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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걸어오신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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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0-04-14 조회수 : 4,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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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이 걸어오신 길


    “1986년은 내 인생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 해다. 하나는 역사문제연구소의 탄생이고, 또 하나는 내 딸 응소가 ‘쉰둥이’로 태어난 것이다. 역문연이 나의 학문 활동에 커다란 전기가 됐을뿐더러 나를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는 요시찰 인물로 만들어주었다면, 늦둥이 딸은 가정생활에 재미와 활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역사를 쓰다』, 한겨레출판, 2011, 191쪽)


    1936년 
    •8월 대구 비산동에서 주역의 대가인 아버지 야산 이달 선생과 박순금 님의 넷째 아들로 태어남(호적상으로는 1937년). 태어날 때부터 허약한 체질로 병치레가 잦고 종기와 학질 등에 시달림.

    1942년
     •부친을 따라 전북 익산 고현정(묵동)으로 이사. 부친 밑에서 천자문을 배우기 시작.

    1945년
     •10월 충남 논산군 수락리와 대둔산 석천암으로 이사하여 부친에게 한문을 배움.

    1948년
     •초봄 충남 서산군 남면 달산리(현재 태안군)로 이사.

    1949년
     •초봄 안면도 개락금 지역으로 이사.

    1951년
     •부여군 은산면으로 이사.
     •초겨울 학교에 다니고 싶어 부친 몰래 가출하여 성주 외가와 고령 이모집에서 생활.

    1952년 
    •늦봄 고아원에 가면 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부산 영도 신성동의 고아원(서울 애린원)에 들어감.

    1953년
     •부산 보수동에 있는 한영중학교 야간에 입학했으나 보육원장 아들의 횡포에 맞서 싸우다가 학교를 그만두고 여수로 가서 고아원에 들어감.
    •여수종고중학교 2학년에 편입하여 다니다가 다시 부산 고아원으로 돌아와서 무선학교에 입학했으나 곧 그만둠.

    1955년
     •가짜 중학교 졸업장을 위조하여 광주고등학교 입학. 은단 장사와 여관 종업원 일을 하며 고학. 학교 공부보다는 문예반, 방송클럽 활동에 열중.

    1956년
     •학생 소식지 『광고 타임스』 투고 첫 시 게재. 학교 공부보다는 문예반, 방송클럽 활동에 열중.

    1957년
     •학예부장, 청소년적십자단 부단장으로 활동하며 시, 수필, 소설을 써서 『전남일보』 등 지방 신문과 서울의 학생잡지에 투고.

    1958년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라벌예술대학(현 중앙대학) 문예창작과 장학생으로 입학(소설가 천승세, 김주영 등이 입학 동기).
     •부친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8월 3일 임종). 이후 전국을 돌며 대학입시 문제집을 팔아 생계를 유지함.

    1960년
     •모친과 함께 광주에서 생활. 4.19시위에 참여.

    1961년
     •5.16쿠데타 이후 병영기피자로 몰려 도망다님. 친구집을 전전하며 아이스크림 장사, 빈대약 장사, 치약 장사, 외판원 등을 하며 생계 유지.

    1963년
     •남대문, 명동 등에서 술집 웨이트 생활을 하다가 가정교사로 중학생을 1년 정도 가르침. 이 무렵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사 관련 책을 읽음.

    1964년
     •시인 오상순의 주선으로 새로 창간된 『불교시보』 기자로 입사하여 3년간 근무. 전국 사찰을 돌며 고승들을 만나 불교역사에 관한 글을 쓰면서 역사학을 하겠다는 뜻을 세움.

    1967년 
    •대전에서 학원강사를 하다가 모친이 위암 말기 진단을 받고 서울로 올라와 병간호. 1월 4일(음력) 모친 별세(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
    •병역기피자 자진신고기간에 신체검사를 받고 체중미달로 병역면제를 받음.
     •가을 동아일보사 출판부에 임시직으로 취직하여 『동아연감』 편집 작업 참여.

