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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 13-14 <전태일과 그의 시대> 심포지엄 참관기 _ 이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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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2020-12-30 조회수 :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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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제연구소 1960·70년대 연구반 주관

전태일 50주기 기념 학술회의 <전태일과 그의 시대> 참관기

 

새로운 전태일 서사의 등장을 기대하며

 

이준영(성균관대 사학과 박사과정. 한국현대사 전공)

 

 

전태일 열사의 기일은 노동절과 함께 한국노동운동이 기념하는 가장 중요한 날 중의 하나다. 51일 노동절기념대회가 세계 노동자들의 명절이라면, 1113일 전태일열사정신계승전국노동자대회는 한국 노동자들의 제사라고 할 수 있다. 명절과 제사라는 표현이 귀에 거슬릴 수 있지만 5월의 봄 바람 속에서 세계노동자들의 단결과 승리를 노래하는 메이데이대회와, 11월의 가을 서리 속에서 전태일의 죽음이라는 상징을 재현하는 전태일계승대회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장면을 연출해왔다.

 

분신(焚身)’이라는 비극적인 죽음의 형식은 전태일이라는 한 청년 봉제노동자를 한국노동운동의 상징으로 만들었다. 전태일의 분신은 그 직후, 충격적 죽음을 목도한 친구들의 비통함 토로와 지식인·대학생들의 반성 및 자책론으로 연결되었다. 이후 1970년대 중반에는 청계피복노조가 그의 추도식을 노동운동의 주요한 동력으로 삼았으며, 이 과정에서 전태일 정신이 하나의 서사의 형태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오늘날 노동운동이 형상화하는 전태일 이미지는 이러한 전사(前史)를 거쳐 1980년대 후반에 형성된 것이다.

 

분신 이후, 전태일의 상징화 과정은 그를 한국노동운동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고 전태일 정신을 노동운동의 동력으로 동원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전태일 정신이란,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을 수 있지만 대개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자기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휴머니즘, 둘째, 태일피복이라는 모범업체를 세우려 한 시도나 근로기준법 준수를 통해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활동에서 찾아볼 수 있는 실천의식, 셋째, 분신이라는 자기희생적 결단을 통해 절망의 벽에 도전한 저항정신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서사는 <전태일 평전>의 주요 골자를 이루는 것으로써, 이 책의 출간 이래 전태일의 이미지는 전태일 정신이라는 정형화된 서사 속에서 머무르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태일 정신이라는 표현 속에 담긴 내용은 전태일과 동시대를 살아온 1970년대 민주노조활동가든, 1980년대 학생운동을 거쳐 노동현장에 투신한 학출노동자든, 그 이후 전태일 정신계승을 부르짖은 조직화된 노동운동의 지도자든 간에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노동운동 내부의 전태일 서사는 민주화 이후 사회 전반의 일반적 인식으로 확산되었다. 전태일은 교과서 속의 인물로 격상되었으며, 급기야 그는 국가의 공적 의례의 영역인 보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전태일의 이미지가 대중적으로 정립되고, ‘전태일 정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확산된 것에 비해 실제로 전태일과 1960·70년대 노동·사회사에 대한 학술적 접근, 그 중에서도 역사학적 접근은 매우 부족한 감이 있었다. 50년 동안의 공백을 메우는 계기로서 이번 역사문제연구소 1960·70년대반의 학술회의 전태일과 그의 시대는 주목할 만한 학술행사였다.

 

이번 학술대회는 제1부와 제2부의 세션으로 이틀에 걸쳐 진행되었다. 1부가 대체로 전태일과 그의 노동운동에 대한 주제를 다루었다면, 2부는 보다 넓은 견지에서 전태일의 시대를 둘러싼 노동사·사회사 연구로 구성되었다. 그동안 전태일을 둘러싼 연구가 <전태일 평전>의 강력한 자장 속에서 형성된 서사를 따라 노동운동의 실천적 맥락에서 재구성되어 왔다면, 오늘날의 새로운 전태일 연구 경향은 기존의 서사를 새로운 맥락 위에 놓고 독해하거나 지배적 서사에 의해 지워진 기억을 복원하는 방향으로 진척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연구들은 노동영웅이라는 이미지 이면에 존재하는 전태일의 다양한 면모, 즉 이주민·글쓰는 청년·기독청년으로서의 망각된 정체성에 주목하여 인간 전태일이 지닌 다양한 면모를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태일의 삶과 투쟁은 더욱 입체적으로 그려지고 있으며, 그의 죽음이 갖는 의미는 더욱 풍부한 해석의 여지를 남기고 있다.

