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문제 연구소


          
  제35호-2016년 상반기 1297
   관리자   2016-06-13

 




책머리에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인물은 미국 공화당 대통령 후보경선에 나선 도날드 트럼프일 것이다. 그는 숱한 막말과 기행에도 경선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트럼프가 대중적인 지지와 반발을 동시에 일으키는 주된 요인 중 하나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설치하자”,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하자” 등과 같은 이주민․난민에 대한 노골적인 ‘혐오’ 발언이다.  
    사실 이주민․난민 등 소수자에 대한 혐오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서든지 쉽게 확인 가능하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에게 혐오의 대상인 무슬림들은 비이성애자와 같은 성적 소수자들을 극도로 혐오한다. 일례로 온건한 무슬림 국가로 알려진 인도네시아에서도 최근 정치, 종교, 언론이 한목소리로 성적 소수자인 LGBT, 즉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에 대해 무차별적인 혐오 공격을 가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서구에서 한국인이 유색인종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에 분노하면서도, 많은 한국인들은 국내에서 다른 유색인종들을 배척하거나 혐오하는 모습을 보인다. 조선족이나 탈북자들 역시 혐오의 대상으로 자유롭지 않다. ‘일베’의 여성 혐오에 맞서 ‘메갈리아’의 남성 혐오가 등장하기도 했다. 정보 공유와 소통의 공간인 인터넷은 혐오 담론 전파의 온상이 되고 있다. 조금만 생각이 달라도 네티즌들은 ‘극혐’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는다. ‘극혐’을 ‘극혐’하기도 한다. 혐오와 혐오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흡사 “만인의 만인에 대한 혐오”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렇듯 ‘혐오’의 감각이 일상 곳곳에 만연해 있는 이때에, 『역사문제연구』는 ‘혐오’에 대한 표면적 분석을 넘어 이 문제를 역사적 맥락에서 좀 더 긴 안목으로 성찰하고자 35호의 첫 번째 특집을 기획하게 되었다. 먼저 ‘총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권명아의 「신냉전 질서의 도래와 혐오발화/증오 정치 비교역사 연구」는 한국 내는 물론 동아시아와 세계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증오정치’의 사례들을 망라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이론적 모색을 촉구한다. 즉, 증오정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근대국민국가적 패러다임을 넘어서 ‘식민성’, ‘냉전’, ‘탈냉전’, ‘신냉전질서’ 등의 몇 겹의 역사적 시간과 축적된 모순들을 복합적이고 동시에 분산적으로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당사회에 누적된 차별의 역사적 지층을 구체적으로 탐구하는 비교 역사적 연구 속에서만, 비로소 혐오발화 비판이론이 보편성과 공통성의 지평을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이 논문은 강조한다.

    이찬행의 「그들은 왜 빈센트 친을 죽였을까?」는 1982년 디트로이트에서 발생한 중국계 미국인 빈센트 친에 대한 혐오범죄 살해사건을 분석하고 있다. 이 사건은 백인 남성의 인종주의에 의해 일어난 혐오범죄일 뿐만 아니라, 2차 대전 이후 아시아계 미국인의 전형화, 또 일본의 경제 성장으로 인한 미국 자동차산업의 탈산업화 등의 맥락을 반영하고 있다. 이 논문은 이민의 나라인 미국 사회가 갖고 있는 인종혐오의 복잡한 특성을 미국의 정치적 경제적 변화 속에서 숙고할 수 있게 해준다.

    끝으로 허윤의 「냉전 아시아적 질서와 1950년대 한국의 여성혐오」는 1950년대 공론장의 언설과 대중서사를 통해, 냉전의 격전지였던 한국에서 사회를 통치하는 방법으로 여성혐오가 선택되는 과정을 밝혔다. 1950년대 일선에서 공산주의 북한과 싸우는 남성의 세계를 건전하게 만들기 위해서 ‘후방’은 언제나 여성화 되었다. 여성화 된 후방에는 혐오와 수치심이 가득했다. 한국전쟁 과정에서 위안부와 위안소가 배치되었고, 냉전질서의 유지를 위해 미국특수위안시설이 운영되었다. 전후의 혼란은 아프레걸, 자유부인이라는 말로 통칭되었다. 풍기단속 차원에서 여성의 성과 섹슈얼리티에 대한 통제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여성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냉전체제하에서 통치도구로서 반복되었던 것이다.