    1968년 
    •여름 월간 『신동아』로 옮겨 별책 부록 『한국고전백선』 편집 작업을 하며 박종홍·양주동·이가원·이병도·이희승·임창순·이숭녕 등 당대 최고의 한국학 학자들을 만남.
    •『한국고전백선』 작업을 마친 뒤 고전에 대한 지식을 더 얻고자 서울대 규장각에서 아르바이트로 해제 작업 시작, 이 무렵 역사문제연구소 초대 소장을 역임한 정석종 등을 만나 교류함.

    1969년
     •12월 동아일보사 조사부로 옮겨 『동아일보』 창간호부터 기사색인 작업 참여. 이 작업을 하면서 일제강점기와 한국근대사에 대한 정보와 지식을 쌓음.

    1973년
     •『동아일보』 색인집 1집을 낸 뒤 임시직 10여 명과 함께 갑자기 해고됨. 생계를 위해 『육당전집』(현암사) 편찬 작업 참여. 『신동아』에 「신규식 평전」 발표,
     •시인 신경림의 주선으로 『창작과비평』 가을호(제8권 제3호)에 유신정권에 저항의식을 표출한 「허균과 개혁사상」 발표.

    1974년 
    •봄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수원 제1기 시험 합격. 성낙훈, 임창순 등 당대 최고의 한학자들에게 한문을 배우고 국역실장을 역임하며 사료 읽는 법의 기초를 닦음.
    •문인간첩단 조작사건 재판 방청. 이 사건에 충격을 받고 역사의 대중화를 통해 시대적 고민을 풀어보기로 결심,

    1975년
     •『창작과비평』 겨울호(제10권 제4호)에 「북벌론의 사상사적 검토」 발표. 천관우·이우성 등으로부터 격려를 받음. 이때부터 역사대중화를 위해 일반인 대상의 역사 글을 쓰기로 결심.

    1976년 
    •3월 광주고 선배 한창기가 발행인인 월간 『뿌리깊은나무』 창간호에 「마지막 내시」 게재. 이후 고정 필자로 한국사 관련 글 연재. 7월부터 『월간중앙』에 「한국의 파벌」 1년 동안 연재(1983년 어문각에서 단행본 출간).
     •11월 13일 한국사연구회 제60회 월례발표회에서 「이항로의 척사위정론에 대한 검토」 발표, 강만길·김용섭·정창렬 등 한국사 중진 교수들로부터 인정을 받음(발표문은 이듬해 10월에 간행된 『한국사연구』 18집, 1977년 10월호에 「척사위정론의 비판적 검토―화서 이항로의 소론(所論)을 중심으로」 제목으로 게재).
     •11월 20일 고등학교 후배 윤구병의 소개로 만난 김영희와 결혼(주례 이숭녕). 잠실 주공2단지 아파트에서 신혼살림 시작.

    1977년 
    •서울대 규장각으로 옮겨 1981년까지 고전 해제 작업. 점심시간을 이용해 대학원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침. 권태억, 박종기, 박준성, 안병욱, 심경호 등 서울대 국사학과와 국문과 대학원생들과 교류.
     •9월 아들 응일 출생. 10월 화곡3동 화곡주공시범주택단지로 이사. 주변에 살던 윤구병, 천승세, 김성동, 김철, 나병식 등과 교류.

    1979년
     •화곡동 집에서 이화여대 대학원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기 시작. 이를 계기로 우윤, 이균영 등 연세대, 한양대 대학원생들에게 한문을 가르침. 소설가 박완서, 시인 유안진, 화가 김점선 등도 참여.

    1980년 
    •4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전문위원으로 스카웃되어 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 작업 참여.
    •5월 ‘서울의 봄’ 당시 학생들과 함께 시위 참여.
     •『뿌리깊은나무』 종간호에 『허균의 생각』 초고 가운데 「정치 생각」 실음. 첫 저서로 『허균의 생각』(뿌리깊은나무) 출간.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주목받는 역사학자가 됨.

    1981년
    •3월 전두환 신군부 정권에 부역한다는 양심의 가책을 느껴 1년 만에 정신문화연구원 사직.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한국사 저술에만 몰두하기로 함.
     •4월 잠실 장미아파트로 이사. 이사 후에도 한문서당을 열고 젊은 연구자들과 교류. 이 무렵부터 농민전쟁 답사와 본격적인 자료 수집 시작.
    •한국사연구회에서 펴낸 『한국역사입문』(지식산업사)에 「척사위정」 항목 집필.

