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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9. 26. 비정기 팝업 세미나: [시즌 1] ‘베네딕트 앤더슨 다시 읽기’ 후기 / 정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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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19-12-16 조회수 : 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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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비정기 팝업 세미나 상상된 공동체(2018) 읽기 모임 후기

 

 

926일 저녁 7. 가볍게 구성되었지만 늘 진지하게 진행되는 엔더슨 팝업세미나가 열렸다. 참석한 사람들의 인적 구성은 다양했다. 전공도 달랐고, 직업도 달랐다. 하지만 모인 사람들은 모두 2003년 판 상상의 공동체에 짙은 향수를 느끼고 있었다. 붉은 악마가 그려진 강렬한 표지에 매료되었던 기억들을 쏟아내며 한바탕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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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더슨은 상상된 공동체를 통해 크게 크리올민족주의, 일상어 민족주의, 관제 민족주의, 애국주의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민족주의를 설명했다. 세미나 참가자들은 각자 이해한 내용을 바탕으로 토론하며 각각 앤더슨의 민족주의 개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정리해 나갔다.

첫 번째는 크리올 민족주의다. 크리올은 식민지에서는 본국의 언어와 문물을 받아들인 관료였으나, 토착민이라는 굴레에 속박된 존재였다. 크리올은 하급 관리로서 행정구역을 순례하며 네트워크를 형성했었는데, 의도치 않게 아메리카 대륙 특유의 다원성 안에서 우리 아메리카라는 민족 관념을 구성하는 계기가 되었고,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어 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크리올 민족주의는 1810년 무렵 인쇄술과 문자를 통해 유럽사회 전역에 퍼져나갔다. 유럽에서 종교와 왕권을 바탕으로 권력을 유지했던 과거의 지배층은 대중을 껴안을 수 있는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야 했다. 그들은 인민 민족주의를 보수적인 정책으로 각색하여 관제 민족주의로 탈바꿈 했고, 제국주의의 이름으로 식민영토에 다시 전파했다. 관제 민족주의는 산업 자본주의의 성과를 등에 업고 민족주의적으로 보이는 인종주의를 만들어 적대를 키우거나,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애국과 희생을 이끌어냈다.

 

마지막으로 식민지에서의 민족주의다. 식민지에는 제국의 관제 민족주의와 함께 중앙집권적으로 표준화된 행정 제도와 교육 제도도 함께 이식되었다. 하지만 제국의 구상과는 달리 국가를 잃은 식민지의 대중은 과거의 기억에서 동포애를 소환하고 새로운 공동체 그리고 독립을 상상할 수 있는 희망을 찾았다. 바로 이 지점이 저자가 가장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18~20세기 유럽, 라틴아메리카, 아시아를 넘나드는 저자의 서술방식을 온전히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었기에 모두들 괜한 동포애가 생기는 시간이었다. 함께 토론하며 조금씩 정리하다보니 책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곧 이어 새로운 논의로 후끈 달아올랐다. 앤더슨의 민족주의 개념을 한국사에서는 어떻게 접목시킬 수 있냐는 질문을 서로 쏟아냈기 때문이다. 세미나 이끔이는 자연스럽게 10장의 센서스, 지도, 박물관을 통해 논의할 수 있도록 대화를 유도해나갔다.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식민지 조선에서 앞서 다룬 민족주의의 모든 양상이 중첩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조선 총독부는 관제 민족주의의 형태로 식민지 조선에 침투해 들어왔다. 토지를 조사하고, 행정, 교육 시스템을 새로 구축했으며, 인종주의적 잣대를 들이대어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이어갔다. 조선인들은 이에 대항하며 19193.1운동, 19266.10만세 운동을 일으켰다.

 

앤더슨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조선의 상황은 관제 민족주의와 식민지 민족주의가 대립하는 형태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라틴아메리카와 동아시아지역의 민족주의와 동일선상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었다. 조선은 이미 수백 년 전 일본과의 전쟁을 경험했던 왕조 국가였다. 유교를 통치 이념을 삼았으며, 정치, 지방, 군사, 교육 등 사회제도가 형성되어 있었다.

 

상상된 공동체에서 주로 등장하는 식민지들은 대체로 부족 단위로 분산되어 있어 통일된 형태의 체계를 경험한 적이 없었던 곳들이었다. 이들 국가들이 관제 민족주의에 대항하며 새로운 전통을 저항적 민족주의의 기반으로 삼았다면, 조선의 경우는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왕조와 가문들의 기억은 어떻게 재생산되었을까?

1930년대의 상황을 이야기 하면서 논의는 한층 더 심화되었다. 조선 총독부는 1910년 이미 관료학자를 경주, 부여, 개성, 평양 등에 파견하여 조선의 민속과 문화를 조사했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총독부 박물관을 건립하여 조선의 문화적 자산을 관리했고, 제국의 시선에 부합하도록 조합했다. 1930년대에는 지역의 명승지를 개발하여 일본 제국의 훌륭한 문화적 자산으로 소개했다. 식민 사관 역시 마찬가지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에 항거하며 우리말과 우리역사를 되찾고자 저항했던 움직임도 분명히 존재했다. 그러나 주지의 사실이듯, 해방 직후 분단과 전쟁을 연이어 겪은 한국사회에서 식민사관과 왜곡된 한국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나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과연 상상된 공동체란 우리사회에서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한참 이야기가 진행되었지만, 의견이 쉽게 모여지지는 않았다. 답을 내리기는 힘든 주제인 것 같았다. 결국 화살은 앤더슨의 글쓰기 방식으로 돌아갔다. 인류학적인 글쓰기 방식에 익숙하지 않은 역사전공자들이 왈가왈부 할 것이 아니라는 자성적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19세기 아시아 국가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메이지 유신으로 근대화를 달성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앤더슨 특유의 우호적인 시선을 다들 조금씩은 느끼고 있었기에, 다음 세미나에서 읽게 될 세 깃발 아래에서더 확인해 보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상상된 공동체는 이미 고전이 된 책이어서, 오히려 더 멀어졌던 책이었다. 다 함께 읽어보자는 제의가 없었더라면, 쉽게 집어들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책을 읽으며, 그 동안 스스로 잘 못 알고 있던 부분들을 점검하고, 세미나 참가자 분들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생각의 폭을 확장시켜 나갈 수 있었다. 삼천포로 빠지지 않을 수 있도록 꼼꼼한 발제문을 준비해 주신 김진두, 김명재 선생님과, 팝업 세미나를 기획하고 이끌어주시는 백승덕 선생님께 감사드린다.

 

 

 

 

 

* 필자소개 : 한국사회의 문화재 형성과정과 그 함의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현대사를 공부하기 시작했고 석사논문으로 박정희 정부기 문화재 정책과 민속신앙을 발표했다. 현재는 전시기획자, 학예사로 일하고 있으며, 1950~60년대 한국 지역사회의 축제가 구성되는 과정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