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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6.28~7.20 특별기획 "역사, 평화를 이야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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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7-07-08 조회수 : 3,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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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7.6. <학술토론회> ‘끝나지 않은 전쟁 60년, 평화의 길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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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토론회> ‘끝나지 않은 전쟁 60년, 평화의 길을 묻다' 행사소식을 한겨레에서 전해주셨습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religion/5947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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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없는세상의 용석, 길수 님과 함께한 대담 장면입니다.

아래는 평화기행에 참여한 두 분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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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의 전쟁과 평화

 

- 김수지 (미국 럿거스대학 교수)

 

"628일부터 72일까지 진행된 평화기행은 정말 살인적이었다."

 

첫 이틀 동안 기행에 참여한 김보근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의 말이다.

(기행의 목적 등 자세한 내용은 한겨례신문 참조: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95815.html)

 

단 이틀을 겪고 그런 말이 나올 정도니 닷새 내내 함께 한, 외국에서 온 대다수 우리들은 오죽했겠는가.

 

하지만 일정만 살인적이었던 게 아니다. 아마도 이말에 담긴 여러 측면에서 그런 표현이 떠올랐을 것이다. 기행의 목적이 한국전쟁의 과거와 현재를 좀 더 깊숙히 경험하는데 있었던 만큼 가는 곳 마다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죽음, 즉 국가폭력에 의한 살인은 지극히 일반적이었다. 특히 거창의 박산골 골짜기에서 듣는 전쟁 당시의 잔인함은 주변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환경과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골짜기에는 싸늘한 기운이 돌았고 어떻게 어린아이들 조차 그렇게 무참히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수 있었는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뿐만은 아니다. 적을 사람이 아닌 괴물로 상정한 냉전과 맞물린 한국전쟁은 아직도 정전협정에 명기된 평화협정으로 종결되지 못했고 그럼으로 인해서 한반도는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다. 오늘날 까지도 간첩, 좌익사범 등을 신고하라는 안내방송은 지하철에서 마저 일상으로 속속들이 파고들어 있다. 그 상냥한 목소리는 겉으로의 아름다움과는 대조되는 거창처럼 무시무시함을 품고 있다. 미국에서도 역시 수상한 물건을 보면 신고하라는 방송이나 포스터는 종 종 볼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다르다. ‘간첩은 어떻게 선별할 것이며, ‘좌익사범을 색출하겠다는 공식은 아예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조차 포기하겠다는 말이다.

 

그렇게 일상속에서 전쟁 아닌 전쟁이 지속되고 있는 반면 평화를 위한 운동 또한 일상적으로 축척 되가고 있다. 평택 대추리, 제주 강정마을 등에서 꾸준히 국가폭력에 맞서 평화운동을 하는 활동가들과 주민들을 보며 영감을 얻었고 어둠속에서도 언제나 희망과 사랑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강정에서 오랜 기간 운동을 하다 지금은 곧 아기를 낳을 어느 활동가가 마지막 날 눈물을 흘리며 말했듯이, “힘든 운동을 하면서도 생명하나는 건졌다그래서 살인적인 기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탈 없이 모두 열심히 배우고 느낄 수 있었을지 모른다.

 

기행 마지막 날, 작별 인사를 마치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부끄러운 마음에 썬글라스를 끼고 손수건으로 울음소리를 막으려 하니 눈물은 더 나온다. 버스 차창으로 지나가는 제주도 풍경은 아름답다 못해 서글프다. 강화도, 노근리, 거창, 광주, 제주도, 그리고 그외 이름 모를 곳의 한맺힌 혼들이 창밖에서 손짓하는 듯 하다:

 

깊은 산 오솔길옆 작으마한 연못엔

지금은 더러운 물만 고이고 아무것도 살지 않지만

먼옛날 이 연못엔 예쁜 붕어 두마리

살고있었다고 전해지지요 깊은산 작은 연못” (김민기, “작은연못중에서)

 

하루 빨리 한반도가 붕어들이 사이좋게 사는 진정한 평화의 연못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기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며 다짐한다. 미국사회가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이 아닌 현재진행중인 전쟁으로 이해하고 그런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평화협정의 필요성을 깨달을 수 있도록 더더욱 열심히 공부하고, 가르치고, 활동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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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정전60주년 특별기획] 역사, 평화를 이야기하다. 76<학술토론회> 끝나지 않은 전쟁 60, 평화의 길을 묻다. 진행중. 본 글은 이날 행사에 참여하셨던 장래건 님의 후기입니다. 본 사진의 어딘가에 본 후기의 저자도 계십니다.