    1982년
     •새로 창간된 월간지 『한국인』의 고정필자로 한국사 관련 글을 연재하는 등 각종 잡지에 한국사 관련 글 연재. 틈틈이 기행과 강연을 하며 프리랜서 생활.
     •가을 학기부터 안병욱 교수의 추천으로 성심여대 국사학과에서 한국사상사 강의, 이후 10여 년간 출강하면서 안병욱·유승원·이순근·서중석·유홍준 등과 교류.
      •10월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아치울)에 새집을 짓고 이사. 한문서당 수강생들과 경기도 일대 실학유적지 답사, 이후 범위를 넓혀 동학농민전쟁 삼남유적지, 지리산 일대 등 답사.

    1984년
     •『역사와 민중』(어문각) 출간. 금서 목록에 오른 것을 모르고 책을 소지하고 전철을 탔다가 불심검문에 걸려 곤욕을 치룸.

    1985년
     •8월부터 시작된 한길역사기행과 한길역사강좌 답사 및 강의 참여. 50여 회 진행된 ‘한길역사기행’의 최다 참여 강사.

    1986년
     •1월 임헌영, 서중석 등의 추천으로 안성 청룡사에서 열린 역사문제연구소(이하 ‘역문연’) 준비 모임 참석.
     •2월 21일 종로구 내수동 옥빌딩 401호 역문연(이사장 박원순, 소장 정석종) 개소식 참여.
     •5월 한길역사기행으로 지리산 일대 답사 안내, 「지리산의 정신사와 저항사」 주제 강연,
     •5월 24일 역문연 첫 공식행사로 열린 제1회 학술강연회(한국근현대사 연구현황과 문제점)에서 「19세기 사회사상사 연구현황과 문제점」 발표.
     •6월 30일 서당수강생들과 규장각에서 만난 소장 학자들을 중심으로 역문연 안에 ‘19세기 민중운동사’ 세미나팀 꾸리고 함께 공부.
      •8월 2∼4일 역문연 첫 여름수련회(강촌)에 아들 응일과 함께 참석.
      •8월 30일 연구자를 운영위원에 보강하자는 취지에 따라 운영위원 참여.
      •9월 역문연 첫 한문강좌로 강위의 『삼정책』 개설. 이후 19세기 역사를 다룬 원전 강독.
      •9월 딸 응소 출생.

    1987년
     •3월 역문연 제7회 학술강연회 「동학농민전쟁 연구현황과 문제점」 발표(안병욱) 지정 토론.
     •5월 18일 『한국민중사』 필화사건 첫 공판 방청.
     •6월 10일 거리 시위 참여를 시작으로 6월 26일까지 날마다 시위 참여.
     •6월 30일 역문연 부소장을 맡음.
     •7월 9일 연세대에서 열린 이한열 장례식과 광주 금남로에서 열린 노제 참석.
     •9월 역문연 제1회 한국사교실 「인물로 본 한국근현대사, 동학농민전쟁과 전봉준」 강의.
     •9월 29일 비정기간행물(무크지) 『역사비평』 창간 편집위원. 창간호에 「역사소설의 반역사성-동학농민전쟁관계 소설을 중심으로」 발표.
     •10월 역문연 한국근대민중생활사 세미나 팀을 꾸림. 현장답사를 중요시하여 전국의 동학농민전쟁 유적 답사와 조사 활동 벌임. 이들 모임은 역문연 역사기행과 동학농민전쟁기념사업 활동으로 연결됨.
     •12월 역문연 한문강좌, 『19세기 사회사상사 자료선』 개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 발기인 참여. 아들 응일, 딸 응소와 함께 창간 주주가 됨.
     •『역사비평』 제2호(봄호)에 「인간과 신의 차이-최시형의 역사적 재평가」 발표.
     •4월 3일 제주4.3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기 위해 열린 ‘제주도 현대사의 재조명’ 발표회 참석, 역문연 대표로 인사말을 함.
     •여름호부터 역사종합계간지로 정식등록한 『역사비평』 편집인(발행인 정석종) 맡음.
     •7월 30일∼8월 1일 역사문제연구소 여름수련회에 가족과 함께 참석.
     •9월 역문연 한문강좌, 1894년 농민전쟁 관련 자료 강독 시작.
     •11월 역문연 대표로 학술단체협의회 상임공동대표 추대.
     •『한문강좌』(한길사) 출간.

