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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재] 나는 OOO 연구자 입니다 : 건강을 연구하기 (강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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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4-03-29 조회수 : 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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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을 연구하기

- 역사문제연구소 신임연구원 발표회 <나는 OOO 연구자입니다>

 

 

강재구(역사문제연구소)

 

주제 정하기

 

  “뭐 공부하세요?”, “무슨 주제 하시나요?” 대학원에 진학한 후로 자주 받는 질문이다. 아직도 제 분야를 찾지 못한 것일까, 어려운 질문이다. 상황에 따라, 그리고 상대에 따라 답변도 자주 달라진다. “저는 한국 현대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라는 가장 일반적인 답변을 하거나, “해방 이후 한국 의료사를 보고 있습니다라며 조금은 더 자세히 주제를 설명하기도 한다. 혹은 농촌의료니, 예방의학이니 하는 키워드들을 더 언급하기도 한다. 많은 경우 더 큰 질문들이 뒤따른다. “그러면 박사논문 주제는 뭔가요?”, “왜 의료사를 선택하셨나요?” 이쯤 되면 본격적인 임전 태세에 돌입한다. 나는 의료를 통해 한국 사회를 보고 싶은 거라고, 의학적 발전보다는 인간과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주제를 정했다고, 우리 모두 의료와 밀접한 삶을 살고 있기에 인간과 사회를 이해하기에 좋은 주제라고 생각한다며 간신히 대답한다. 그런데 짜임새가 없다. , 좀 더 잘 설명할걸, 매번 후회가 남는다. 그런데 이번에 역사문제연구소에서 연구 주제를 발표하게 되었다. 열성적인 연구소 입소(?) 동기들은 나는 OOO 연구자입니다라는 주제로 모두가 발표하자는데 전원 찬성했다. 열정 넘치는 동기들 덕분에, 이번 기회에 정리를 해보기로 했다. 내가 지금 왜 세계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문서들을 보고 있었는지 말이다. 가끔은, 잠깐 멈춰서 정리하지 않으면 내가 왜 여기에 서 있는지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

  처음 대학원에 진학할 당시에는 한국 사회, 공동체에 대해 이해하고 싶었다. 우리는 왜 지금처럼 살고 있을까. 질문은 점차 한국사회가 사회적 문제들을 다루는 방식은 어떻게 형성되었을까?’로 변해갔다. 길어야 100년 남짓한 짧은 인생, 행복하게 살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게 만드는 문제들이 많다. 우리의 충만한 삶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적 문제들을 이해하고, 성찰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그렇게 한국사회에 접근하기 위해 선택한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주제가 어그러졌을 때, 지도교수님은 의료사를 권했다. 한국사회에서 의료에 투영되는 공적·사회적 의미들이 내 문제의식과 연결될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마침 코로나 판데믹이 우리의 삶을 이전과 다르게 바꿔나가고 있었고, 의료에 있어서 국가와 공공의 역할에 대한 고민들이 사회적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 석사논문 주제는 관할구역 주민의 건강을 관리하는 국가기관인 보건소가 되었다.

  보건소와 관계된 사료들을 읽어나가며 건강이 중요한 역사 연구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두가 생각하는 건강의 내용이야(선행되어야 할 중요한 연구 주제다) 시간과 공간에 따라, 또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기 위해 건강을 추구한다. 건강은 우리 삶에 밀접한 문제다. 또한 공공의료에 대한 논의들에서 볼 수 있듯, 혹은 가깝게 지방의료 붕괴나 의사증원 문제에서 볼 수 있듯, 건강 문제는 개인 차원을 넘어 중요한 사회적 문제로 여겨진다. 내가 건강을 연구하려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이것이 중요한 현실사회의 문제라는데 있다. 다른 한편으로 건강은 확장성 있는, 흥미로운 연구주제다. 건강은 개인적 위생 실천부터 공중보건까지, 개인과 국가, 사회가 얽혀 있다. 또한 의과학적 지식과 사회문화적 맥락이 얽힌 주제라는 점에서 과학적·인문사회학적 연구주제로서의 성격도 갖고 있다. 건강에 영향을 끼치는 요소로서 환경까지 시야를 넓혀볼 수 있으니, 확장성 있는 주제라고 할 수 있겠다.

 

 

보건소에서 국제개발원조로

 

  석사논문에서 나의 문제의식은 한국사회가 건강을 관리하는 방식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형성되었을까?’라는 질문으로 구체화되었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보건소는 적절한 소재로 보였다. 전국에는 약 1,600여 개 보건소와 보건지소가 있다. 적지 않은 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가 건강을 관리하는 주된 방식은 민간 병의원을 통한 치료다. 필자 역시 30년 조금 넘게 살아오면서 보건소를 방문한 일이라고는 백신을 맞거나 아르바이트에 지원하기 위해 보건증을 끊으러 간 정도뿐이었다. 한국에서 가장 큰 국가 보건의료조직인 보건소체계는 왜 주된 건강관리의 수단이 되지 못했을까? 나는 해방 이후 보건소 체계의 형성과정을 통해 한국사회의 건강관리 방식이 형성되는 한 양상을 규명해보자고 생각했다.

