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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제도의 확립과 식민지 권력의 일상침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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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04-06-07 조회수 : 1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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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에서 편집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일상생활](혜안, 2004.4)에 수록된 논문입니다.

맺음말만 옮겼습니다.

한국의 치안기구는 1894년 갑오개혁을 계기로 근대적 외피의 경찰로 탈바꿈하였다. 한국의 경찰은 조직과 직무에서 서서히 근대적 성격을 구비해가고 있었지만, 수도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민중들이 거주하는 지방에까지 그 영역을 충분히 확장하고 있지 못하였다. 경찰력의 지방 침투는 식민지 경영의 기초를 닦으려는 일본에 의해 본격화되어, 고문경찰제도를 기반으로 지방관에게서 경찰권․재판권․징세권을 분리해냈다. 1910년 한국을 강점하던 해에 경찰제도는 헌병경찰제도로 통합되었지만 경찰의 지방 장악력은 1910년대 말까지 60% 내외에 불과했다. 행정의 최말단인 면단위까지 모든 경찰력이 배치된 것은 1919년 3․1운동 이후에나 이루어졌다. 꾸준히 개선되기는 했지만 순사 1인당 담당해야 할 면적과 인구는, 순사1인이 일상적 업무를 추진하면서 처리하기에는 과중했다.
근대 일본경찰의 특징은 민중의 일상적 감시와 규제에 기반한 행정경찰의 강조였다. 이 특징은 식민지 한국에도 이식되었다. 한국 경찰의 소관업무는 생로병사, 의식주 등 인간 생활의 모든 영역에 걸쳐 있었다. 또한 공권력의 집행을 경찰력이 보완하는 조장행정업무도 결코 적지 않았다. 경찰의 광범한 소관업무는  민중에게 조선총독부로 대표되는 ‘관청’과 경찰을 동일하게 인식하도록 하였으며, 민중의 일상생활에 깊이 침투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경찰의 광범한 업무는 ‘경찰범처벌규칙’, ‘범죄즉결령’ 등 법률에 의해 권한을 부여받았다. 조장행정을 비롯한 경찰의 광범한 소관업무는 경찰의 활동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으로 되었지만 한편으로 경찰이 ‘면의 총독’으로 행세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했다.    
일본에서도 그러했지만 일제가 의도한 근대적 질서를 강제해 나가기 위해서는 그것들을 제대로 이해하고 집행에 옮길 수 있는 수준 있는 경찰을 필요로 했다. 비록 시험을 통해 채용하고 일정 기간의 교습을 거쳤지만 조선총독부 순사의 자질은 여러모로 미흡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식민지 한국은 거대한 감옥이나 병영같이 억압적이었지만 재소자나 병사 개개인을 통제하듯이 민중들을 규율화 할 수 없었다. 식민지의 경찰은 민중의 일상생활의 모든 영역을 감시하고 일상의 모든 행위를 규제할 수 있는 권한과 직무를 부여받았지만, 그것을 통제할 능력을 갖지 못했다. 새로운 질서의 창출은 민중의 일상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각되고 스스로 필요성을 자각하면서 내면화될 것이었지만, 일제는 종래의 질서를 해체하고 일방적으로 강요할 뿐이었다. 물론 민중에게 충분히 계도할 것을 누누히 강조하였으나 그것은 슬로건에 지나지 않았다. 따라서 마땅히 계몽되고 습득되어야 했을 근대의 규율마저도 민중들은 근대와 그것을 강제한 일제를 동일시하였고, 일제를 거부하면서 근대까지 거부하는 모습을 보였다. 곧 일제 강점 하에서 근대의 규율이 강제되었지만 내면화되지 못하였고, 나아가 근대의 지체현상이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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