    1989년 
    •3월 역문연 제10기 한국사교실 「민족해방운동사2-동학농민군의 삶과 투쟁, 농민군은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5월 제11기 한국사교실 「한국근현대 사회사상과 인물, 신채호의 민족주의」 강의.
     •『역사비평』 5호에 「쌀과 제국주의」 발표.
     •9월 역문연 한문강좌, 『오하기문』 강독 시작.
     •9월 역문연 부설 특별기구로 동학농민전쟁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이하 백추위)를 발족시키고 추진위원장을 맡음. 신영우·우윤·배항섭·김양식·박준성·왕현종 등 전공연구자들과 함께 1994년까지 사업 주도.
     •『역사비평』 7호에 「전봉준과 동학농민전쟁」 발표.
     •『역사인물이야기』(역사비평사), 『한국근대인물의 해명』(학민사) 출간.

    1990년 
    •동학백추위 주관으로 이해 초부터 1994년까지 동학농민전쟁 유적 답사 진행. 
    •3월 역문연 연구기금 마련을 위한 서화전 개최 주선. 서중석·유홍준·윤해동 등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3500여 만원의 기금 마련.
    •7월 역사문제연구소 하기수련회(전북 장수군 연화분교), ‘산세와 역사’ 강연.
    •8월 여강출판사 이순동 사장의 주선으로 첫 중국기행. 중국과 정식 수교 전이라 출판사 영업부 직원 신분으로 위장하여 출발.
    •『역사비평』 8호에 「투쟁-반봉건 변혁운동과 집강소」 발표.
    •『역사비평』 9호에 「전봉준, 반제의 봉화 높이 들다」 발표.
    •『역사비평』 10호에 「농민군의 전면 항쟁과 그 최후」 발표.
    •『역사비평』 11호에 이우성 선생과의 대담 「문·사·철을 겸비한 실천적 지식인」 실음.
    •재벌기업의 비리를 폭로한 친구 이문옥 감사관의 양심선언 지지, 정부규탄 시민대회 참여.

    1991년
     •2월 역문연 제2대 소장 취임.
     •7월 전주 문화방송 동학 답사 다큐멘터리 「가보세 가보세」 리포터 참여.
     •여름 박완서, 송우혜 등과 함께 두 번째 중국기행 다녀옴.
     •『역사비평』 13호에 「민중생활 100년사 한말-성냥과 석유를 처음 쓰던 시절」 발표
     •12월 역문연 한문강좌 『매천야록』 개설.
     •『우리겨레의 전통생활』(여강출판사) 출간.

    1992년
     •4월 4.3진상규명 범국민대책회의 공동대표에 추대됨.
     •4월 역문연 제19기 한국사교실(친일파·민족반역자 열전)에서 ‘이완용·송병준’ 강의.
     •『역사비평』 17호에 「이완용의 곡예-친미·친로에서 친일로」 발표.
     •『역사비평』 18호에 임창순과의 대담 「4·25 교수데모에 앞장선 한학·금석문의 대가」 실음.
     •『역사비평』 19호에 「소설 『동의보감』은 역사를 옳게 봤는가?」 발표.

