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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이화 선생을 보내며, 서중석(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성균관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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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0-04-14 조회수 :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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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화 선생을 보내며

      소년기부터 이 세상 풍진을 다 겪으며 한 시대를 뜨겁게 사셨던 우리 시대의 행동하는 양심인 이이화 선생을 이제 우리는 떠나 보내드려야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떠나 보내드릴 이이화 선생은 대단히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신 역사학자이십니다. 신식 학문을 배우려고 15세 소년이 가출하여 고아원에 들어가고, 고학생으로 아이스케키 장사, 빈대약 장사 등 온갖 장사를 다 해봤지만 역사학과에 들어간 적도, 그래서 역사학을 전공한 적도 없는데, 대단히 유명한 역사학자, 그 분이 바로 이이화 선생이십니다. 역사학과 문턱을 밟아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명성이 자자한 역사학자가 되었느냐. 저서가 100권이나 되기 때문이냐.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주역에 독자적인 경지를 열었던 부친으로부터 소년시절 익혔던 한학이 워낙 총기가 좋은 분이라 평생 동안 학문의 자양분으로 남아 있었던 것이 기본 토대가 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생이 학자로서 뛰어난 점은 다른 데 있었습니다. 야성적인 뛰어난 비판적 역사안목이 바로 그것입니다. 시대의 이단아였던 천재 허균의 사상을 위대한 개혁사상으로 꿰뚫어 본 것이나, 오랫동안 찬양의 대상이었던 북벌론이나 척사위정사상을 정면으로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선생이 허균처럼 야성적인 뛰어난 비판 안목을 가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역사안에 민중적이고 서민적인 역사감각이 합쳐지고 강단이 워낙 좋아 동학농민전쟁에 뛰어난 연구업적을 냈고 한국사 22권이란, 다른 사람들이 꿈도 꿀 수 없는 대저를 세상에 내놓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억강부약이란 말이 있습니다만, 선생은 평생을 양심에  따라 약자를 위해 싸웠습니다. 선생은 작게는 역사문제연구소를 자신의 거처로 알고 뜨거운 열정을 바쳤습니다. 또 동학혁명 관련자 명예회복운동에 열정을 기울이고 한국전쟁기 민간인학살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 대표로 활약하신 것도 모두다 우리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억강부약의 양심에서 나왔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성정이 활달하고 말씀하기를 좋아해 다른 사람이 끼어들 틈새도 주지 않고 혼자서 얘기를 이끌어가 좌중을 웃음바다로 만들고 통쾌하게 했던 것이 엊그제 일처럼 눈에 선합니다. 더욱이 불의나 패륜 정치를 몹시 미워하고 참지 못해 직설적으로 쏟아 붓던 모습도 그립습니다.

      세상 잘못 돌아가는 일에 하실 말씀 많겠지만 이제는 모든 근심 우려 다 거두시고 평안히 가십시오. 그렇게 좋아하던 술 담배도 이제는 끊으시겠지요. 그래도 선생은 오래오래 사실 줄 알았는데, 아무리 강단이 좋아도 선생 말씀처럼 인명은 재천인가 봅니다. 그 어느 누구도 메울 수 없는 거대한 빈자리를 남기고 선생은 영원히 우리 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는 선생의 활달하고 격정적인 모습, 환한 웃음을, 뜨겁게 사셨던 선생의 삶·정신과 함께 언제까지나 마음속에 간직하겠습니다. 선생이 좋아하시던 개나리 진달래 꽃 온몸에 맞으며 화창한 봄날 모든 것 잊으시고 고이 잠드소서.

                    서중석(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