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 연구소


          
  제34호-2015년 하반기 1173
   관리자   2016-03-14

 



책머리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떠도는 유행어 중에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단어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헬조선(Hell朝鮮)은 2010년에 등장한 대한민국의 인터넷 신조어이다. 헬(Hell: 지옥)+조선의 합성어로 ‘한국이 지옥에 가깝고 전혀 희망이 없는 사회’라는 의미이다. 특정 커뮤니티의 극소수의 네티즌들이 사용했으나 언론이 쓰면서 더 알려지게 되었다. 비슷한 개념을 가진 다른 용어로 ‘지옥불반도’라는 단어도 사용된다.”

어쩌다가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 한반도가 젊은이들에게 ‘지옥’이 되었을까? 그동안 보수적인 어른들은 이를 무능하고 게으른 젊은이들이 자신들의 문제를 국가 탓, 부모 탓으로 돌리는 불평불만 정도로 치부해왔다. 그런데 최근 이에 대한 분명한 해답이 나왔다. 즉 좌파 역사학자들이 쓴 역사교과서를 가지고 좌파 역사교사들이 한국사, 특히 한국현대사에 대해 역사적 사실과 본질을 왜곡하고 편협한 역사의식을 가르쳤기 때문에, 학생들이 우리나라는 “참 못난 나라다”, “중진국으로 영원히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패배의식’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곧바로 대안도 제시되었다. ‘90%가 좌파’인 역사학자들에게 교과서를 맡길 수 없으며, ‘긍정적 역사관’에 입각해 정부가 직접 ‘올바른’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명쾌한 해답과 대안 제시이긴 한데 금세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중진국에서 벗어나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국정 역사교과서가 필요하다는 논리의 모순은 논외로 하더라도, 원래 ‘헬조선’이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들이 근대화, 산업화, 선진화 논리에 기반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모조리 ‘좌파’로 몰아붙였던 극우적 성향의 네티즌이었다는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게 단지 패배주의 때문에 유행하게 되었을까? 오히려 현실에 대한 절망과 분노를 담아낸 젊은이들의 유쾌한 ‘조롱’이 아닐까? 근본적인 의문은 따로 있다. 학생들에게 ‘부정적 역사관’, ‘패배주의’를 심어준 것으로 낙인찍힌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은 도대체 어디서 그런 ‘올바르지 못한’ 역사를 배웠을까? 그들 대부분은 1974년 유신체제 때부터 만들어졌던 국정 역사교과서를 통해 역사를 공부했다.

