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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역사문제연구소 영화단체관람 후기, 영화 <206:사라지지 않는> (김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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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3-10-10 조회수 : 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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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영화단체관람 후기, 영화 <206:사라지지 않는>

 

김지훈(연세대학교 사학과)

 

역사문제연구소로부터 영화단체관람 기회를 얻어 2023625일 서울 충무로 대한극장에서 <206: 사라지지 않는>이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한국전쟁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이 영화를 한 번 보는 것이 어때?’라는 학교 선배의 추천을 받고 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6월 말에 저나 그 선배 모두 졸업을 위한 사전 작업으로 교내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막상 625일이 되니 나태와 번민이 약간 퍼져왔지만, 책상 앞에 틀어 박혀있느니 바깥 공기도 조금 쏘이고 문제의식을 가다듬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극장에 갔습니다.

 

영화는 2005년 제1기 진실화해위원회가 출범 이래 5년 만에 해체되고, 2014년 출범한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충북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4.9통일평화재단, 추모연대 그리고 희생자 유가족을 비롯한 다양한 시민들이 함께한 발굴현장을 담고 있습니다. 발굴현장 특유의 어수선함과 농담 따먹기가 정답기도 하였거니와 영화 안의 현장에 더욱 몰입할 수 있는 요소였던 것 같습니다. 물론 현장에서 발굴되어 정리되는 과정에서 도열한 두개골이나 정강이뼈 혹은 사람의 손을 탔던 물건들을 말없이 보여 주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유골과 유품들을 수습하고 플라스틱 박스에 담아 합동영결식을 거행하였습니다. 한 인간의 부재 하나하나가 모여 거대한 부피감으로 다가올 땐 입 안의 침이 바짝 마르고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영화를 보며 유독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고고학자 박선주 선생님이 유해 감식을 위해 어금니나 사랑니를 들추어 보는 장면이었습니다. 치아의 상태를 통해 희생자의 나이와 흡연 같은 생활 습관을 밝혀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매체에서 자주 본 기억으로 법의학이 이런 것일까요. 그런데 다소 엉뚱한 생각입니다만, 저는 그 장면에서 계속 얼마 전 시술 받은 신경치료의 고통이 생각났습니다. 영화의 고통을 제 어금니의 부재로 느끼고 싶은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저도 영화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환상통을 느꼈습니다. 치과의 신경치료는 사실 치아 뿌리 안의 신경을 모두 긁어내어 제거하는 시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루트 카날 테라피라고 한다고도 합니다.

 

영화에서도 몇 가지 뿌리가 나옵니다. 하나는 유골을 수습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나무를 자르고 그 뿌리 아래 얽혀 있는 유골을 수습하는 장면이었습니다. 한 어머니가 어린 아이를 품고 죽은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슬픔과 화가 가시고 나니 무슨 생각으로 이들을 죽여야한다고 생각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발본색원의 사회공학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또 다른 하나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이제는 노년의 신사가 된 유족 김광욱 할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 손을 한 번 제대로 잡아볼 기회가 없었다며 서럽게 우는 장면은 정말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또한 합동영결식에서 김광욱 할아버지가 신원을 알 수 없는 유해들을 아버지 삼아 회한 어린 절을 올리는 장면도 있었습니다. 노신사의 기억 한 켠에 오롯이 남아 있지 못한, 어린 시절 아버지의 부재 그리고 이를 찾기 위한 행동은 아버지의 부재와 자신의 존재 사이의 간극을 납득하기 위한 과정으로 보였습니다.

 

또 개인적인 경험이야기 입니다만, 한국전쟁 중 군인 전사자 명부를 얻어 대조해 본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중 한국군 전사자가 138천여 명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몇몇의 경우는 중복 집계된 경우가 있었습니다. 즉 혼란한 전선 상황으로 전사자 통계가 중복으로 집계된 것이었습니다. 심지어는 한 사람이 4번 죽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죽음들에 대해서는 모두 각각 위패가 만들어져 봉안되어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어떤 죽음을 기려야 할까요. 사실 한국전쟁 중 민간인 학살의 정확한 통계를 내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정말 많은 사람이 불분명하게 죽었고, 한때 이 나라는 침묵을 강요하여 그 죽음마저 잊게 만들어 왔습니다. 어떤 죽음은 나라를 위해 싸우다가 숭고하게 죽었기 때문에 4개의 위패를 모시고 있고, 어떤 죽음은 그저 혐의가 있을 것이다라는 막연한 의심으로 그 죽음마저 부정당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뿌리 중 하나는 이렇게 과잉된 혹은 멸실된 죽음에 대한 기억을 통해 만들어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