    1993년 
    •2월부터 『한겨레신문』에 「발굴 동학농민전쟁 인물열전」(30여 회) 연재((이듬해 단행본 출간).
    •2월 동학백추위 주최 제1회 동학농민전쟁 역사교실 「동학농민전쟁의 지도자들」 강의.
    •4월 역문연 제21기 한국사교실 「오늘의 시점에서 되새겨 보는 한국역사 5천년 근대편」 강의.
    •8월 중국역사기행단 단장을 맡아 ‘청일전쟁 답사’팀을 이끌고 세 번째 중국기행. 백두산에 소주 뿌렸다고 중국 공안에 벌금 500달러를 문 유명한 일화를 남김.
    •10월 동학백추위 주최 제2회 역사교실 「지역별 농민전쟁의 특성과 전개, 전라남도·경상도 해안지역」 편 강의.
    •12월 동학농민전쟁 백주년기념사업단체협의회를 결성하고 공동대표에 추대됨.
    •제7회 심산상 수상.
    •『중국역사기행』(웅진출판), 『이야기 인물한국사』 전5권(한길사) 출간 

    1994년 
    •동학농민전쟁 백주년을 맞이하여 ‘고부봉기 역사맞이굿’을 시작으로 여러 행사를 벌임.
    •1월 역문연 사무실에서 동학농민군 유족 첫 간담회 주선, 3월 3일 동학농민혁명유족회 결성.
    •5월 한국방송공사에서 제작한 다큐드라마 「동학농민전쟁 100년」(4부작)에 자문 및 리포터 참여. 우윤과 함께 직접 분장을 하고 단역 출연.
    •11월 역문연 제24기 한국사교실(인물로 본 한국민족주의)에서 「최익현과 척사위정」 강의.
    •12월 동학백추위 주관으로 동학농민군 후손 증언록 『다시 피는 녹두꽃』 출간.
    •『조선후기 정치사상과 사회변동』(한길사) 출간.

    1995년 
    •7월 15일 한길사와 계약한 한국통사 집필에 전념하기 위해 전북 장수 연화마을에 내려감.
    •『역사비평』 28호에 「동학농민전쟁 백주년을 되돌아보며」 발표.

    1996년 
    •8월 장수 연화마을에서 역문연 하계수련회 겸 회갑연 개최. 역문연 소장 사임(후임 소장 김정기).
    •10월 백추위 주도로 수집한 『동학농민전쟁사료총서』(총30권) 발간하고 사료 비평회 겸 출판기념회 개최. 사료총서를 북한 사회과학원· 일본·중국 등 외국의 관련 연구소에 기증.

    1997년 
    •『한국사 이야기』 고대사편(총4권) 탈고 후 전북 김제군 금산면 월명암으로 집필 공간 옮김.

    1998년 
    •6월 『한국사 이야기』 1차분 고대사 1,2,3,4권 출간.
    •여름 출간 기념으로 ‘이이화와 함께 떠나는 고구려 발해 역사대탐험’ 팀을 이끌고 만주의 고구려유적 답사 다녀옴.
    •『한국사 이야기』 2차분 고려시대사 원고를 탈고한 뒤 구리 아치울 집으로 집필 공간 옮김.
    •아치울에 이사 온 박완서와 함께 ‘아치울친목회’ 공동회장에 추대됨.

    1999년 
    •1월 『한국사 이야기』 고려시대사 5,6,7,8권 출간.
    •6월 유홍준, 조동걸 등과 함께 금강산기행. 『역문연 회보』 39호에 「금강산에 다녀와서」 실음.
    •9월 역문연 제28기 한국사교실(정치권력에 찢겨진 지역차별의 역사)에서 「호남지역 : 전라도를 왜 반역향이라고 하는가?」 강의.
    •겨울 일본 오키나와에서 열린 제3회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심포지엄 참가. 류춘도 등 한국전쟁피해자들을 만나 민간인희생자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됨.
     •『이이화의 역사풍속기행』(역사비평사) 출간.

    2000년
     •5월 전남 구례에서 열린 제4회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을 위한 국제회의 참가.
    •9월 7일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범국민위원회(이하 범국민위원회)공동대표 추대. 이후 10여 년 동안 한국전쟁희생자들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운동에 앞장섬.
     •10월 역문연 역사기행 ‘한국근현대사의 정치일번지를 찾아서 1’(종로구 계동 일대) 답사 안내.
    •『한국사 이야기』 3차분 9,10,11,12권, 『이이화의 못다한 한국사 이야기』(푸른역사) 출간.