 

또한 새로운 연구들은 버스차장·미성년노동자·군기피자 등 전태일의 시대에 공존했지만 시야에서 사라진 다층적 주체들을 여러 방향에서 조명한다. 이러한 연구들은 전태일이 지닌 소수자 정체성과 연관된 주제로써, 그 문제의식은 1960·70년대 소외된 노동계층이 주요한 저항 동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 무엇이었는지로 집중되고 있다. 영세 봉제노동자 전태일이라는 개인 혹은 특정 노동자 계층에 초점을 맞춰 온 기존의 1960·70년대 노동·사회사의 맥락이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전태일의 시대를 산업사·환경사·공해사 등 더 넓은 시야에서 바라보고자 한 또다른 연구들은 기존에 주목받지 못한 분야에 천착함과 동시에 냉전과 동아시아 맥락이라는 보다 거시적인 틀을 통해 당대를 조망하고자 한다. 이 때 전태일과 1960·70년대의 다양한 주체들은 냉전·동아시아·한국이라는 특수한 공간에 위치한 세계사적 존재로서 새로운 의미를 부여 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새로운 전태일 연구 경향이 기존 연구의 한계로 지적되어 왔던 자료의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했다는 점이다. 이 때 자료의 문제란 일기나 수기 등 전태일의 개인 기록이나 청계피복노조 등 봉제노동운동에 한정된 자료, 즉 전태일기념관소장자료로 통칭되는 전태일과 직접 연관된 자료에 기반한 연구경향을 일컫는다. 새로운 연구들은 <전태일 평전>의 서사를 비틀어 보거나, 기념관 자료를 새롭게 읽는데 그치지 않고 전태일과 그의 시대를 보다 넓게 바라보기 위해 당대에 생산된 다양한 자료들을 동원했다는 점에서 연구의 지평을 확장하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전태일 연구는 기존의 정형화된 서사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전태일의 다양한 면모를 규명하고, 그와 공존했던 사회 하층의 망각된 주체를 복원함으로써 1960·70년대 노동·사회사의 보다 넓은 지평을 제시했다. 또한 그 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에서 전태일의 시대에 접근함으로써 구조적인 측면에서도 연구를 진척시켰다. 즉 새로운 연구는 전태일 서사를 풍부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복수의 토론자들이 지적했듯 전태일 연구의 현재성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학계가 함께 고민해야할 몫으로 남아있다. 기존의 전태일 서사가 한국노동운동의 실천적 맥락에서 제기된 것인 만큼, 새로운 연구 경향 역시 오늘날 끊임없이 환기되는 전태일이라는 상징에 보다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현재성은 새로운 전태일 연구가 현재의 학술장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 향후 연구의 진로를 모색해 나가는 데 중요한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전태일이 산화한 지 50년이 지난 오늘, 한국의 노동계는 전태일 3이라는 이름으로 5인 미만 사업장 근로기준법 적용, 특수고용·간접고용·프리랜서도 노동법상의 노동자로 인정, 중대기업처벌법 제정 등의 요구사항을 쟁취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그 정반대에는 전태일에 대한 극우세력의 공세가 자리하고 있다. 이는 오늘날 전태일이라는 상징이 변화하는 노동·정치환경 속에서 소환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형성해 나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번 학술회의를 계기로 하나의 분기를 이룬 새로운 전태일 서사가 전태일이라는 상징을 둘러싼 변화를 예민하게 감각하고 학술장의 울타리를 넘어 시민사회와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그 서사를 보다 다채롭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그럼으로써 매년 돌아오는 1113일의 의미가 단지 노동열사 전태일의 분신을 애도하고 추모하는 제사로서만이 아니라, 전태일과 그의 시대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공존하며 새로운 의미를 조직해 나가는 부활과 연대의 장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