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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원한 동심, 이이화 선생님 (임현진,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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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2020-04-22 조회수 :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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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원한 동심, 이이화 선생님

    임  현  진(서울대학교 명예교수)

      문안을 여쭈려고 연락을 드려도 통화가 되지 않네요.
    이곳 저곳 다니며 민초들 만나 얘기나누고 도와주느라 시간에 쫒기고 계실 것입니다. 저승은 초차원(超次元)의 세계일 터이니 지구위 곳곳을 누비며 과거와 미래를 오가면서 여전히 바쁘시겠지요.

      우리가 알기에 선생님은 단아한 체구에 담대한 기개와 심력을 가진 분이지요. 어린 시절부터 어려움아래 온갖 굳은 일은 다해보셨지요. 약장사, 배달부.... 등 믿기 어려울 정도의 고생을 하셨지요. 학교의 정규교육이 그리워 가짜 졸업장을 만들어 고등학교에 입학했다는 얘기는 차라리 우리를 위로하게 만들었답니다.

      대중의 계몽과 해방을 위한 열정과 집념을 갖고 한국의 역사를 전체사적으로 접근하셨지요. 저와 같은 문외한의 눈에 선생님의 <<한국사 이야기>>는 백암(白巖), 단재(丹齋)의 정신을 받아 우리 역사의 대중화를 이끈 대단한 기여라고 봅니다.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과 변조를 바로잡아 준 기술과 해석을 담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글도 쓰고 역사 운동도 하셨지요. 저는 선생님을 단순히 민중사학자라고 보지 않습니다. 민중의 생활과 민족의 실존에 입각한 아래로부터의 민족사관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의 해맑은 웃음에서 꾸밈없는 동심(童心)을 읽곤 했습니다. 가식과 위선이 없지요. 주위의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말씀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품이었지요. 사실(史實)에 비춘 설파와 유모가 생각납니다. 명성과 자리를 위해 사는 ‘놈’들을 야단쳤고, 약자를 위하는 일념에서 정의를 세우려 했고 불의와는 분명한 선을 그었지요. 역사에 대한 고민에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담겨져 있었지요. 모 시인이 얘기했듯이 ‘흙의 평등과 바람의 자유’를 찾으려 하셨지요.

      어제는 남산에 올랐다 한옥마을 근처로 내려오면서 예전에 자주 가던 돼지목살을 잘하는 식당을 찾으려 했지만 없어졌더군요. 혹시나 해서 이 골목 저 골목 아무리 찾아보아도 온통 마스크를 껴서 그런지 선생님을 뵈올 수가 없었습니다. 요즈음 코로나 사태로 인해 마음도 멀어지는데 마스크를 쓰면 모두가 마치 로봇트처럼 보인답니다. 

      우리 ‘주모자(酒慕者)’들은 역사문제연구소 필동 시절 1990년대에 운영위원회가 끝나면 저녁을 먹고 누가 먼저 말을 꺼내기 무섭게 자연스레 뭉쳤지요. 선생님을 필두로 고 김백일, 장두환, 윤해동, 임현진이 고정 멤버였고 여기에 종종 서중석, 원경이 끼곤 했지요. 당시 12시 이후 주류판매가 금지되어 있었기에 우리들은 이름 없는 구멍가게 위층의 조그만 방에서 술로 새벽을 맞이하곤 하였답니다. 세상돌아가는 얘기에 날이 새는지 몰랐지요. 광개토대왕비의 진실, 남북국 시대, 여진족의 뿌리, 허균의 꿈 등 논쟁을 이어갔지요. 올바르지 못한 세상에 대해 울분을 토로하다 보면 안주도 필요 없었지요.

      인향만리(人香萬里)라고 선생님의 향기는 우리를 편안하게 감싸고 있습니다. 우리의 추억 속에 말씀과 체취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곳에는 마음 맞는 동지들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 이승에서 못다 한 꿈을 같이 이루시고 평소 애타하시던 정의와 평화가 이 땅에 세워지도록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평소대로 술과 담배도 마음껏 즐기시길 바랍니다.

      부디 영면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