    35호 두 번째 특집에서는 혐오의 주된 대상이기도 한 ‘난민․이주민’ 문제를 다루었다. 최근에 전쟁과 빈곤을 피해 자유를 찾아 시리아 난민들이 유럽으로 집단 이주를 감행하는 상황이 전개되면서 난민․이주민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생성되는 난민 또는 이주민 문제에 대한 시각은 대체로 난민 또는 이주민의 문제를 한국과 별개로 바라보거나, 시혜적 관점에 머물고 있다. 이에 『역사문제연구』는 35호 두 번째 특집을 통해 난민․이주민 문제를 한국의 역사 문제로 바라보면서, 강제 이주가 아니라 “원하지는 않았지만 자발적으로” 국민국가의 경계를 벗어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춰 그 역사적 실상과 의미를 재구성하고자 했다.

    먼저 특집에 대한, 제목 그대로 ‘시론’의 성격을 가진 이연식의 「해방 직후 ‘우리 안의 난민·이주민 문제’에 관한 시론」은, 해방 직후 한국 안팎에 걸쳐 이루어진 대규모 인구 이동 현황, 즉 해외에서 돌아온 귀환 동포, 한국 전쟁 이전의 초기 월남민, 그리고 재조일본인의 송환 문제를 함께 연계해 정리하고, 이러한 한국 안팎의 대규모 인구 이동이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곳곳에서 나타난 전후 인구이동의 보편적 특징과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는지 살펴보았다. 일국사적 맥락을 넘어 세계사적 접점을 찾고자 한 이 논문은, 현재 한국에서 날로 증가하고 있는 외국인, 조선족, 탈북자들의 사회적 통합이라는 과제를 푸는 데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나혜심의 「독일로 간 한인여성노동자의 난민성」은 1960년대부터 독일로 건너간 ‘파독간호사’들의 ‘난민성’을 다룬 글이다. 그동안 ‘파독간호사’들에 대한 논의가 주로 경제적 이익을 위한 외화벌이라는 차원에서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이 논문은 이들을 ‘난민’이라는 차원에서 새롭게 조명했다. 국가적 차원의 이주라는 기존 관점을 거부하고, 국경을 넘는 고용-피고용 관계가 맺어지는 과정을 ‘강요된 자발성’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했다는 점이 특히 주목된다.

    김아람의 「38선 넘고 바다 건너 한라산까지, 월남민의 제주도 정착 과정과 삶」은 제주도에서 월남민들이 다수 정착한 지역인 상효리 ‘법호촌’의 기독교교회와 난민정착사업에 대해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육지와 제주의 관계, 월남민과 제주출신인의 관계, 이와 관련된 전쟁 후 제주지역의 변화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38선 이북의 지역민이 제주도민이 되는 과정을 통하여 전쟁이, 초래한 삶의 파괴와 소생, 1950년대 지역의 재건 현실과 그 의미를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평’을 연구업적으로 인정해주지 않음으로 인해 연구서에 대한 엄밀한 비평이 약화되고 있는 비정상적인 학문풍토를 극복하고자 『역사문제연구』가 힘을 쏟고 있는 ‘저작비평회’는 35호에서도 어김없이 진행되었다. 이번에 ‘저작비평회’의 대상이 된 책은 전진성의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천년의상상, 2015)이다. 동서양을 넘나들면서 고대 아테네를 상상한 근대 도시들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한 이 책은 건축사, 도시사는 물론 지성사, 문화사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하나로 아우르고 있다. 다양한 사실들과 이론의 융합도 끊임없이 시도하였다. 목소리만 높고 실상 내용적으로는 그 질을 담보하기 못하고 있는 오늘날 ‘학문의 통섭’과 ‘트랜스내셔널 히스토리’에 비추어봤을 때, 주목해야 할 저작임에 틀림없다. 멀리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와 저작비평회에 참여해 주신 저자는 물론, 역사학, 건축학, 지리학 등 각 관련 분과학문 별로 심도 있는 비평을 맡아 주신 3명의 토론자들께 지면을 통해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이번 35호에는 모두 7편의 연구논문을 실었다. 박종린의 「1920년대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社會改造の諸思潮』의 번역」, 윤현상의 「1920년대 총독부 교육재정 정책의 변화와 공립보통학교 설립열의 확산」, 장신의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와 동아일보․조선일보 폐간」, 하재영의 「전시(戰時) 양조업을 통해 본 식민지 공업화의 일면-양조업의 생산동향과 자본 이동에 주목하여」, 김봉국의 「이승만 정부 초기 애도-원호정치: 애도의 독점과 균열 그리고 그 양가성」, 이상록의 「 ‘예외상태 상례화’로서의 유신헌법과 한국적 민주주의 담론」, 오하나의 「80년대 노동운동 내 학생출신활동가를 둘러싼 비판 담론의 분석」 등은 지면 관계상 각각의 구체적 내용을 소개하기 어렵지만, 모두 기존 한국근현대사 연구에서 제대로 해명되지 못한 참신하고 의미 있는 주제들을 치밀한 논증과 분석을 통해 새롭게 규명한 글이라는 점을 밝힌다.