이는 앞으로 국가가 소위 ‘긍정적 역사관’에 입각해 역사를 미화하는 국정교과서를 만든다 할지라도, 그리고 생각보다 오랫동안 세련된 방식으로 학생들의 머릿속에 국가가 독점한 역사관을 주입한다하더라도, 현실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면 그 효과에는 한계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단지 책을 통한 지식의 전달과 습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는 명제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역사학과 역사교육은 책을 넘어 현실 문제와 끊임없는 긴장감 속에서 전개될 수밖에 없다. 국가가 진정으로 젊은이들을 걱정한다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통해 젊은이들의 ‘패배주의’와 ‘불평불만’을 바로잡겠다는 헛된 생각에 집착하지 말고, ‘헬조선’이라는 조롱 속에 담긴 그들의 절망과 분노에 귀 기울여 주기를 바란다. 성찰을 배제한 역사 미화라는 ‘정신승리’ 수준의 ‘진통제’는 잠시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절망과 분노의 근본 원인이 치유되지 않는 한 과거 국정 역사교과서가 그랬듯이 오히려 ‘내성’만 키워줄 뿐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역사문제연구 34호가 간행되었다. 이번호에는 두 가지 주제의 ‘특집’ 논문들이 실렸다. 첫 번째 특집 주제는 ‘한일협정 전후 재일조선인 사회의 변화’이다. 2015년은 해방 70주년, 한일협정 체결 50주년, 베트남전쟁 전투병파병 50주년을 동시에 맞이한 해였다. 역사학은 ‘시간’을 다루는 학문인만큼,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주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특성이 있다. 특히 근현대사는 연구대상과의 시간적 거리가 짧은 만큼 10년 단위의 주기마다 연구가 집중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는 기존 연구를 결산하고 새로운 연구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관성적으로 비슷한 연구를 반복하는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 이에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에서는 ‘주년’을 기념하면서도 동시에 연구사적인 의의를 최대한 살리고자, ‘한일협정 체결 50주년’과 관련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연구가 부족했던 ‘재일조선인’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기로 했다. 우선 조경희의 「한일협정 이후 재일 조선인의 국적과 분단정치」는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재일조선인의 ‘협정영주’허가 신청과 국적 변경에 대해, 한일정부의 개입과정과 재일조선인 사회의 대립구도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이 논문에 따르면, 한일협정을 통한 ‘협정영주’자격의 신설은 한국적 재일조선인의 법적지위를 진전시켰지만, 재일조선인사회에 첨예한 대립구도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재일조선인들에게 국적은 인권이나 민족자결권의 근거보다는 분단체제 하 경쟁의 도구이자 어느 한 체제로의 소속 증명의 도구 역할을 했다. 다음으로 박광현의 「김달수의 자전적 글쓰기의 정치-‘귀국사업’과 ‘한일회담’을 사이에 두고」는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재일조선인 소설가, 역사가, 저널리스트 김달수의 삶과 작품을 분석하여, 그의 자전적 글쓰기가 북한 ‘귀국사업’과 한일협정 체결을 거치면서 어떻게 연속되고 변화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이 논문에 따르면, 그의 자전적 글쓰기는 ‘필연적 희생’이라는 재일조선인의 목소리를 대표하는 형식을 취했으며 30년 가까이 변함없이 1950년대까지의 청년시대에 제한된 자기 이야기만을 다뤘다. 그러나 1965년 한일협정 체결 이후 그의 글쓰기에서 조국과의 갈등은 점차 내면화, 소극화되기 시작했고 결국 현실의 문제를 회피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역사문제연구 34호의 두 번째 특집 주제는 ‘1960~70년대 자본과 소비’이다. 이 특집에는 역사문제연구소 ‘6070세미나반’의 하계워크샵에서 발표된 두 편의 논문을 담았다. 이 워크샵은 1960~70년대를 자본주의 한국 사회의 형성기로 보고, 이 시기 자본주의의 핵심요소인 ‘자본’과 ‘소비’ 동향을 살펴보는데 목적이 있었다. 먼저 이은희의 「박정희 시대 콜라전쟁」은 내핍을 강조하던 1960년대 한국 사회에 어떻게 소비문화의 대명사인 ‘코카콜라’가 들어와 일상품으로 자리매김했는지 분석하였다. 이 논문에 따르면, 박정희 정부가 코카콜라의 국내진출을 달가워하지 않았지만, 음료 같은 내수업종에서도 다국적기업과 손잡은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정부의 소비억제정책은 균열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이정은의 「자본시장 육성과 기업공개-1967~1973년 전경련의 추진과 기업의 시행을 중심으로」는 증권시장의 성장기반이 닦인 1967년부터 1973년 동안 대자본과 이를 대변하는 전경련이 왜 기업공개를 통한 자본시장 육성을 추진했고, 이것이 당시 정부 정책과 어떤 연관이 있었으며, 실제로 어떤 양상을 보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이 논문에 따르면, 1960년대 후반 아직 한국 대자본의 대부분은 기업공개에 대해 회피적이었지만, 정부가 내자동원 방안으로 기업공개 카드를 검토하자 전경련을 중심으로 적극 대응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1968년을 기점으로 기업공개와 주식상장을 하는 회사 수가 점차 증가했고, 증권시장 본래의 기능인 장기자본 조달, 나아가 전경련이 의도한 ‘기업자금 조달원의 다각화’도 점차 모습을 갖추어 나갔다.

