학이 아닐까? 혹은 역사학계의 논법으로 하자면 ‘사학사’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여간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닐 터이지요. 문제는 형과 역사학계 바깥의 연구들은 서로가 서로를 인용하며 자기 논지가 상대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주장하는 데에 있겠습니다. 여기에는 전통적인 역사학의 틀에 따르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완전히 벗어던지지 못하는 약간은 어정쩡한 분위기가 복재(伏在)해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사라지고 있는 것이 '원전'입니다. 이른바 일차사료라는 것이지요. 물론 일차사료=당대의 사실 반영이라는 도식을 주장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역사학의 독특함은 연구대상시기 당대에 발간된 문헌을 ‘최대한 많이' 오늘의 독자들에게 제공하는데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발간이라는 말은 편찬이라고 바꾸어도 무방할텐데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원전의 사라짐은 역사학(어쩌면 ‘역사학’이 아니라 다른 이름을 붙여야 옳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의 존립을 위협하는 위험한 현상이 아닐까요?
  주장은 어떠한 주장이든 자유롭게 이야기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그것이 논리적인 주장이라면 학문의 이름으로 유통되어도 상관없겠지요. 그러나 이 것이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지 못한 역사학의 이름으로 유통되는 것은 서로 다른 룰북을 들고 그라운드에 나서는 것과 같지 않을까요? 앞에서 어정쩡한 복재라는 말을 썼지만, 그것은 다시 말하지만 “Y는 역사학자이니 Y의 글은 사료에 근거한 것이다”라는 부당전제가 암암리에 깔려있다는 의미였습니다. 우선은 곳곳에서 발견되는 이러한 부당한 전제가 걷어져야 할 터이며(분과학문 체계를 넘어서자고 주장하는 많은 훌륭한 연구자들이 또 어느 순간에는 너는 무슨 학자, 나는 무슨 학자라는 껍질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버리는지...), 나아가 그렇다면 역사학이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한 기여는 무엇인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생각이 얕은 탓이겠지만, 변죽만 울리다가 말았습니다. 게다가 이게 형에게 드릴 말씀인지도 실은 좀 헷갈립니다. 다만 설익은 후배의 투정으로 생각해 주십시오. 좀 더 자세한 말씀을 드릴 ‘인간적인’ 기회가 있겠지요. 누군가의 말에 따르면 요즈음이 간빙기라서 ‘장기지속적’으로 날씨가 더워질거라고 합니다. 늘 건강 유의하시고 건필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염복규 드림.

추신 : 주소를 쓰지 않아 이 편지가 형에게 전해질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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