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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나는 OOO 연구자 입니다 : 개념어를 활용한 사학사·사상사 연구자 (김명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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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3-29 조회수 :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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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OOO 연구자입니다: 개념어를 활용한 사학사·사상사 연구자

 

김명재(역사문제연구소)

 

  개념어와 담론 연구를 소재로 하여 한국 근대의 사학사·사상사를 중심으로 연구하던 중 신임 연구원으로 입소(?)한 김명재라고 합니다. 아직 신진연구자라고 하기도 민망하기도 하고 연구를 한 기간이 석사과정을 합쳐도 10년이 채 되지 않습니다만, 나름 짧지만 소중한 제 연구 기간을 3시기로 정도로 구분해 볼 수 있겠습니다.

 

  국정교과서 사태로 점철된 2015년으로 시작하는 첫 번째 시기(2015~2018)에 저는 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논문에서 진보개념을 소재로 하여 근대 한국의 사학사를 다루었습니다. 보통 개념사 논문을 떠올리면, 빅데이터를 가지고 언어연결망이나 토픽모델링 등의 계량적 방법을 통해서 연구를 떠올리기 쉬울 겁니다. 다만, 저는 데이터 정리와 연결망 분석 대신, 직접 사료를 읽고 개념어와 언어가 가지는 의미구조를 눈 여겨 보면서 해석하는 이른바 질적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주로 19세기 후반부터 1920년대 초반까지 통사 자료와 사론 속에서 진보개념이 어떻게 수용되었고, 그 소화 과정에서 역사-진보의 논리에 전통적인 사고가 어떻게 개입하고 있었는지를 밝히고자 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국사에서 조선시대 후기 혹은 조선시대나 고려시대를 포함한 당대의 최근세 시기를 정체기(停滯期)’로 설정하고, 이를 전제로 해서 역사-진보담론이 구성될 수 있었다는 점을 주장하였습니다. 다만, 식민사학과 근대 한국 사학의 구분을 강조한 나머지, 한국인의 주체적 발전론에 방점을 찍었으며 이에 따라 식민성·근대성 비판이라는 최초의 문제의식도 흐려졌다는 지적도 받았습니다.

 

결국 이러한 지적을 극복하기 위해서 개념어를 활용한 다른 연구 방식을 모색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단일 개념, 그러니깐 진보혹은 문화개념과 같은 단일 개념의 수용 및 정착사가 아니라, 복수의 개념어들이 그리는 네트워크와 관계에 천착해 보거나, 더 나아가 개념 및 담론 연구를 통해 드러낼 수 있는 식민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시기(2019~2023)는 박사과정을 시작하여 일본 와세대대학교에서 리서치 펠로우쉽을 다녀온 시기입니다. 이때는 주로 사회주의 사상 혹은 사적유물론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먼저 1910년대부터 1920년대 초반 식민지 조선의 사회주의가 맑스주의 혹은 광의의 사회주의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흔히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진 문화주의와 같은 물질주의 비판 사조와 진화론이라는 지렛대를 활용했다는 지점에 천착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식민지 시기 사회주의와 문화주의가 당대 식민지인들이자 수용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상호참조 가능한 것이었다는 취지로 20211차 세계대전 발발 이후 식민지 조선의 노동문제 인식 변화와 계급투쟁론의 형성과정을 발표하였습니다.

     