최근 역사문제연구가 가장 많은 공을 들여 준비하고 있는 것이 바로 ‘저작비평회’이다. 이번 34호의 경우 다뤄야 할 주요 저작이 많아 모두 두 편의 저작에 대한 비평회를 각각 실시하였다. 첫 번째 저작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주제로 한 최초의 박사학위논문(일본어)을 15년 만에 번역하여 책으로 간행한 윤명숙의 『조선인 군위안부 일본군위안소제도』(이학사, 2015)이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학술영역을 넘어 정치적, 사회적, 국제적 문제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비록 15년 전의 연구이지만 그 연구사적 의의는 현재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판단되어 이 책을 저작비평회의 대상으로 삼았다. 조시현, 김헌주, 한혜인 세 분이 논평자로 나서 활발한 토론을 벌였다. 저작비평회의 두 번째 저작은 역시 박사학위논문을 최근 책으로 출간한 유경순의 『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기록』1,2(봄날의박씨, 2015)이다. 이 책은 필자가 다년간 수행한 1980년대 학출노동자에 대한 구술면담을 바탕으로, 아직 체계적인 연구가 진행되지 못한 1980년대 노동운동사에 대한 역사화를 시도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김원, 황병주, 장미현 세 분의 논평자가 저작에 대한 꼼꼼한 비평을 해줬다. 필자와 논평자는 물론 저작비평회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일반 연구논문으로는 여러 편이 투고되었지만 심사를 거쳐 최종적으로 5편의 논문을 게재했다. 나카바야시 히로카즈의 「1910년대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과 동화주의-식민지민에 대한 제국민의식 창출의 시도」, 오미일의 「일제강점기 원산의 일본인 사회와 지역 단체」, 양정필의 「근대 개성상인의 사환제(使喚制)와 그 변화」, 김진혁의 「재북(在北)의사의 식민지·해방 기억과 정체성 형성(1945~1950) 평양의학대학, 함흥의과대학, 청진의과대학 자서전을 중심으로」, 김선호의 「조선인민군 군인의 형성과 근대적 규율-인민군의 교육·내무생활·기율규정을 중심으로」등이다. 지면 관계상 구체적인 내용소개는 생략하겠고, 관련주제의 연구에서 연구사적 의의가 충분히 인정되어 게재되었다는 점만 밝힌다. 그밖에 이번호에서는 저작비평회 이외의 ‘서평’을 넣지 않는 대신, 최근 한국사회를 강타한 메르스사태를 다룬 ‘주제비평’을 시도하였다. 정민재의 「전염병, 안전, 국가-전염병 방역의 역사와 메르스 사태」는 전염병이 한국의 근대국가와 사회의 역사에 끼친 영향을 시계열적으로 정리하면서, 이러한 역사적 기반 위에서 메르스사태 당시 정부의 초기 대응 미숙 문제를 분석하였다. 끝으로 34호 맨 마지막에는 지난 역사문제연구 33호에 실렸던 4인의 집담회 「젊은 역사학자들 『제국의 위안부』를 말하다」에 대한 『제국의 위안부』의 저자 박유하의 반론 「젊은 역사학자들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를 실었다. 33호에 실렸던 집담회 글과 34호에 실린 반론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이번에도 역사문제연구가 풍성하게 간행될 수 있었다.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또한 이번호부터는 편집위원장 바뀌고 편집위원이 몇 분 더 충원되었다. 그동안 고생하셨던 전임 편집위원장과 앞으로 계속 수고해주실 모든 편집위원께도 감사드린다. 그러나 『역사문제연구』 34호를 간행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다. 역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때문이다. 이 문제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부디 이번 논란이 단순히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할 것인가 ‘검인정’으로 할 것인가 ‘자유발행제’로 할 것인가의 차원을 넘어, 학생들이 자기 역사를 만들어 나가는데 ‘힘’이 되는 역사학과 역사교육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이념과 색깔을 앞세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부의 태도를 보면, ‘국정 역사교과서’를 만들고자 하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역사문제연구 편집위원회는 이번 34호의 표지를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와 거부의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혹시 보기에 불편함이 있으시더라도 넓은 마음으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이 시대의 아픔을 함께 나눠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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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책머리에



특집 1. 한일협정 전후 재일조선인 사회의 변화

조경희, 한일협정 이후 재일조선인 ‘국적’과 분단정치

박광현, 김달수의 자전적 글쓰기의 정치: ‘귀국사업’과 ‘한일회담’을 사이에 두고

  

특집2. 1960~70년대 자본과 소비

이은희, 박정희 시대 콜라전쟁

이정은, 증권시장의 작동과 주식대중화

  

저작비평회 1. 위안부 제도와 위안부 연구, 그 현황과 과제를 묻는다

윤명숙, 『조선인 군위안부와 위안소제도』, 이학사, 2015

  

저작비평회 2. ‘학출’의 삶을 통해 1980년대를 역사화하다

유경순,『1980년대 변혁의 시간 전환의 기록』1, 2, 봄날의 박씨, 2015

  


일반논문

나카바야시 히로카즈, 데라우치·하세가와 총독기 조선총독부의 교육정책과 동화주의

오미일, 일제강점기 재조일본인 사회와 지역 단체: 개항장 도시 원산지역을 중심으로

양정필, 근대 개성상인의 사환제와 그 변화

김진혁, 재북(在北)의사의 식민지·해방 기억과 정체성 형성(1945~1950)

김선호, 조선인민군 전사의 탄생: 인민군의 교육훈련, 내무생활, 기율 규정을 중심으로

  

주제비평

정민재, 전염병, 안전, 국가 전염병 방역의 역사와 메르스 사태

  

반론

박유하, 젊은 학자들의 󰡔제국의 위안부󰡕 비판에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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