 

  

진정한 평화를 위하여

 

 - 장래건

 

국민 남성이라면 반드시 병역의 의무를 져야만 하는 대한민국에서 안보는 아주 중요하고 민감한 문제이다.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어 있는 현실에서 사람들은 강력한 안보만이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종종 어떤 사람들은 미국의 군대가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을 쌍수 들어 환영하기도 하는 것이리라. 군부대에서 거안사위(居安思危)’와 같은 문구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 가능하다.

 

 

그러나 강력한 안보가 평화를 보장해줄 것이라는 말은 사실 한국 정부가 국민에게 행하는 심각한 사기행위. 오히려 안보의식이 고취되고 안보가 강화될수록 남북의 대립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실험이나 군사적 도발이 이루어지는 배경을 살펴보면 그것은 북한의 단독적인 행위가 아니라, 남한이나 미국과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성을 가진다. 서재정의 분석에 따르면, 북한은 제네바 협정 이후 핵을 동결하였다. 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미국은 북한에 선제타격을 하겠다는 협박과 함께 경제 제재를 가함으로써 북한을 압박했고, 1차 핵실험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 2, 3차 핵실험 역시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 제재 및 군사적 억지(抑止)와 한국 정부의 동참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요컨대 한반도에서는 안보를 강화할수록 평화에 가까워지기보다는 그것을 위협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 한반도에서는 안보와 평화가 공립할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남과 북이 적대적 공범관계’, 혹은 적대적 공존관계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남한과 북한이 대내적으로 체제를 유지하는 데 가장 유용한 방법은 상대를 타자화하여 배척하고, 국내의 국민들을 안보라는 이름 아래 결속시키는 것이었다. 지금껏 남한은 반공이라는 기치 아래 빨갱이’, ‘간첩등의 이름으로, 북한은 자주라는 기치 아래 간첩’, ‘반동등의 이름으로 반체제 운동을 진압해왔다. 그런 점에서 남한과 북한은 상대를 배척하고 타자화하면서 같은 전략을 공유하는 적대적 공범관계에 놓여있었던 셈이다. 앞서 서술한 것처럼 평화와 안보가 공존할 수 없는 것은 안보라는 용어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진정한 평화는 안보와 상관없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강력한 군사력 위에서 이루어지는 평화는 사실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계평화라고 생각하는 것은 미국이라는 패권국가를 중심으로 한 세계질서 속에서 미국의 힘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다. 한반도의 문제에만 국한하여 보더라도 남한과 북한은 상호 간의 힘에 의해 억지로 유지되는 평화이다. 이런 평화는 힘의 질서와 균형이 깨지는 순간 파괴될 수밖에 없다. 힘의 질서와 균형이 깨어질 것을 두려워하면서 국가를 병영화하는 병영국가가 평화로운 국가체제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평화의 사전적 의미는 전쟁, 분쟁 또는 일체의 갈등이 없이 평온한 상태를 말한다. 진정으로 평화를 추구하는 이라면, 안보 이데올로기가 어떤 메커니즘 속에서 작동하고 있으며, 그것의 실상이 무엇인지 파악해야 한다. 비록 군비 감축이 우리의 현실 속에서 당장 실현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안보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상대를 타자화 하고 내부를 결속하는 메커니즘이라도 포기해야만 한다. 오늘날 한국의 군비는 반공을 기초로 한 안보 관념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 글은 본래 저자의 네이버 블로그 會心亭( http://blog.naver.com/PostList.nhn?blogId=laigun)에 게재된 것을 저자에게 동의를 얻어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