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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驛舍) 기둥에 기대서서(강현아, 예술로 기획사업 참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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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2-01-08 조회수 :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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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驛舍) 기둥에 기대서서

 

.그림_강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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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021년 역사문제연구소와 함께 예술로 기획사업에 참여한 강현아입니다. 어느덧 추운 계절이네요. 예술인들에게 겨울이란 경제적으로 긴축하며 이듬해를 준비하고 계획하는 시기입니다. 몸은 여유로운데 괜스레 심란한 때이기도 해요. 역사학자들의 겨울은 어떤가요? 21년 봄, 여름, 가을 동안이나 연구소 문을 여닫곤 했네요. 첫 방문 때 공간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조금 의아했습니다. 혹시 책장이 회전해서 열리고 연구원들이 그쪽에 계신 건 아닐까 했네요. 영화를 많이 봤나 봅니다. 전날 홈페이지를 통해 구성원 리스트를 본지라 더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활동하며 자연스럽게 여러 연구원들을 만나겠지 싶었는데 생각보다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기간 동안 저희는 주로 1층에서 만남을 가졌는데요. 그래서인지 역문연하면 벽사당 현판이 대번 떠오릅니다. 고 신영복선생님의 필체라고 들었어요. 푸른 역사. 바른 역사를 향한 움직임이 색으로 연상되며 이곳의 정체성을 녹인 말처럼 시적 언어로 다가왔습니다.

 

제게 2021년은 역문연과의 시간이 기억 목록에 굵직이 담겨졌습니다. 초반을 돌아보면 제 나름의 경험치로 예술로 열차에 탑승만 하면 순조로우리라 자신했는데, 결국 여러 국면과 굴곡진 상황에 모두 덜거덕대다가 도착 안내방송에 우르르 내린 형상입니다. 몸에 잔진동을 남긴 채 이 글을 쓰면서 그 시간을 곰곰이 반추하게 되네요.

 

제가 만난 역사(驛舍)에는 거대한 청동문이 있었습니다. 어디를 어떻게 노크해야 할지 몰라 한참이나 주저했다고나 할까요? 문이 열렸는데도 누구 하나 쉽사리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천장은 매우 높았고 사방은 책장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사건, 흔적, 기억들이 차곡차곡 쌓인 역사(驛舍)라는 곳은 시간층 깊은 아우라를 자아냈습니다. 누구든 들어올 수 있고 어느 책이든 열어 볼 수 있는 공간임에도 접근이 쉽지 않아서인지 여행가이드의 가벼운 설명을 듣고 서둘러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아마 짐작하셨을 거에요. 저는 종종 단어의 중의법을 즐겨 쓰는데, 역사(歷史)에 대한 제 고정관점을 역사(驛舍)공간에 비유해본 것입니다. 역사 입장에서는 억울한 면이 많겠다 싶어요. 그럼에도 발을 살짝 디뎌본 자의 입장에서 역시나 다가가기 쉽지 않았음을 재차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저희는 기획 초기에 역문연의 거점인 제기동을 중심으로 지역사를 그리며 문화역사지도를 그려보겠노라는 당찬 포부를 기획서에 담았는데요. 예술인과 역사학자 서로 간에 관념화된 문화역사지도가 구체화되고 실체화되는 과정에서 입장 차로 인해 이격이 나곤 했습니다. 문화, 역사, 지도라는 방대한 용어들의 조합에서부터 어쩌면 이상 조짐은 보였을 거에요. 예술인들은 지역을 학문적 역사로 접근하기보다는 각자의 관심사를 지역 안에서 풀어가는 것 또한 문화역사지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이면에는 학문적 역사로의 접근이 어느 정도 깊이까지 닿아야 하는지 알 수 없고 쉽지 않기에 우회하는 방식을 취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입장의 틈을 메우는 애를 쓰지 않고 얼버무리며 결과물을 향해 가다보니 서로 간 소통이 어려워지거나 신뢰를 잃은 일들이 빚어진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역문연에서는 지역사에 대한 연구가 시작 단계였는데, 그러고 보면 무리하게 문화역사지도책을 만들기보다는 장기적 관점으로 올해는 시대별, 인물별, 사건별로 지역사를 같이 조사하고 인덱스 작업 정도를 목표로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지금에서야 듭니다. 예술로 사업이 결과물만을 목적으로 한 사업이 아닌데 서로 간 무리한 목표에 허덕인 셈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라운드테이블 때도 전했다시피 우리의 지난했던 과정이 무의미하거나 실패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상대를 통해 자기 영역의 빈틈과 허물을 대면하는 시간이 되었기를 바라게 됩니다.