  보건소 체계 형성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징은 두 가지였다. 첫째, 경제개발이 모든 이슈를 뒤덮었다. 국가에게 건강문제는 부차적이었다. 비록 무의촌(無醫村)은 항상 사회적 문제로 논의되었지만, 재건을 해야하는, 경제발전을 해야하는 한국 정부에게 후순위의 문제였다. 전염병관리를 넘어서는 적극적인 수준의 행위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고, 생산력 증대를 위해 국민의 건강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모습은 적어도 60년대까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둘째, 그러다보니 당대 다른 분야에 비해 정부의 역할이 크지 않았다. 비록 쿠데타 이후 무의촌 문제 해결을 위해 의사들이 동원되었지만, 재정적 투입이 동반되지 않았고, 정책 자체도 3년 만에 폐지되었다. 정부만큼이나 의료계와 외국 원조기관들은 중요한 행위자였다.

  이런 모습은 재정투입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한국정부의 전체 예산 중 보건의료분야 예산은 1970년대까지도 1% 내외를 유지했다. 1962WHO 서태평양지역사무소의 한 보고서는 당시 해당 지역 국가들의 전체 예산 중 보건분야 예산을 정리했는데, 여기에 제시된 11개 국가 중 가장 낮은 예산을 투입하는 국가는 한국이었다. 차이는 상당했다. 사모아가 14%로 최대치였고, 피지 13.5%, 말레이시아 12%, 일본 11.7%, …… 필리핀 7.8%, 라오스 6.64%, 베트남 4%에 이어 한국은 1.54%였다(참고로 2024년은 약 2.86%). 보건분야가 통치를 위한 근대국가의 기본적 역할이라고 전제한다면, 어떻게 보건분야에 대한 최소한의 투자 속에서 국가 운영이 가능했을까? 정말 한국이라는 국가는 완전히 보건분야를 포기한 것이었을까?

  이에 대한 실마리가 일정 부분 국제개발원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뒤인 1963WHO는 한국에서 지방보건, 기생충·한센병·말라리아 관련 사업, 보건행정, 보건조사, 결핵 등을 포함하여 총 9개의 사업을 진행 중에 있었다. 미국 역시 국제개발처를 통해 환경위생, 영양, 전염병 관리, 간호 및 의학교육에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스칸디나비아 사절단, UNICEF, FAO 등이 한국에서 보건의료분야 원조를 수행 중에 있었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국제보건원조는 건강에 대한 원조당국의 시각과 연결되어 있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근대 서구 사회에서 건강은 발전의 기초였다. 2차 세계대전기 미 육군 예방의학국장을 거쳐 전후 하버드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로 활동하며 미국의 대외보건원조에 깊게 관여한 제임스 시몬스(James Stevens Simmons)1943건강하지 않은 시민들의 집단은 번영할 수 없으며, 국가 간 경제적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언급은 건강과 개발/발전의 관계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 건강은 안보(Security)의 기초로도 여겨졌다. 한국전쟁 중 한미재단(The American-Korean Foundation)은 한 보고서에서 한국 보건의료상황의 심각성을 지적하면서 공산주의는 가난, 질병, 무지에서 흥성하듯, 적절한 보건서비스는 한국의 군사, 경제, 사회, 정치적 안전에 필수적(fundamental)’이라고 강조했다. 요컨대 국민의 나쁜 건강 상태는 공산주의의 침투 가능성을 높이는 한 요소라는 지적이다. 이처럼 국제원조 당국에게 건강-개발-안보는 연결된 것으로서 이해되었고, 냉전기 원조의 핵심 중 하나로 중요시되었다.

  국제개발원조의 다양한 보건사업들은, 원조 기관들이 의사, 한국정부와 함께 한국 건강관리체계를 만들어나간 핵심 행위자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나아가, 이러한 원조는 한국정부가 보건 분야 투자를 최소화하면서 발전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통치 분담의 역할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정부, 의료계와 함께, 국제개발을 포함한 복합적 결과물로서 오늘날 한국의 건강관리체계 형성과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지금은 개발과 건강의 관계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국제개발과 건강이 박사논문의 주제가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워낙 마음이 갈대 같기도 하고, 충분히 사료를 검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자료들은 많이 확보할 수 있었는데, WHO 아카이브가 소장한 한국 프로그램 관련 문서들이다. 지금은 우선 WHO의 본격적인 한국 지방보건원조 프로그램인 K-0025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1963년에 시작된 이 사업은 1980년대까지 지속되었다는 점에서, 한국에 대한 WHO의 원조를 이해하기 위해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주로 건강관리체계의 형성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앞으로는 관심사를 더욱 확장해나가고 싶은 마음이다. 치열하게 고민하면, 좋은 주제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때는 명확히, 구체적으로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는 OOO 연구자입니다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