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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진상규명법안과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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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4-07-15 조회수 : 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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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4일에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시민연대에서 기초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특별법'이 국회의원 170명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되었다.
이 법은 이미 지난 2월에 통과된 바 있었지만, 이 법안을 반대하는 세력의 갖은 이유로 인해 법안을 제출했다는 것 외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는 '누더기법'이었다.
뒤늦게나마 법안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개편되어서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이 법안이 제출된 뒤의 경과를 보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하나 있다.
한나라당이 반대하고, 조선일보가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동아일보까지 덩달아 뛰는 것을 보고, 역시 동아일보가 한참 멀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동아일보가 자신의 역사를 제대로 모르고 있으면서, 또 자신이 과거에 지나치게 미화시킨 역사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에 개정된 법안 중에서 '동아일보'와 관련된 부분을 보자.

"문화 예술 언론 교육 학술 종교 등 사회 각 부문에서 황민화운동을 비롯한 일제의 식민통치정책과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자"

이다. 이전 법안에선 '중앙의 문화기관, 단체'로 규정되었다. 새롭게 언론이 추가되면서 문제를 삼고 있다.

그렇다면 동아일보는 왜 흥분하는가. 1937년 복간 이후의 지면에 문제가 없었다고 강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 '사주'였던 인촌 김성수를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여겨진다. '동아일보 = 김성수'의 등식을 스스로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것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알기로 법률이 '정황'을 참작할 뿐이지 그 '정황'을 조사대상으로 하지는 않는다. 김성수는 최대주주였을 뿐이지 1937년 이후 동아일보의 경영과 제작에 관한 아무런 법률적 책임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잘 알다시피 1936년에 일장기말소사건이 터졌다. 이후 상황은 대충 아래와 같이 전개되었다.  

"일제는 사건의 주모자뿐 아니라 동아일보 사장 송진우와 평소 일제가 불만스럽게 여기던 간부사원의 퇴진을 요구했다. 또 발행인과 편집인의 명의를 새 사장에게 넘기고 사장, 부사장, 주필, 편집국장을 임용할 때는 반드시 일제의 승인을 얻도록 했다. 이러한 요구는 ꡔ동아일보ꡕ를 김성수와 송진우로부터 분리시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개악하려는 의도였다. 나아가 일제는 김성수와 송진우의 경영관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기 위해 그들의 지분을 새 사장에게 모두 넘길 것 것을 강요했다. 김성수와 송진우는 일제의 요구를 수용하되 최대한 자신들의 의중을 반영할 수 있는 인물을 추천하려 고심했다. 동아일보는 양원모, 장덕수, 고재욱, 김용무, 김병로 등을 차례로 추천했다가 일제로부터 연거푸 거부당한 끝에 백관수로 타협을 볼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동아일보는 정간에서 풀려날 수 있지만 그 댓가는 너무 컸다. 동아일보는 “대일본제국의 언론기관으로서 공정한 사명”을 다하겠다는 사고(社告)외에도 사장 겸 발행인 명의의 서약서를 경무국장 미쯔하시(三橋孝一郞)에게 제출했고, 보도지침에 해당하는 18개항의 「언문신문지면쇄신요항」을 받아들였다."

송진우는 자신의 모든 주식을 신임 사장에게 양도한 뒤 고문으로 물러났다. 한편 김성수도 1936년 11경에 취체역(중역)에서 사임함으로써 동아일보의 공식적인 직함에서 물러났다.

동아일보의 지면이 이른바 친일적 색채를 노골히 한 것은, 1937년의 복간 이후였다. 이 시기 신문제작의 법률적 책임은 사장 겸 편집국장이었던 백관수가 질 수밖에 없다. 굳이 더 한다면 고문이었던 송진우까지 포함할까.
백관수가 '바지사장'이었다 하더라도 현재의 법률은 실제의 사장을 벌할 수 없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학도여 성전에 나서라]를 김성수가 썼다 하더라도, 그것은 동아일보 전사장, 언론인의 효과를 올릴 수 있어도, 실질적으로는 자연인 김성수의 자격일 뿐이다.

동아일보와 김성수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이번에 개정된 법안으로는 김성수를 조사할 근거가 없다. 이번 법안의 맹점이라면 맹점이랄까. 동아일보가 이러한 사실을 몰랐다면 할 수 없지만, 새삼스럽게 거품을 물 필요까지는 없는 일이다.

 

 

필자 : 유와달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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