    2001년
     •1월 국회바른정치실천연구회 멤버들 주도로 진행된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한 한일역사탐방’ 초청 강사로 쓰시마 기행.
     •5월 전주에서 동학농민혁명을 주제로 열린 제5회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국제회의 주선.
     •『역사비평』 통권 54호에 「고려시대의 개경」 발표.
     •5월 9일 제15회 단재상 학술부문 수상.
     •『한국사 이야기』 4차분 13,14,15권, 『만화 한국사 이야기』 1,2,3권(삼성출판사) 출간.

    2002년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회 지도위원으로 감수 작업 참여.
    •10월 범국민위원회 2기 상임공동대표에 선출됨.
     •『만화 한국사 이야기』 4,5,6권 출간, 『역사 속의 한국불교』(역사비평사) 출간.

    2003년 
    •1월 21일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문제 해결 촉구하는 국가인권위원회 집단진정 기자회견 참석. 이후 범국민위원회 상임공동대표로 유족들의 농성과 입법 투쟁 지원.
    •12월 『한국사 이야기』 5차분 16,17,18,19권 출간.
    •연말 한겨레문화센터의 요청으로 ‘금강산 해맞이’ 행사 해설자로 금강산을 다녀옴.

    2004년
     •1월 중국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발족한 고구려역사문화재단 공동대표 추대.
     •5월 『한국사 이야기』 전22권 완간(원고지 2만5천매).
     •6월 3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한국사 이야기』 출판기념회 개최(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을 위한 한국의 대표적인 책 100선’, 2007년 《한국일보》의 ‘우리 시대 명저 50선’에 선정).
     •6월 『만화 한국사 이야기』 전7권 완간. 100만부 베스트셀러가 되고 ‘역사할아버지’ 별명 얻음.
     •9월 17일 「동학농민혁명명예회복특별법」에 따라 발족한 동학농민혁명명예회복심의위원회 명예회복추진분과위원장 맡음.
     •9월 금강산에서 열린 남북 역사학자 공동 학술대회 참가.
     •『역사비평』 68호(가을호)에 대담 「이이화-민중 속에서 민중의 역사가로」 실림.
     •11월 고구려역사문화보존회,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사장 추대.
     •『한국의 파벌』(솔과학, 개정판), 『역사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산처럼), 『대접주 김인배, 동학농민혁명의 선두에 서다』(푸른역사) 출간.

    2005년
     •서원대학교 역사교육과 석좌교수로 초빙됨(2년 출강).
     •7월 위암 수술.
     •11월 개성지구의 세계문화유산등록을 위한 남북공동 학술 토론회와 유적답사 참가.
     •12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자문위원으로 4년간 활동.
     •『역사비평』 73호에 「신사유람단을 1881년 일본시찰단으로」 발표.
     •『한국사, 나는 이렇게 본다』(길) 출간.

    2006년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자문위원 역임.
     •5월 10일 제1회 임창순학술상 수상.
     •『만화 인물한국사』(전3권, 또래마루), 『고구려』(사파리), 『녹두장군 전봉준』(중심) 출간.

    2007년
     •1월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헤이리예술마을로 이사.
     •11월 동학농민혁명재단 주최로 동학군과 진압군의 후손을 한자리에 초청한 ‘화해의 만남’ 주선, 신영우 교수와 공동으로 「화해의 사발통문」 작성.
     •『역사』(열림원), 『해동성국 발해』(사파리) 출간.

    2008년
     •1∼3월 대통합민주신당(현 민주당) 18대 국회의원 후보 지역공천심사위원으로 활동.
     •6월 10일 광화문 촛불문화제 참여.
     •허균허난설헌학술대상,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출판특별상, 제1회 녹두대상 수상.

    2009년 
     •4월 25일 진실과 미래, 국치 100년사업 공동추진위원회 공동대표 추대.
     •8월 29일 세종문화괴관에서 열린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1차 명단 발표 기자회견 참석.
     •『인물로 읽는 한국사』(전10권), 『이이화의 한문공부』(역사비평사) 출간.

