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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이화 선생님을 그리며, 김아람(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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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0-04-14 조회수 :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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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화 선생님을 그리며

      저는 2011년에 연구원이 되며 선생님을 뵐 수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과의 인연이 그리 길지는 않습니다. 함께 연구하거나 일을 해 본 일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추모 글을 쓰겠다고 한 것은, 제 외할머니보다 연세가 많으신 선생님이시지만 저를 격려하시고 격의 없이 대해주신 선생님 모습을 짧게나마 남기고 싶어서입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한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2017년 2월에 박사논문을 마치고 선생님 댁에 학위논문을 보내드렸습니다. 그때까지 선생님 댁 주소도, 전화번호도 몰랐습니다. 얼마 지나서였던 것 같습니다. 저녁때였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나 이이화야. 누군지 알아? 자네 논문 받았다고.”
      “네네. 그럼요. 알지요!”

      선생님께서 택배 봉투에 적힌 제 번호로 전화를 주셨던 거였지요. 순간이었지만 여러모로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 분들에게 논문을 보내드렸었는데 직접 전화를 해주신 분은 정말 드물었기에 전화를 주셨다는 것에 놀랐습니다. 또 당신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던가 해서 놀랐습니다.

      그러고는 선생님은 말씀하시길

      “좋은 논문을 썼네. 나도 사실 피난민이지. 아주 중요한 주제야.”

    하셨습니다. 제 논문 주제는 한국전쟁기의 피난민과 정착에 관한 것입니다. 부끄럽게도 저는 그때까지 선생님 유년시절을 자세히 몰랐습니다. 다만 그간 구술하며 만났던 어르신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선생님의 칭찬을 받다니!’ 감격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고 갑자기 울컥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날의 통화는 “그래 열심히 해” 선생님의 쿨한 한마디로 끝났지만 지나고 나니 후회가 많이 듭니다. 학문과 저술, 활동으로만 선생님을 알았고 그 업적과 열정과 인품을 존경하는 것에만 그쳤던 것이요.

      선생님의 유년시절은 어땠을까요. 스스로 피난민이었다고 말씀하시는 그 삶의 무게는 얼마나 고된 것이었을까요. 또한 그것을 견디고 살아내신 힘이 선생님과 늘 함께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선생님께 다시 한 번,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많이 그립다는 말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