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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비 내리던 날, 인왕과 백악의 사이 1 - 노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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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4-08-13 조회수 : 1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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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4년 7월 28일. 비가 그치니 여름이다. 우편물도 찾을 겸 오후에 학과 조교실에 들렀다. 강사 사물함에서 우편물을 꺼내는데 마침 ○○○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 노란색 서류파일과 함께. 그래, 월례업무구나. 대충 상황을 알겠다. 바쁘니? 아니, 바쁘지 않아. 중간에 某조교도 합석하고.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어 다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첫강의, 콜라캔 수집, 그런데 어쩌다 미니홈피로 화제가 옮겨지면서 이야기가 인왕산 답사로 번졌다. 인왕산 답사라고? 그랬다. 보름 전 대학원 공부모임에서 인왕산 답사를 떠난 적이 있었다. 이 때 받은 감흥을 기억 저편으로 보내기 아쉬워 조금씩 조금씩 미니홈피에 메모를 해 두었는데 이것을 슬그머니 눈여겨 보았나 보다.

2.
사실을 말하자면 인왕산의 중심이 아니라 주변을 다녀온 것인데 이를 인왕산 답사라고 해도 좋을지. 생각하면 윤행임 시리즈가 거의 끝나가던 6월의 어느 날, 음료수를 마시며 담소하다가, 문득 강독을 마치고 기념 답사를 다녀오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던 것 같다. 좋은 생각, 장소는? 인왕산이 불쑥 튀어나왔다. 인왕산 답사라, 나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워낙 인왕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으니 - 인왕산 호랑이가 유명했다는 것, 인왕산 주위에 중인시사가 번영했다는 것, 그리고 인왕산과 일은을 기념해 왕희인이 있다는 것, 그리고 또 무엇이 있을까? - 사전 준비를 하고 떠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팀을 나누어 인왕산의 현재과 과거를 각각 조사하고 검토하기로 하였다. 처음에는 인왕산 답사의 초점을 옛사람의 인왕산 산행의 추체험에 두었지만 단기간에 인왕산 유산록(遊山錄)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17세기 전반 김상헌의 인왕산 산행과 20세기 전반 김동인의 인왕산 산행을 급한 대로 구할 수 있었다.

3.
김상헌이 인왕산에 오른 것은 1614년 가을. 그의 모친이 안질이 생겼는데 인왕산의 샘물로 병자가 씻으면 효험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날을 잡아 길을 떠난 것이다. 그는 공극봉과 필운봉 사이에 집을 정해서 거처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 편히 앉거나 누워서도 인왕산을 볼 수 있었다. 대체로 한국의 전통적인 사대부의 반가 건축이 그렇지만 집안에 인근의 명산의 경관을 담아올 수 있는 이상 굳이 동네 산행을 떠날 필요는 없었다. 여기서 그의 산행 코스를 보면 인왕동에 들어가 무너진 소세양의 옛집을 보았고, 다시 깎아지른 절벽과 푸른 언덕을 거쳐 공극봉의 중턱에 와서 인왕사 옛터의 기와들을 주웠다. 다시 남봉에 오른 그는 도성을 둘러본다. 유약한 아이를 어루만지는 형상의 남산, 남산에는 더 이상 인걸이 누워있지 않다. 폐허로 남은 경복궁, 경복궁을 폐허로 만든 간신의 죄는 죽임으로도 사할 수 없을 것이다. 고기비늘처럼 빼곡한 여염집, 그 곳에서 전후(戰後) 베이비 붐이 일었지만 나라의 인재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문득 수심에 젖는다. 45년만에 처음으로 오른 산행의 개인사적 의미는 수심에 가리워져 보이지 않는다.

4.
그렇구나. 김상헌의 유기(遊記)에서 인왕산 산행의 중요한 포인트를 얻었다. 서울을 내려다보면서 역사를 회고하며 수심에 젖어보는 것이다. 지금도 인왕산에 올랐던 사람들은 인왕산에 올라 서울을 내려다보는 전망을 손꼽는다. 산행의 포인트는 예나 지금이나 특별히 다를 것이 없겠지. 하지만, 인왕산을 감상하는 법이 한가지 더 있다. 김동인의 단편 <광화사(狂畵師)>는 인왕산을 배경으로 하는 단편소설인데 1935년 12월 <<野談>> 제1호에 발표되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하느라 한번쯤은 읽어보았을 친근한 소설이지만 이 소설의 배경이 인왕산이라는 사실은 부끄럽게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5.
「광화사」에는 2개의 인왕산이 존재한다. 하나는 작중화자 여(余)의 인왕산이고 다른 하나는 작중인물 솔거의 인왕산이다. 여(余)는 인왕산에 올라 경성 시가지를 내려다본다. “오늘날의 한 산보객의 자리에서 보자면 서울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미도(美都)일 것이다. 도회에 거주하며 식후의 산보로서 유수(幽邃)한 심산에 들어갈 수 있다 하는 점으로 보아서 서울에 비길 도회가 세계에 어디 다시 있으랴. 회흑색(灰黑色)의 지붕 아래 고요히 누워 있는 5백년의 도시를 눈 아래 굽어보는 여의 사위(四圍)에는 온갖 고산식물이 난성(亂盛)하고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와 눈 아래 날아드는 기조(奇鳥)들은 완전히 여로 하여금 등산객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한마디로 인왕산은 아름다운 자연이다. 아니, 단순히 아름다운 자연 이상의 깊은 맛을 간직하고 있는 ‘심산’이다. 400년 전의 김상헌은 인왕산에 올라 도성을 바라보며 역사를 생각했다. 그리고, 수심에 젖었다. 그러나, 400년 후의 김동인은 인왕산에 올라 경성을 바라보며 자연을 탐미한다. 그리고, 유수미(幽邃美)를 만끽한다. 그 유수미 안에 유폐된 솔거의 광기(狂氣)를 상상한다. 나이 50이 넘도록 너무 못생겨 백악산의 숲속에서 숨어살던 솔거의 비극과 그 솔거가 살던 시대 세종조.

6.
김동인의 소설에서 인왕산 산행의 또다른 포인트를 얻었다. 인왕산의 그윽한 산수를 천천히 관물(觀物)하면서 역사가 지워진 풍경, 역사가 유폐된 광기를 읽어내는 것이다. 북해도의 주민과 역사가 지워지는 식민의 과정은 북해도의 풍경화가 등장하는 과정과 일치한다고 들었다. 김동인의 인왕산에서 인왕산의 풍속도는 지워지고 없다. 유수미가 넘치는 철저한 풍경화가 등장할 뿐. 소설 제인에어에 등장하는 로체스터 부인은 손필드의 저택에 유폐되어 광기의 웃음을 발산한다고 들었다. 식민지 서인도제도가 영국의 저택에 유폐되어 광기를 강요당한 것이다. 김동인의 인왕산은 제국의 경성에서 추방된 식민지 조선이 유폐된 공간이다. 그 곳에 솔거가 있고 세종조가 있고 광기의 환타지가 있다. 이 이상은 생각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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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 서울대 강사, 한국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