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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알렉산드리아 페드로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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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4-05-06 조회수 : 11,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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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알렉산드리아 페드로브나(女,이하 김알렉산드리아)는 연해주에서 한인2세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함북 경흥 사람인데 1869년에 러시아로 이주하였고
철도건설공사장의 통역원으로 일했었다고 한다.
이후 부모를 모두 여읜 그녀는 어버지의 폴란드 친구 스탄케비치의 후원으로
성장하였고 스탄케비치의 아들과 결혼하였다.

니콜라스크사범학교에 진학하면서 러시아 짜르전제에 반대하는 러시아 혁명가들의
저작에 심취하였다. 1914년 볼세비키(러시아사회민주당) 예카체린부르크위원회에
가담하고 1917년 정식 당원이 되었다.

그가 유명해 진 것은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의 소송대리인이 되면서 부터이다.
1917년 러시아 2월 혁명이 일어난 직후 페름스크 대공장의 조선인 노동자들의
소송대리인이 되어 공장 책임자의 불법을 성토하는 등의 활동으로 소송을 승리로
이끌었고, 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은 물론 수만원의 손해배상까지 받아냈다. 이
일로 그녀는 조선인, 중국인, 러시아인 노동자들 사이에 널리 명성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러시아 극동지방에서의 볼세비키 조직, 선전활동에 종사하면서(아마 그녀는
러시아 한인 중 최초로 볼세비키 고위층을 차지한 사람이라고 생각된다.당시
그녀는 극동인민위원회 외교부장 이였다고 한다) 이동휘와 함께 한인사회당을
조직하게 되었다.

그러나 백위군이 극동러시아를 장악하게 되면서 체포되어 우수리강변의 '죽음의
골짜기'에서 총살당하였다.

1967년 11월 하바로프스크에 그녀의 기념관이 건립되었으며, 처형장에는 추모탑이
건립되었다.

<사진설명: 김알렉산드리아와 남편. 남편과는 두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이후
남편이 술과 도박에 빠지게 되어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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