    마지막으로 젊은 역사학자들의 모임인 ‘만인만색’의 집담회 내용을 게재했다. 작년 10월 정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하자 사회전반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역사학계에서도 연구자들이 공개적인 반대와 교과서 집필 거부를 선언하고 거리에 나섰다. 특히 각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하는 젊은 대학원생들은 상호 네트워크를 형성하여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공동으로 대처해 나갔다. 이들은 10월 말 전국역사학대회를 계기로 ‘만인만색 연구자 네트워크’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 여세를 몰아 11월 정식으로 ‘만인만색’이라는 연구자 모임을 출범시켰다. 아직은 초기 단계에 불과하지만 만인만색의 열정과 연대의 정신이 앞으로 역사학계에 큰 활력소가 될 거라는 기대 속에서, 『역사문제연구』는 이들의 목소리를 지면을 통해 전달하기로 했다. 이번 만인만색 집담회가 역사학계 내부에 그들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고 그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그에 따르는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역사문제연구』 35호를 준비하면서 우리 주변에 만연한 타자와 소수자에 대한 ‘혐오’가 얼마나 극복하기 어려운 역사적 난제인가를 다시 한 번 절감하였다. 아마 ‘알파고’도 풀기 어렵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관련하여 얼마 전 재미있는 사실이 하나 알려졌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에서 개발 중인 인공지능 채팅 로봇 ‘테이’가 트위터를 통해 “히틀러가 옳았다, 나는 유대인이 싫다.” “대량학살에 찬성한다”는 등의 혐오 발언과 막말을 쏟아냈다는 것이다. ‘테이’는 인간들의 바둑 기보를 학습한 ‘알파고’처럼, 인간들과의 대화를 통해 스스로 패턴을 학습하고 이를 대화에 반영하는 인공지능을 갖고 있다. 그런 ‘테이’가 트위터를 하면서 극우 인종주의자들과 성차별주의자들의 혐오 발언과 막말을 학습하여 같은 말들을 반복했던 것이다. 물론 세뇌 수준의 학습에 의한 인공지능의 혐오 발언과 막말은, 각기 다른 다양한 맥락과 내용으로 구성된 인간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같을 수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마저 혐오를 학습하는 현 상황에서 그 누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이번 『역사문제연구』 35호가 혐오의 세상을 소통과 관용과 공존의 세상으로 바꿔내는 데 작지만 의미 있는 성찰이 되었으면 한다.


목     차


특집1 혐오의 역사 - ‘나’는 왜 그(녀)들을 혐오하는가
  권명아 신냉전 질서의 도래와 혐오발화/증오정치 비교역사 연구
  이찬행 그들은 왜 빈센트 친을 죽였을까?
  허윤 냉전 아시아적 질서와 1950년대 한국의 여성혐오
특집2 우리 안의 난민‧이주민
  이연식 해방 직후 ‘우리 안의 난민·이주민 문제’에 관한 시론
  나혜심 독일로 간 한인여성노동자의 난민성
  김아람 38선 넘고 바다 건너 한라산까지, 월남민의 제주도 정착 과정과 삶

저작비평회
  아테네를 상상한 근대 수도의 계보학
  - 전진성,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 도쿄, 서울』, 천년의상상, 2015.8

연구논문
  박종린 1920년대 사회주의사상의 수용과 『社會改造の諸思潮』의 번역
  윤현상 1920년대 총독부 교육재정 정책의 변화와 공립보통학교 설립열의 확산
  장   신 조선총독부의 언론통제와 동아일보․조선일보 폐간
  하재영 전시(戰時) 양조업을 통해 본 식민지 공업화의 일면 - 양조업의 생산동향과 자본 이동에 주목하여-
  김봉국 이승만 정부 초기 애도-원호정치: 애도의 독점과 균열 그리고 그 양가성
  이상록 ‘예외상태 상례화’로서의 유신헌법과 한국적 민주주의 담론
  오하나 80년대 노동운동 내 학생출신활동가를 둘러싼 비판 담론의 분석

집담회
  만인이 만가지 색으로 저항하라!  -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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