  두 번째로는 계속해서 사회주의 자료를 대상으로 하여 단계적 발전론의 논리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1920년대 중·후반과 1930년대를 중심으로 살펴본 논문과 발표들을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역사문제연구소 주최 발표회와 저서 등에서 꾸준히 논의되었던 제국주의/식민지기-현대에 걸친 글로벌 발전사 혹은 후진성 연구에서의 발전개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때 발전은 경제적 수치와 통계를 통해 사회를 평가하고, 저발전된 국가와 인종, 후진적 주체 및 지역 등을 전제로 합니다. 주지하다시피 1920~30년대 사적유물론은 아시아·식민지 사회같은 이른바 후진사회에서의 혁명을 전망하고 민족해방운동의 중요 방략이자 실천이념으로 기능합니다. 다만, 한편으로 그러한 경제적 수치와 저발전, 정체(停滯)를 내포한 발전 개념을 내면화하는 데에도 기여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22년 역사문제연구에 게재한 1920년대 중·후반 식민지 조선의 사적 유물론전개 과정에서 발전정체의 관계성1930년대 역사발전론/정체론의 관계를 천착한 글을 발표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역사에서의 발전과 정체의 내면화에 따른 위계와 서열화가 근대성이자 식민성의 작용 중 하나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구체화하였습니다. 또한 개념과 담론이 당대 사회를 반영하는 측면뿐만 아니라, 반대로 사회에 영향을 주었던 측면을 어떻게 드러내고 서술할지 고민하는 개념의 사회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다른 연구자분들께 애정 어리기도, 따끔하기도 한 지적도 많이 받았고, 이후에 사학사를 어떻게 서술할 지에 대해 더욱 깊은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도 석사논문 이래로 중점적으로 보고 있던 일본의 사학사 자료를 추가적으로 확보하고, 젠더사 혹은 사회사에 대한 관심을 확장시키고자 일본 와세다대학교 일본사학과에 리서치 펠로우쉽을 신청, 20233월부터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와세다대뿐만 아니라 도쿄대, 도쿄외국어대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수업에 참여하거나, 조선사연구회 도쿄지회에서 참여 및 발표를 하는 등 활동도 하였습니다. 또한, 와세다 대학 도서관에 넘치는 사학사 자료의 일부와 사회주의 잡지 자료도 확보하였고 현재는 정리 중에 있습니다.

   

  마지막 세 번째 시기(2024~)20242월 초 한국으로 돌아온 현재와 박사논문 구상을 하고 있는 시기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1920~30년대 초반 백남운의 사적유물론에 중점을 두는 발표를 준비 중입니다. 특히 일본 내의 독일 철학과 사회과학 전통을 흡수한 백남운이, 하니고로(羽仁五郞) 등의 유물변증법을 활용하여 식민지 주체이자 문화민족으로서 조선인을 강조할 수 있었던 사상적 배경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두 번째로 문화와 역사 개념을 매개로 하여 조선의 문화사를 서술하려는 1930년대의 시도들을 1920년대 이래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고, 그것이 젠더적·민족적 위계성을 가진 기획이었다는 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와 같은 과학적역사 담론의 문화·역사주의는 문화적 민족을 창출하기 위해 식민지의 조선인들이 활용했다고 여겨지는 인본주의 전략에서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석사논문과 기존 발표들의 연장선에서 식민지 시기 조선의 역사-발전 논리의 구성에 천착한 박사 논문을 잠정적(?)으로 구상 중입니다. 특히, 식민지 시기 초기 진화론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재평가하고, 그것이 다시 유물/변증법으로 전환 혹은 길항하는 과정을 다루고자 합니다. 이때 쟁점은 결국 제국 일본의 식민사학과 한국 근대사학과의 관계를 어떻게 배치할지, 또 사학 사상을 어떻게 자기화하였는지를 수용자의 입장에서 어떤 사상적·내재적 맥락이 있었는지입니다. 또 하나의 쟁점은 식민지 조선의 역사-발전논리의 구성에 집중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동시에 조선의 내외부에 정체(停滯)와 후진(後進)적인 주체, 과거, 지역 등을 구성하거나 서열화하는 과정은 아니었는지, 사학사상사의 이른바 사각(死角)’은 어떻게 서술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새삼스럽게 돌아보자면 2019년 박사과정에 입학하면서 제가 느낀 감정은 복잡했습니다. 계속 공부를 할 수 있을지, 박사과정에 들어올 자격은 있는지 등등의 질문을 계속해서 자문했던 것이죠. 당시에는 나름 길었던 석사논문 집필 과정에서 구상한 주제를 딱 3개만 발표해보고, 이후에 연구자의 길을 갈 수 있을지 없을지 판단해보자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다시 뒤돌아보면 몇 편의 발표에서 느끼는 보람과 수고를 돌아보며 허락되는 알량한 자부심이, 한편으로는 한 줌도 안 되는 연구들 때문에 가지는 오만이나 기존 논지만을 고집하려는 아집과 안주로 이어지지 않을까 두렵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 다시 2019년을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제 생각이 틀릴 수 있고 그걸 인정하고 수정할 용기만 있다면, 말 그대로 그냥 하고 싶은 연구를 해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