 

역문연 사업위원회 회의를 참석해보니 현장답사, 기획강좌, 영화관람, 교육연수 등 여러 방면으로 시민교류 활동과 대중화에 방향성을 두고 있음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앞서 역문연과 역사의 높은 문턱을 청동문에 비유했는데요. 저는 역문연에서 바른 역사를 다루는 흥미로운 기획의 능동적인 미디어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역사문제연구소 또한 역사인식의 대중화라는 목적을 이행하며 지속적으로 고민하던 점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연구소 1층 큰 탁자에서 역사비평 책을 종종 마주할 때마다 몇 차례 넘겨 본 적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발행해는 전문 서적을 향한 제 나름의 시도인데요. 볼 때마다 아! 이 책은 정녕 내가 보기엔 무리구나 싶어 후다닥 덮었습니다. 저는 2017년 제주에서 4.3에 관해 설치 작업을 했습니다. 리서치를 하다가 서점에서 찾은 4.3 관련 도서가 잘못된 방향으로 기록된 책임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저로서는 교묘하게 위장한 자료들 사이에서 비평적인 관점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래 그 분야를 연구한 분들을 통해 기댈만한 길잡이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게 됩니다. 분야가 다르긴 하지만 한 예로 서울환경연합에서 <도와줘요 쓰레기박사>라는 영상컨텐츠를 제작하는데, 저는 분리수거하다가 헷갈리면 여기를 찾게 되더라고요. 이 컨텐츠는 쓰레기에 관해 뭐든 물어보면 친근하고 구수한 사투리로 정확한 정보를 전해줍니다. 떠도는 분리수거 정보들의 구심점이 되었달까요? 역사컨텐츠는 어떻게 접근하는가에 따라 마르지 않는 샘이지 않을까 싶네요. 올해 지역사에 관해 함께 하다보니 가로수에도 옹벽에도 걷는 길에도 몰랐던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사업을 종결 후 길을 다니다보면 외벽이 오래된 타일로 된 건물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60-70년대에 지어진 건물임을 아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민감하고 날선 역사문제와 일상에서 만나는 역사를 균형있게 다룬다면 결국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한 축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驛舍)기둥에서 몸을 세워 정리하자면, 사실 거대한 청동문은 그렇게 보는 자가 지어낸 상()일거에요. 보는 자와 대상 간의 감응이 일어난다면 언제든 변할 수 있는 형태라고 생각합니다. 막상 실제로 만난 역문연 분들은 뵐수록 어렵지 않았습니다. 어려웠다면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쓰지 못했을 겁니다. 제가 지금 약간 급하게 유종의 미를 거두려는 폼이긴 합니다. 큰 탁자에서 맥주와 주전부리, 짜장면과 짬뽕을 먹으며 나누던 시간이 떠오르네요. 사업위원회, 영화관람, 식물워크숍, 라운드 테이블에서 뵈었던 연구원들 모두 따듯하게 맞아주셔서 고마웠어요. 특히 6개월간 함께한 예술인들(김이박, 이선애, 이수, 이혜진, 임민아)과 멀리서 오셔서 인터뷰해주신 이주원님, 도무지 안 외워지는 1층 화장실 비번을 여쭐 때마다 친절히 알려주신 총무부장님, 그리고 예술로 열차에 급히 오르며 두통과 멀미를 함께 겪은 배경식부소장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그럼 2022년 임인년 새해 소원하시는 일들 모두 이뤄지기를 바랍니다.

 

 

아참! 역문연하면 벽사당 현판이 먼저 떠오른다고 했는데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금색 엘리베이터. 흐음. 그 엘리베이터 때문에 청동문을 떠올렸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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