    2010년
     •1월 31일 도쿄에서 열린 과거사 청산과 평화의 미래를 위한 집회 참석, 한국대표로 인사말.
     •3월 강제병합100년 공동행동 한국실행위원회 상임공동대표 추대.
     •4월 특수법인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 발족하면서 이사장에서 물러남.
     •6월부터 『한겨레』에 회고록 「길을 찾아서-민중사 헤쳐 온 야인」 연재(6개월 동안 121회).
     •8월 12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강제병합 100년 한일시민대회’ 기자회견 참석.
     •8월 22일 도쿄에서 열린 한일 시민 공동선언 일본대회 개막식 참석.
     •『백두산을 오르며 만나는 우리역사』(리북) 출간.

    2011년
     •2월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에 추대되어 건립기금모금운동에 앞장섬.
     •동학혁명정신선양대회 대회장, 한일시민선언실천협의회 상임대표 역임.
     •제4회 녹두대상 수상.
     •『청소년을 위해 쉽게 풀어쓴 이이화의 인물한국사』 전5권(주니어김영사), 자서전 『역사를 쓰다』 (한겨레출판), 『동학농민운동』(사파리) 출간.

    2012년
     •6월15일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담쟁이포럼 주최 첫 조찬강연회에서 「2013년 체제의 리더십, 역대 지도자의 궤적」이라는 주제로 강연.
     •『평등과 자주를 외친 동학농민전쟁』(사파리) 출간,

    2013년
     •9월 12일 친일독재미화 뉴라이트 교과서 규탄대회 및 검정 무효화 국민네트워크 출범식 참여.
     •11월 12일 역사교육에 대한 권력과 정치의 개입을 규탄하는 ‘한국사 교과서와 역사교육 문제에 대한 원로 교수 기자회견’ 참석

    2014년
     •1월 22일 원광대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 수여.
     •『이이화의 주제로 보는 한국사』 전3권(풀빛미디어), 『전봉준, 혁명의 기록-동학농민전쟁 120년, 녹두꽃 피다』(생각정원) 출간.

    2015년
     •10월 12일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의 배후 청와대 규탄 기자회견 참석.
     •10월 21일 역사 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철회를 촉구하는 원로학자 기자회견 참여.
     •10월 24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를 위한 역사연구자, 역사교사 거리행진 참여.
     •10월 31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전국역사인 대회 거리행진 참여.
     •『한국사 이야기』(총22권, 개정판), 『허균의 생각』(개정판, 교유서가) 출간.

    2016년
     •1월 23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주최 「시민·학생과 함께 하는 거리 역사 강좌, 제8강 왕조시대의 역사교육은 어떠하였나」 강연. 강연 내용은 『거리에서 국정교과서를 묻다』(민족문제연구소)로 출간.
     •8월 22일 위기의 대한민국, 현 시국을 바라보는 역사학계의 입장 기자회견 참석.
     •10월 8일 식민지역사박물관 일본건립위원회 오사카 보고대회 강연.
     •『경향신문』의 ‘경향 70년, 70인과의 동행’에서 명사 70인에 선정.

    2017년
     •3월 전봉준장군동상건립위원회 창립하고 이사장을 맡아 동상건립 국민모금운동 주도.
     •『민란의 시대-조선의 마지막 100년』(한겨레출판) 출간.

    2018년
     •4월 24일 전봉준 장군 동상 제막식 주관. 
     •8월 29일 ‘식민지역사박물관’(건립위원회 위원장) 개관.
     •민족문제연구소 이사 취임. 제11회 녹두대상 수상.
     •역사에세이 『위대한 봄을 만났다』(교유서가), 『이이화의 이야기 한국불교사』(불광출판사) 출간.

    2019년
     •12월 동학농민혁명정신을 계승‧발전시키는 데 헌신한 공로로 전주시 명예시민에 선정.
     •『이이화의 명승열전』(불광출판사) 출간.

    2020년
     •2월 발간된 역문연 초대 소장 정석종 20주기 유고집 『정석종, 그의 삶과 역사학』에 「그리운 친구야, 이제부터 연구에 매진하겠다고 했는데」, 「정석종의 역사관과 민중사적 시각」 기고(마지막 유작).
     •3월 18일 오전 11시 향년 84세를 일기로 별세(파주 동화경모공원 안장).
     •역사대중화와 역사정의 실현에 끼친 공적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무궁화장 추서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