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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역사문제연구소 첫번째 인권간담회 후기 (윤현상,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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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1-10-01 조회수 : 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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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간담회 후기 (윤현상)

 

2021414, 새해 첫 연구소 인권간담회가 열렸다. “당신의 해방과 나의 해방을 긴밀하게 결합하기 위해라는 주제로, 노들야학의 박경석 전 교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간담회는 박경석 선생님의 유쾌한 언변 덕분에 노들야학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투쟁의 역사들을 둘러보는 내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박경석 선생님의 유쾌한 언변 속에는, 웃을 수만은 없는, 실은 힘들고 어려웠을 투쟁의 이야기들이 가득했다. 박경석 선생님의 이야기와, 나중에 읽은 홍은전 선생님의 노란들판의 꿈을 통해 약간 보완해서 내용을 소개한 후 간단한 감상을 덧붙이려 한다.

 

노들야학은 1993년 장애인 교육을 위해 정립회관의 작은 공간을 빌려서 개교했다. 처음에는 정립회관에 딸린 정립전자에서 일하는 장애인을 위한 야학으로 시작했다. 이들은 신체적인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흔히 의무교육이라고 하는 초중등학교 교육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그 시작은 결코 쉽지 않았다. 기본적인 거동조차도 불편해서 일 하는 중에 화장실마저도 참아야 하는 상황에서, 고된 노동이 끝난 후 다시 찾아 와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고됨마저도 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수업 시간에 야학 교사와 학생이 만나 함께 수업을 하고, 검정고시를 보며, 배움과 연대를 넓혀 나갔다.

 

그렇다면 이렇게 야학으로 시작한 노들야학은 어떻게 투쟁과 결합하게 되었을까? 박경석 선생님은 간담회에서 노들야학은 늘 생활 속에서 투쟁을 뽑아낸다고 했다. 생활을 하며 겪는 상황들에서 자연스럽게 투쟁해야 할 것을 발견하고 조직한다는 의미였다. 이는 바꿔 말하면 곧 생활 자체가 늘 투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야학의 시작부터, 단순히 검정고시를 공부하기 위해서 만나는 것자체도 도전이고 투쟁일 수 밖에 없었다. 야학이 자리를 잡으면서 정립회관 외부에서도 배움을 찾아 오려고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났지만, 산 중턱에 위치한 정립회관까지 오는 것이 불가능해 어쩔 수 없이 다음에 오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빈번했다. 나중에 봉고가 생겨 사람들을 데려 올 수 있게 되었지만, 그 봉고를 운전을 해 야학 학생들을 데려오는 것조차도 누군가의 시간과 노력, 희생이 필요한 일이었다. 학생들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학교조차도 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일 수 있게 하자. 그렇게 이동권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동권 투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와중에도, 피해를 입고, 어려움을 겪으며, 때로는 희생을 겪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생겨났다. 허망하게 일어난 희생을 해결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마주한 정부와 관료들은 검토해 보고결과를 알려준다고 했지만, 결과를 언제 알려주는지도 검토해 보고 알려주겠다는 행정주의적이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결국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철의 앞을 막고, 우리들의 필요를,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소리쳐야 했다. 그제서야 겨우 사람들이 누군가가 이동권을 외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아무리 외쳐도 들어주지도 않던 소리였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계속되는 가운데에, 그래도 그렇게 조금씩, 지하철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활동보조서비스가 제도화되면서, ‘남들이 당연히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위한 여러 권리와 제도들을 하나씩 쟁취해 나갔다.

 

박경석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또 홍은전 선생님의 노란들판의 꿈을 뒤늦게 읽으면서, 묘하게 어딘가 말과 글의 느낌이 겹쳐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야기가 너무 아름답기만 하고 비판적이거나 힘들었던 내용이 없는 것 아닌가라는 강연에서의 질문이 자연스럽게 다시금 떠올랐다. 이 질문에 대해서 박경석 선생님은, “투쟁과정은 실패가 기본이라고 답했다. 노들야학의 꿈에 나오는 글들은 아름다워만 보이지만, 사실은 투쟁의 과정이고, 투쟁은 실패의 연속이었으며, 눈물나는 일들이 많았다고. 다만 실패를 반복하다 보니까 어느덧 성공이 되어 있더라고.

 

이 답변을 들으면서, 여러 생각이 들었다. 실은 지금 우리는 너무나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각종 자기개발서의 시대를 넘어,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으로 이어지는 포기와 좌절이 디폴트가 되어버린 시대에, 지금의 실패가 나중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실패가 계속되지만, 언젠가는 그 실패가 쌓여서 원하는 것을 이루어 내었다는 이야기를 박경석 선생님은 하신 것이다. 때로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 부르곤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박경석 선생님의 강연 속에서, 또 홍은전 선생님의 책의 내용에서 핵심을 이루는 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사람.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이 수업 안 듣고 영화를 보러 다녔던 학생에 대한 이야기이든, 고기를 안 먹어서 밥 먹기를 힘들게(!) 하는 동료에 대한 이야기이든, “밥 먹었냐라는 이야기를 섣불리 할 수 없어 차라리 굶기를 택했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든 간에, 노들야학의 이야기에는 사람과 관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그렇기에 박경석 선생님이 스스로 일 하는게 가장 즐겁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애정 넘치는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답지 않을리 없다. 그래서 쉽게 희망을 이야기 하지 않게 된 우리들에게, 박경석 선생님의 이야기가, 홍은전 선생님의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아름답게 보여지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강연이 끝난 후 흔쾌히 후기를 쓰겠다고 답을 했지만, 막상 후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실은 그렇지 않은가, 우리를 가장 즐겁고 행복하게 하는 것도 사람이지만, 결국에 우리를 가장 힘들고 괴롭게 하는 것도 사람인 것을. 그래서 그 일견 아름다워 보이는 실패와 성공의 이야기 속에 감춰져 있는 여러 어려움과 고난의 이야기를, 깊이 듣지도 보지도 못했지만 전해지는 그런 감정들을, 내가 도대체 어떻게 감상에 담아낼 수 있을까. 결국 책을 읽었다가, 녹음을 다시 들었다가, 글을 썼다가 지웠다가, 다시 한 동안 쓰지 못했다가를 반복하며 글을 마무리 짓지 못하는 사이에, 꽃 피던 봄에 시작한 이야기가, 어느덧 가을의 초입에 와 있다.

박경석 선생님은 강연 말미에, 420, 세종시에서 난리가 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으라고 살짝 언질을 주었다. 그리고 그날, 세종시에서는 세종시 출범 이래 처음으로 BRT 중심 도로가 5시간 가량 전면 멈춰세워졌다. 박경석 선생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장애인 차별 철폐 및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 전면개정 등을 들어달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알 수 없는 시위는 계속해서 이어져, 마치 인디언기우제처럼 반드시 쟁취와 성공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지난하고 눈 앞이 깜깜한 시기를 버텨 나가려면, 결국에는 사람과 관계를 통해 희망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하며 연대해 나가는 것, 그것이 당신과 나의 해방이 결합하는 길이 아닐까.

 

노란들판에, 올해에도 어김없이 풍성한 수확이 가득하기를 바라며 부족했던 후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